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국제관계에서도 상식의 승리를

2025-05-21 13:00:00 게재

올봄은 유달리 푸르다. 날씨도 하루는 맑고 하루는 비가 오며 들과 밭의 푸르름이 맘껏 생장하도록 돕고 있다. 그럴수록 공동체의 행복과 평화에 대한 바람을 절실하게 한다. 많은 것들이 나날이 새롭다. 지난 겨울이 하도 어둡고 길고도 힘들었기 때문일까.

묻혀있던 과거들이 되살아나고 추위와 바람 속에 만물이 속내를 드러냈다. 힘 가진 자는 총을 들었고, 상식과 용기는 만행을 물리쳤다. 반동은 자연을 거슬러 못난 제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 봄에 이르러 순리가 이를 이겨내고 있다. 이 땅뿐만 아니라 사해만리에서 그러하다.

세계 곳곳에서 권력의 탐욕과 유무형의 폭력이 그 무자비한 발톱을 드러냈다. 가까운 5월 7일에도 포성이 울렸다. 카슈미르 영유권을 놓고 휴양지에서 총기 테러가 일어나고 인도는 파키스탄령에 미사일 보복 공격을 하고 파키스탄은 전투기 격추와 교전으로 맞섰다. 3년이 넘도록 끌어온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도 협상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그 끝을 모른다. 폭력과 살상의 전쟁 와중에 미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전쟁을 선포하고 세계에 관세폭탄을 던졌다.

국제경제 중추국들의 반격으로 이제 와서야 무역관계에서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를 지렛대로 미국과 관세빅딜을 이루었고, 미중 관계의 해빙 무드 속에 트럼프는 ‘중국의 평화와 통일’을 언급하며 ‘피스메이커’를 자처하고 있다. 이어 재집권 후 첫 중동순방을 통해 사우디와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내전으로 단절한 시리아와의 외교관계 회복을 시도했다. ‘악의 축’이라던 이란에도 영원한 적은 없다며 손을 내밀었다.

중동행과 맞물린 가족 사업, 이해충돌 논란

트럼프가 이제 와서 평화주의자임을 아무리 자임해도 이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중동순방 중에 그는 사우디로부터 850조원 상당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이 ‘국익’을 위한 활동의 이면에는 자본 독점을 향한 탐욕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카타르로부터 4억달러짜리 항공기를 선물 받고, 사우디·카타르·UAE의 자금 최소 20억달러(2조7942억원)가 트럼프 일가가 운영하는 기업에 유입됐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의 재단이 중동 국가들로부터 6000만달러의 기부금을 받은 사실을 맹비난 공격했던 그다. 한술 더 떠서 자신의 79번째 생일인 6월 14일에 군인 7500명과 전차 24대 항공기 50대가 출동하는 620억원짜리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즐길 계획이다.

어쩌면 이렇게 독점욕에 가득한 권력의 속 다른 얼굴과 하는 짓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은 모양일까. 사기(史記)에 나오는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첩 달기를 총애하여 무슨 말이든 들어주며, 세금을 무겁게 거둬 3리1000척의 녹대를 쌓아 돈과 곡식으로 채우고 주지육림의 음탕을 즐기다 정벌을 당해 불 속에 뛰어들어 죽었다. 주(周)의 유왕(幽王) 또한 여인 포사의 웃음을 사기 위해 가짜 봉화를 피우는 군사놀이를 하다 진짜 공격을 당해 멸망했다.

유사하게도 군사행진을 즐기고 천인공노할 ‘계엄 놀이’를 하며 온갖 부정 축재를 획책하던 이 나라의 거짓 지도자도 매우 불행하고 우울한 말로를 걷고 있다. 재집권 초부터 한 손으로 관세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본 독식을 노리는 미 대통령 또한 이해충돌과 위선을 간파한 여론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국제관계도 국민의 뜻과 이익에 충실해야

미국과 관세문제 해결을 위해 현정부 당국자들은 ‘혈맹’ ‘우방’을 앞세워 바다 건너 집권자에게 서둘러 달려가고 싶어 한다. 한미동맹에 관해서도 대선 후보자들 누구나 ‘흔들릴 수 없는 외교의 축’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양국 국민의 상식과 요구가 배제된 한미동맹은 독점욕에 가득한 권력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수단일 뿐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국제관계 역시 국민의 뜻과 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동북아의 안보와 아시아 평화를 위한 미국의 전략도 수시로 변화하고 이를 주도하는 대통령도 관련국 지도자도 얼마 안 가 바뀌는 게 현실이다. 호기롭던 관세폭탄도 세계 시민의 상식에 어긋나 위력을 상실하고 있다. 우리가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고 봄의 신록을 맞이한 것처럼, 국제관계에서도 상식과 순리가 권위주의 폭력과 자본의 탐욕을 저지하고 계속 이겨나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동원 서울사이버대 교양학부 교수 국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