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훈 칼럼
제조업 강국 독일의 에너지전환, 우리가 얻을 교훈은
1990년만 하더라도 EU 27개국의 GDP 규모는 세계 1위로 미국을 앞질렀고 중국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했다. 하지만 2014년 미국에 추월당했고, 2020년에는 중국에 밀려 세계 3위로 내려앉았다. 그 이후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EU는 침체를 겪고 있다. 이에 폰데어라이엔 2기 EU 집행위원장은 유럽경쟁력의 현재 및 미래를 진단하고자 했다.
진단을 맡은 이는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마리오 드라기로 2007년 유럽에 재정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규모 통화완화정책을 시행해 유럽경제를 살린 바 있기에, 유로존의 구원투수라 불리고 있다. 작년 9월 일명 드라기 보고서라 불리는 ‘유럽경쟁력의 미래’가 발간됐다. 이 보고서는 유럽경쟁력 약화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탈원전, 탈석탄을 의미하는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크게 높아진 에너지 비용이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실제 유럽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 및 중국의 2배, 산업용 천연가스 가격은 미국의 6배 및 중국의 1.5배에 달한다. 에너지 비용이 제조업 생산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및 중국의 2배다.
유럽은 2050 탄소중립을 최초로 공식 선언한 대륙이다. 게다가 온실가스 배출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하겠다는 법적 구속력을 갖춘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유럽에서 에너지전환의 리더라 불리는 독일은 2030년까지 총 발전량의 8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65%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경쟁력 하락 주원인은 에너지 비용
독일의 204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1990년 대비 80% 감축이다. 현재 석탄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2038년까지 모든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쇄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늘렸고, 2023년 4월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췄다. 그 결과 산업용 전기요금은 폭등하여 미국의 2.5배 및 중국의 3배 수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강국이다. 하지만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높아진 에너지 및 탄소 비용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화학기업 바스프(BASF)는 본사 생산을 중단하고 미국으로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보조금도 지급되고 전기요금도 싸다. 게다가 바스프는 중국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 이유는 전기요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권 가격이 독일의 1/10 수준이라 대표적인 화학제품 에틸렌의 생산비가 독일의 절반 이하이기 때문이다. 독일 내 다른 화학기업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화학산업의 경쟁력 소실로 유럽 화학산업의 심장이라는 명성도 잃어가고 있다.
독일어로 국민차란 뜻인 폭스바겐은 에너지전환이 시작되기 전인 2016년 및 2017년 세계 1위 자동차기업이었다. 하지만 작년 토요타 및 현대기아에 이어 세계 3위로 밀려났다. 2026년까지 3만 명 규모의 구조조정을 할 예정인데 독일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1500여 개의 중소 부품사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현재는 중국 한국 일본이 점유하고 있는 배터리와 관련해 유럽에도 세계적인 기업들이 있었다. 지난 3월 파산신청을 한 유럽 최대 배터리기업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에 이어 독일의 배터리기업 커스텀셀즈(Customsells)도 뒤를 이었다. 파산신청의 원인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높은 전기요금도 있었다. 재생에너지로 흔히 떠올리는 태양광 발전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나라가 독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다. 독일 태양광산업은 초기 정부의 보조금을 통해 세계를 제패했다. 2000년 독일과 중국의 세계 태양광 모듈 시장점유율은 각각 40% 및 1%였다. 하지만 작년에 각각 1% 미만 및 85%로 변했다. 보조금 삭감과 전기요금 인상이 겹치면서 독일의 태양광 산업이 몰락한 반면 중국은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 및 낮은 전기요금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세계를 제패했다.
미국 및 중국보다 높은 전기요금, 정부의 긴축 건전 재정 기조, 대기업에 대한 보조금 반대 정서 등 우리 주력 제조업의 미래가 밝아 보이진 않는다. 우리의 주력인 철강제품 배터리 조선 등은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 중이며 또 다른 주력인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 등은 중국 인도와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우리는 2050 탄소중립을 천명했고 탄소중립기본법을 강력하게 시행 중이지만 경쟁국인 중국 및 인도의 탄소중립 목표 시점은 각각 2060년 및 2070년이다.
한국 주력 제조업 독일 반면교사 삼아야
에너지전환의 리더 독일의 제조업 쇠퇴는 높은 에너지 및 탄소 비용이 산업경쟁력을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탄소중립을 추진하되 20조엔 이상의 국채 발행에 근거한 재정투자를 통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에너지를 안정적이고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 경제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일본의 실리추구 전략도 눈여겨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