인터뷰 | 이완영 한국공인노무사 회장
“노사갈등 조정하는 ‘노동 주치의’가 필요하다”
노란봉투법 시행, 플랫폼 노동 확산, 산업 대전환 등 노동환경 급변 … 공인노무사 역할 넓어지고 커져
“노사 갈등을 단순한 분쟁으로 접근하기보다 사전에 예방하고 조정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이완영 한국공인노무사회 제21대 회장은 5일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노동환경 변화 속에서 공인노무사의 역할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인노무사가 단순히 노동 사건을 대리하는 전문가를 넘어 노사 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는 ‘노동 주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시행과 플랫폼 노동 확산, 근로시간 제도 개편 논의 등 노동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산업 구조 변화와 고용 형태의 다양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노사 갈등 양상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기존에는 임금과 근로시간을 둘러싼 분쟁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사용자 범위와 플랫폼 노동자의 권리, 근로시간 운영 방식 등 다양한 쟁점이 복합적으로 얽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회장은 “노란봉투법 시행과 플랫폼 노동 확산 등 노동환경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현장의 혼란을 줄이고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는 데 노무사의 전문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노무사의 전문성이 노사 갈등을 완화하는 방파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회장 당선 100일을 맞았다. 현장에서 느끼는 노무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취임 이후 여러 현장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외부에서 보면 노무사가 전문직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여러 어려움이 있다.
특히 타 자격사의 업역 침범과 과도한 가격 경쟁 등으로 전문 직역 간 경계가 흐려지면서 노무 서비스 시장 질서가 흔들리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노동 사건을 다루는 영역뿐 아니라 기업 인사관리와 노사관계 컨설팅 분야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충분한 법률 검토 없이 인사·노무 문제가 처리되면서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노동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노무사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분쟁이 발생한 뒤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노사 갈등을 미리 예방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최근 기업 현장에서는 인사·노무 관리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경영 전략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나 임금체계 개편, 조직문화 변화 등 다양한 문제가 동시에 등장하면서 전문적인 노무 관리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변화 속에서 노무사의 역할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노무사는 단순한 노동 사건 대리인이 아니라 노사 갈등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노사관계 전문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노무사의 역할은 기업의 인사·노무 제도를 설계하고 노사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역할로까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비해 제도적 기반이나 직역 보호장치는 아직 충분히 정비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 직역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무사의 위상을 다시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무사가 노동 법률과 인사노무 관리 분야에서 핵심 전문 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회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노동시장 격차 해소와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노무사회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노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과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나 근로시간 단축 같은 정책은 기업 인사 시스템과 직접 연결된다. 노무사가 직무 분석과 인사 제도 설계를 통해 정책이 현장에서 갈등 없이 적용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노무사는 단순한 법률 자문가를 넘어 노사 갈등을 사전에 진단하고 조정하는 전문 조정자 역할을 하게 된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노동 현장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노무사회는 이에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은 사용자 범위와 쟁의행위 대상 해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이다. 법 적용 범위를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노동 현장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분쟁 해결 과정도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노동 분쟁이 법적 분쟁으로 확대되기 전에 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노무사회 차원에서 대응 가이드라인과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분쟁이 법적 다툼으로 확대되기 전에 사적 조정 제도를 활용해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강화하려 한다. 노무사는 노사 양쪽을 모두 이해하는 전문가라 갈등을 조정하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공인노무사법 개정 등 입법 과제도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가 공인노무사법 개정이다. 현재 노동 사건이 형사 절차로 넘어가는 경우 노무사가 계속 대리하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
노동 사건을 처음부터 담당해 온 전문가가 계속 사건을 맡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동자나 기업 입장에서도 절차적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사의 활동 영역 확대도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특히 취임사에서도 ADR(대안적 분쟁 해결)을 강조했는데 어떤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인가.
노무사의 역할은 기존 노동 사건 대리 중심에서 조직 관리와 노사관계 컨설팅, 산업안전 관리, 분쟁 예방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ADR이나 인공지능(AI),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컨설팅 등 새로운 분야에서도 노무사의 전문성이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노사 갈등은 법정으로 가기 전에 해결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갈등이 장기화되면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부담이 커진다.
그래서 사전에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ADR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무사회도 이런 방향에서 전문적인 조정 기능을 강화하려 한다. 김태기 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노무사회 ADR노동연구소장으로 모셨다.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도 중요한 이슈다.
노동 형태와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의 권리가 보호돼야 한다. 최근 플랫폼 노동이나 특수고용 형태의 노동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 형태는 기존 노동법 체계에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노무사회는 취약계층 교섭·조정 지원사업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의 분쟁 조정을 지원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은 전통적인 고용관계와 달리 계약 구조와 책임 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많다.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법적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노무사는 이러한 새로운 노동 형태에서 발생하는 갈등 구조를 분석하고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취임사에서 ‘노무사회 위기’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직역 보호 문제도 주요 과제로 보인다.
노동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데 비해 노무사 제도와 시장 구조는 아직 충분히 정비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타 자격사의 업역 침해 문제도 계속 제기되고 전문 서비스 시장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노동 분야는 전문성이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무자격자나 타 자격사의 업역 침해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관련 법률과 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업무가 진행될 경우 노동자와 기업 모두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전문 직역 간 역할을 명확히 하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청년 노무사를 위한 지원 계획이 있다면.
초기 시장에 진입하는 청년 노무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노무사회 차원에서 공유 오피스 운영이나 정착 지원 프로그램 등을 검토하고 있다. 실무 중심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법원 설치와 산업재해 국선 노무사 제도 도입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노무사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노동 사건은 일반 민사 사건과 달리 노사관계와 노동법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한 분야다. 노동법원 설치 논의는 이런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제도가 도입될 경우 노동 사건을 다루는 전문가인 노무사의 역할이 충분히 반영되는 것이 중요하다.
산재 사건은 노동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전문적인 법률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전문가 도움을 받기 어려운 노동자도 있다.
이런 점에서 산재 국선 노무사 제도는 노동 취약계층 권익 보호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제도라고 본다.
●1월 말 회장 취임식이 12.3 내란 옹호 세력 초청 논란으로 정치적 행사로 치러졌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공인노무사회는 정치 단체가 아니라 노동 전문가 단체다. 취임식에 여러 정·관계 인사를 초청한 것은 협회의 정책 과제와 입법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취지였다. 노동 정책과 관련된 제도 개선은 결국 국회와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 자리는 특정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노동 제도 개선을 위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자리였다.
●노동부와 국회를 모두 경험한 경력이 협회를 이끄는 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나.
고용노동부에서 정책 입안과 집행을 모두 경험했고 국회에서도 노동 관련 입법 활동을 했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현장에서 집행되는 과정을 모두 경험했다는 점이 큰 자산이다. 정책은 법과 제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 지가 중요하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흐름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무사회가 추진하는 제도 개선 과제를 정책 과정에서 효과적으로 제안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노동시장 구성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지금 노동환경은 큰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럴수록 갈등을 키우기보다 조정하고 해결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노무사는 노동 분쟁을 단순히 해결하는 전문가를 넘어 노사 갈등을 예방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 ‘노동 주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남진·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