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기업 기강 바로세울 때다

2025-05-13 13:00:08 게재

지난 2023년 7월 LG유플러스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일어난 데 이어 지난달 국내 최대의 이동통신사 SK텔레콤에서도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일어났다. 이 때문에 SK텔레콤 가입자 2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새나갔다. 회사측에서는 서둘러 유심을 긴급교체해주는 등 대응에 나섰다.

이 사건을 두고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는 SK텔레콤의 허술한 보안태세가 드러났다. 이를테면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암호화가 되지 않았고, 국내 통신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유심 인증키도 마찬가지였다. 통신3사 가운데 가입자와 매출이 가장 크지만 정보보호 투자액은 가장 적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마디로 가입자를 상대로 돈벌 궁리만 하고 책임있는 투자는 게을리 했다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사과하는 등 파문줄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 입장에서 가장 절실한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요리조리 피해나간다.

가입자 상대로 돈벌 궁리만 하고 책임있는 투자 게을리 해

이번 사고를 겪은 많은 가입자들이 SK텔레콤을 끊고 다른 통신사로 옮기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가입계약 기간중 통신사를 옮기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다. 다만 약관에 귀책사유가 회사측에 있을 경우 위약금을 면제받는다. 그럼에도 계약해지 고객에 대해 회사측은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약관대로 면제해주라고 거듭 촉구했지만, 유 대표는 “종합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며 발뺌한다. 최태원 회장도 이사회 멤버가 아니라는 이유로 회피한다.

정부도 불투명하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SK텔레콤의 위약금 면제 여부에 대한 판단을 6월말에 내릴 것을 시사했다고 한다. 법률검토에 착수했지만, 당장 결론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위약금 문제는 그다지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기업과 고객 사이의 약속일 뿐이다. 그 약속 때문에 고객이 함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듯이 회사 또한 약관대로 하면 된다. 회사측도 이미 책임을 인정하고는 위약금 면제를 거부하는 것은 표리부동한 일이다. 이럴 때 정부는 SK텔레콤이 고객과의 약속과 책임을 이행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법률적 검토를 한다며 결정을 늦추는 것은 회사측의 무책임을 조장하는 것이다.

시간을 끌면서 가입자들이 마음 바꾸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듯하다. 과학기술정통부로서는 이동통신 회사와 산업을 발전시켜야 할 부처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이동통신을 이용하는 수천만 고객의 이익도 소중히 해야 한다. 아니 진정으로 기업을 튼튼하게 성장시키려면 고객의 이익부터 존중하고 아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곳곳에서 대형 사건사고를 일으킨다. 지난 2월 25일 경기 안성에서 시공하는 고속도로 공사장 교량 붕괴사고로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1일에는 신안산선 복선전철 지하터널 공사 중 구조물이 무너져 역시 노동자 1명이 희생당하고 인근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포스코이앤씨라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시공하는 공사장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국내 토목공사 역사가 짧지 않고 공사하는 대기업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제법 축적돼 있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끝없이 일어난다. 이는 결국 기강이 바로 서지 않은 탓이 아닌가 한다. 사고 내도 잠시 시끄러울 뿐이고 약간의 대가와 불편만 견뎌내면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대형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엄정한 기강이 확립돼야 기업들의 경쟁력도 굳건해질 수 있어

이제 대기업들의 기강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사고를 냈을 경우 그 책임을 서릿발처럼 물어야 한다. 엄정한 기강이 확립돼야 기업들의 경쟁력도 굳건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강도 높은 훈련과 아울러 엄정한 기강을 갖춘 국가대표 스포츠팀이 국제경기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정부가 유약한 태도를 보이면 기업에게는 도리어 해로운 독소가 될 수도 있다.

요즘 국내외 여러 정치경제 불안 때문에 기업의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기업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필요하다면 정부는 주저말고 도와줘야 한다. 동시에 주어진 책임을 다하도록 엄정한 기강을 세워가는 일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SK텔레콤 위약금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는 분명하게 태도를 보여야 한다. 원칙에 입각해 기강을 바로잡을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꼼수를 쓸 것인지를.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