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아세안 강타하면 한국도 충격권

2025-05-23 13:00:02 게재

대미 수출의존도 높은 회원국일수록 대응관세율 높게 부과 … 한국, 통합대응 아세안과 협력해야

지난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제28차 아세안+3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연례회의에 앞서 참석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과 중국, 일본, 한국의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들은 이날 제28차 연례회의를 마쳤다. 이번 회의는 중국과 말레이시아가 공동 주재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미국 트럼프 정부는 4월 2일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에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60여 국가에 대해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사실상 일방적 ‘대응관세’ 부과를 선언했다. 미국이 흑자인 싱가포르를 제외하고, 아세안 9개국 모두 대응관세 부과 대상이다.

미국은 각국의 대응관세율을 무역수지 적자 비율, 즉 해당국에 대한 미국의 수입액 대비 적자액 비율의 50%로 산정했다. 그 결과 캄보디아 49%, 라오스 48%, 베트남 46%, 미얀마 44% 등, 4국이 40% 이상이고 태국 36%, 인도네시아 32%,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가 24%, 그리고 필리핀이 가장 낮은 17%를 부과받을 예정이었다. 중국이 32%, 대만이 32% 그리고 한국이 25%이니 아세안의 대응관세율은 매우 높다. 특히 최빈국인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가 높은 관세부과 대상이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미국은 대응관세를 던져 놓고 곧 이어 그 실행을 90일 유예하기로 했다. 대신에 보편관세라는 이름으로 모든 국가에 10%를 부과하면서 이 기간에 각국이 협상안을 들고 줄을 서라고 요구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많은 나라가 협상안을 들고 미국을 찾았는데, 현재까지 대상국 중에서 협상을 일단락 지은 국가는 영국과 중국뿐이다. 미국은 관세 인상으로 수입을 억제하면서 수출증대를 위해 비관세장벽 제거, 정부조달 투명성 강화 및 개방 확대, 지재권 보호, 환율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의를 원한다.

다행히도 100% 이상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서로 엄포를 놓던 미중 양국이 5월 10~11일에 잠정 타결안을 마련했다. 미국은 중국에 30%, 중국은 미국에 10%로 관세를 인하하기로 잠정타결을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아세안 국가들도 대응관세의 상한선이 30%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16일 트럼프는 많은 국가와 협상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며 일방적인 관세를 적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도 20여 주요국과는 양자협상을 하되, 그 외 국가에 대해서는 지역별로 대응관세를 설정할 것을 시사해 아세안에 드리운 어둠이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다.

대응관세, 아세안 경제에 심대한 타격

미국의 보편관세 및 대응관세 도입은 대공황을 더욱 악화시켰던 ‘스무트-홀리 관세법’처럼 세계 교역량을 역나선형으로 축소할 것이고, 세계 경기를 침체시켜 아세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외국인 투자 주도의 수출산업을 육성해 성장한 아세안은 수출이 경제 성과를 결정한다. 세계 평균 수출의존도(상품수출/GDP)는 2023년 22.5%이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36.9%이지만 아세안은 이보다 훨씬 높은 47.9%에 이른다. 국별 수출의존도를 보면 특히 높은 대응관세율이 적용될 베트남은 82.3%, 캄보디아는 88.4%, 라오스는 52.8%이고,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각각 55.3% 및 78.3%에 이른다. 이와 같이 경제가 수출에 의존하는 아세안은 세계의 교역축소와 경기침체로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관세부과가 아세안에 직접 미치는 타격도 피할 수가 없다. 일부 국가들은 수출의 상당 부분을 미국으로 실어 보내고 있다. 트럼프 1기에 중국을 강력히 견제하자, 아세안의 대미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캄보디아는 중국기업이 투자한 섬유, 의류, 신발, 태양광 패널 등을 주로 수출하면서 미국의존도가 2018년 24%에서 2024년 37.2%로 증가했고, 전자제품, 통신기기, 기타 경공업 제품을 수출하는 베트남도 19.5%에서 29.6%로 증가했다. 공산품 대신 아시아 역내 수출의존도가 높은 1차 산품 수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인도네시아만 10.2%에서 9.9%로 하락했을 뿐이다. 미국의 고관세가 유지된다면 아세안 국가의 대미수출은 감소하지 않을 수 없고 관세율이 보편관세 수준으로 인하된다고 해도 수출감소는 피할 수 없다.

대미수출 감소는 아세안의 국제수지 악화로 이어진다. 아세안 국가들은 대부분 중국에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미국에서 흑자를 유지해 대외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아세안은 중국으로부터 노동집약적 제품뿐만 아니라 소재, 부품, 장비를 수입한다. 예컨대 아세안의 주요 수출제품인 전자전기제품, 통신기기 등의 부품과 섬유직물 소재 등은 중국에서 주로 조달한다. 특히 트럼프 1기 미중갈등 이후에 중국으로부터 중간재 수입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트럼프 1기 이후 아세안의 대미흑자는 584억달러에서 1709억달러로 증가했고, 대중국 적자는 832억달러에서 1892억달러로 증가했다. 특히 베트남의 대중국 적자는 이 기간 241억달러에서 831억달러로 급증했다. 아세안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미국에 수출을 늘린 만큼 중국에서 중간재 수입을 늘린 것이다. 또한 중국기업이 미국의 수입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아세안에 진출해 생산을 늘렸다. 대미수출 축소는 아세안의 국제수지를 악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개별국 대응은 한계, 아세안은 통합을 강조

아세안 주요국은 각자 전략을 마련할 생각이지만 유효한 협상 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46%라는 고율의 대응관세 대상이자 지난해 1200억달러 이상의 대미흑자를 거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부랴부랴 미국제품에 제로 관세를 적용하기로 하고, 국영기업의 조달선을 미국으로 전환키로 했다. 산업무역부 장관은 5월 7일 페트로베트남(Petrovietnam), PV가스(PV Gas), 베트남항공, 비엣젯(Vietjet), 비엣텔(Viettel) 등 주요 국영기업과 회의를 열고 미국에서 구매 계약의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장비, 상품, 서비스, 원자재, 연료 수입 수요에 대한 평가 및 전망도 제시했다. 기업 대표들은 6월까지 미국 파트너들과의 회의를 강화하고 협력해 기존에 체결된 협정 및 양해각서(MOU)를 이행하기 위한 계약 체결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4월까지 베트남의 대미수출이 26%가 증가하고 수입은 25.1% 증가에 그쳤기 때문에 대미흑자가 감소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 많은 대미흑자를 기록한 태국은 36%의 대응관세 대상인데, 미국에 컴퓨터 및 주변기기, 통신기기 및 부품, 고무관련 제품, 집적회로 반도체, 보석귀금속, 자동차 부품, 공조기기 등 전기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태국은 미국의 우선협상국에서도 제외된 상태이다. 현재 많은 중국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아세안산으로 수출하고 있는데, 특히 태국이 원산지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문제가 태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리고 있고, 정부 역량도 높지 않다. 며칠전 태국 재무장관은 대미국 흑자를 연간 150억달러, 1/3정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32%의 높은 관세율 대상이지만 대미의존도가 매우 낮고 2018~2024년 기간에 대미수출 비중이 오히려 감소했다. 또한 공산품보다는 1차 산품 수출이 더 많아 상대적으로 우려의 정도는 크지 않다. 대신, 인도네시아는 국내 경제구조 개선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캄보디아는 높은 대미수출의존도와 경공업 제품의 수출 때문에 사실상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국가이다. 다만 수출업체들이 대부분 중국, 대만 등 외자기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아세안 공동대응 추진 면밀히 살피자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총리는 미국 관세가 발표된 직후 개별 대응보다는 공동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별국가의 협상력 수준을 고려하고, WTO 체제가 붕괴된 상태라는 점에서 개도국 연합의 목소리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안와르 총리의 공동대응은 미국이 지역별 협상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안와르 총리는 통합을 심화해 아세안의 협상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세안은 오는 26~27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제46차 정상회담을 개최해 이러한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아세안이 당장 무슨 수를 마련할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는 아세안과 깊은 경제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나아가 아세안을 넘어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협력을 강화해 불확실한 국제정세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 특히 중국의 역할에 대해 우리는 아세안과 협력해야 한다. 중국이 미국 대신 저가 제품을 아시아에 쏟아낸다면 아세안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1997년과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중국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위안화를 절하하지 않음으로써 동아시아 경제안정에 기여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아세안과 협력해 중국의 동아시아 안정에 대한 역할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박번순 아세아문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