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재단 폐쇄 계획 밝힌 빌 게이츠 “부자로 죽지 않겠다”

2025-05-13 13:00:02 게재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이자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는 8일(현지시간) 예방 가능한 산모와 아기의 사망을 종식시키고 치명적인 전염병을 근절하며 전 세계 수억명의 사람들을 빈곤에서 구제하는 기부를 가속화하기로 했다. 2045년 게이츠 재단을 폐쇄하기까지 20년 동안 자신의 재산 거의 전부를 재단을 통해 분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당초 게이츠는 본인의 사망 20년 후에 재단을 해산할 예정이었지만 2045년 12월 31일 재단 활동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일정을 앞당겼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 AP=연합뉴스

게이츠의 현재 순자산은 1080억달러다. 블룸버그의 억만장자지수는 그를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부유한 사람으로 선정했다. 그는 자신의 순자산이 2045년까지 99%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향후 20년 동안 재단을 통해 기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2000억달러는 기존 770억달러의 기부금과 사업 투자에서 나올 것이다.

멜린다 게이츠가 35세, 빌 게이츠가 44세였던 2000년에 설립된 게이츠재단은 1000억달러 이상을 백신, 진단도구 및 치료 전달 메커니즘 개발에 기부해 수천만명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면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선단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재단을 설립했을 때 자신들이 죽은 후 오십년 동안 이 단체가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워렌 버핏과 함께 2010년 기부 서약을 출범시켜 부유한 사람들이 생전에 또는 유언장에 따라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도록 장려해 현재 서명자가 240명을 넘는다.

이혼 후 멜린다는 자신의 자선단체를 설립하기 위해 지난해 게이츠 재단을 떠났다. 오랜 지지자인 워렌 버핏은 최근 남은 재산 대부분을 자녀들이 관리할 자선 신탁에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머스크의 USAID 자금 삭감 비판

이번 발표는 트럼프행정부가 게이츠 재단이 지원하는 건강 해외원조 및 기타 공공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속속 삭감하는 와중에 나온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는 세계 최대의 인도주의적 원조 제공자로 여겨졌던 미국정부의 국제 원조 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자금 지원을 삭감하고 운영을 축소하기 시작해 5600명 이상의 USAID 직원을 해고했다.

게이츠는 USAID에 대한 머스크의 자금 삭감을 비판하면서 이러한 삭감으로 인해 홍역,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소아마비와 같은 질병의 재유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죽이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게이츠는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에 대해 많은 말을 하겠지만 ‘그가 부자로 죽었다’는 말이 그중 하나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붙잡고 있기에는 해결해야 할 긴급한 문제가 너무 많다"며 인공지능의 발전과 자신의 기부가 결합돼 문제해결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낙관론을 표명했다.

“생명 구하는 혁신에 인공지능 올인할 때”

최근 랜싯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HIV와 에이즈 구호품을 해외에 전달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이 줄어들면 2030년까지 50만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네이처지는 미국의 원조자금 지원이 전반적으로 중단될 경우 15년 동안 약 2500만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미국은 인도주의적 원조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해왔기 때문에 USAID 예산감소는 충격적이다.

게다가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원조 삭감이 있었다. 영국의 원조 예산은 GDP의 0.7%까지 올랐다가 보수당 정권 하에서는 0.5%로 줄어들었고,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후 다시 0.3%로 떨어졌다. 독일은 원조 예산을 삭감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프랑스는 큰 예산 문제를 안고 있어 원조가 줄어들고 있다.

게이츠는 트럼프행정부의 삭감을 감안할 때 아동 사망자 수가 매년 100만명씩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5년 동안 1000만명의 아동 사망자 수가 500만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향후 몇년 동안 500만명에서 400만명으로 줄어야 할 아동 사망자 수는 이제 큰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500만명에서 6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양실조 대책이다. 아이들의 영양실조를 막는다면 그것만으로 아동 사망률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인가?” “천성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현재 개발중에 있는 생체 의학 도구 및 기타 생명을 구하는 혁신에 대한 전망을 고려할 때 지금이야말로 올인해야 할 때다. 세상은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발명했고, 우리는 그 도구를 저렴하게 세상에 내놓았다. 우리 재단이 그동안 지출한 1000억달러의 상당 부분은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데 사용됐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에 있는 것들이다. 결핵 관련 연구는 지난 25년 동안 우리가 해온 것과 비교해 볼 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우리는 조만간 HIV에 대한 유전적 치료법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써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영구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고, 여성들이 출혈로 죽지 않으며 소녀들이 HIV에 걸리지 않는 영구적인 변화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신약 개발 노력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을 지금 쓰는 것과 나중에 쓰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지금 쓰는 것과 나중에 쓰는 것의 차이

게이츠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매우 극적으로 변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 후에 누군가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다. 우리는 더 많은 부자들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좋은 모범사례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선진적인 세계에서의 혁신이 의료 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돼 결핍이 다소 완화되고 사람들의 관대함이 다시 전면에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본질적으로 무료 지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도 그것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제공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와 같이 인공지능에 대해 정교하게 알고 있는 거대한 비시장적 행위자가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다. 앞으로 20년 동안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재단이 내놓는 이 돈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만드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

게이츠는 향후 20년 2000억달러 이상의 관대한 원조를 재단에 투입할 계획이다. 그는 인도주의적 자신감으로 무장돼 있다. 게이츠와 그의 재단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다’는 핵심 목표가 당초 생각한 것보다 더 일찍 달성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서민원

CA 변호사·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