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의 미국 현장 리포트

트럼프 시대의 미학 ‘공화당 화장법’

2025-05-27 13:00:02 게재

미국 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이른바 ‘공화당 화장법(Republican Makeup)’이 화제다. 이 화장은 매우 또렷한 눈썹, 스모키한 눈매, 진한 파운데이션 등이 가장 큰 특징이다. 짙은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풍성하게 연출하고, 브라운 계열의 아이섀도우로 스모키한 눈매를 만들어 눈을 더 크게 보이게 한다. 특히 이 화장법은 도톰한 입술, 공격적으로 튀어나온 광대뼈, 부드러운 이마를 가진 ‘마러라고 얼굴(Mar-A-Lago face)’과 함께 인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개인저택의 이름이 붙여졌듯이 그를 둘러싼 핵심 인물들의 외모적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이 화장법이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쪽에서는 과도하게 연출된 화장법이 현재 보수주의자들의 허황된 가치와 맞물려 있다고 조롱한다. 이에 대해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진영의 여성들이 성 규범에 맞지 않는 어설픈 광대화장을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트럼프의 남성들은 남성성 돋보이는 화장

갑자기 이렇게 ‘공화당 화장법’이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트럼프의 시각을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워낙 오래전부터 외모와 대중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미인대회를 직접 주최하기도 했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미디어에 자주 얼굴을 내비쳤던 트럼프는 항상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본인 외모에도 항상 신경을 써온 것은 당연지사다. 사실 푸석푸석하고 솜털 같은 머리카락, 구릿빛 얼굴 등 트럼프의 독특한 외모는 그가 정계에 입문하기 훨씬 이전부터 논란의 중심이었다. 트럼프를 비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의 외모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 쉬웠다. 뉴욕의 부동산 거물이었던 1980년대부터 시작된 외모 관련 비난은 그가 대통령이 된 직후 더욱 심해졌다. 그도 자신의 외모 관련 소문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대통령 취임 첫해부터 외모에 대한 그의 공개적인 언사는 훨씬 더 빈번해졌다. 대통령의 공개 발언을 종합적으로 추적하는 웹사이트 ‘팩트바’의 데이터에 따르면 트럼프는 1기 취임 첫해에 누군가를 언급하면서 4번이나 외모 칭찬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나마 조심했던 그의 외모 관련 언사는 고삐 풀린 것처럼 취임 두번째 해부터 불과 2년 만에 31번으로 늘었다고 한다. 취임 첫해와 2년 사이에 늘어난 트럼프의 외모 언급은 대통령직에 익숙해진 그가 자신의 꾸밈없는 생각을 더 기꺼이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그의 외모 칭찬을 다른 정치인들은 쉽게 하지 못하는 친근한 스타일이라고 추켜세우는 지지자들도 있다.

선거 유세에서도 라디오 쇼에 출연해 여성의 외모를 평가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트럼프는 당연히 재임 중에도 여성의 외모를 때로는 “아름답다”, 때로는 “못생겼다”는 식으로 평가를 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공개석상에서 외모에 관한 대부분의 발언은 남성, 특히 제복을 입은 남성에 대한 찬사였다. 장군이든 응급 구조대원이든 그가 보기에 잘 생기고 멋진 사람을 좋아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티나게 무시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곤 했다. 그래서인지 폭스뉴스 앵커 출신인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 내 분장실을 만들라고 지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공화당 화장법’에서 간혹 언급되는 남성들의 모습은 대체로 남성성이 돋보이는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 가득하다. 완전히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있거나, 수염을 기르더라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옆머리는 짧게 앞머리는 길게 기른 군인 모양새다. 이런 헤어스타일에 다부진 체격, 반소매 셔츠에 청바지나 치노 팬츠, 부츠 혹은 전투화를 결부해 전통적인 성 규범에서의 남성성이 강조된다.

성형해서라도 보수층 입맛 맞추기

그렇다면 트럼프 지지자들, 그중에서도 공화당 여성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보수층 시각에서 지극히 여성스러워야 한다. 야심이 가득하더라도 순종적인 모습으로 비쳐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트럼프와 공화당 가치를 향한 변함없는 충성심이다.

사실 지금까지 트럼프는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열정적으로 받아들일 여성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었다. 유권자 중 45%의 여성이 트럼프에게 투표했으며, 가장 충성스러운 지지기반 중 하나가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그리고 복음주의에 충실한 백인 여성이었다. 그리고 백악관 연단에서 그가 연설할 때면 그의 곁에는 당연히 공화당 화장을 한 여성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그들을 자세히 보면 공화당 화장 외에 성형수술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이 종종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던 것과 사뭇 다른 여성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물론 트럼프행정부에서 그 누구도 성형수술을 받았다고 직접 밝힌 사람은 없다. ‘크리스티 노엠’ 국토안보부 장관, ‘캐롤라인 리빗’ 백악관 대변인, ‘로라 루머’ 극우 논객, ‘라라 트럼프’ 영부인, ‘킴벌리 길포일’ 주 그리스 미국대사 등 외모와 관련해 자주 거론되는 여성 중 노엠만이 성형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마저도 치아 교정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외모에 대한 집착은 성형수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톡스와 필러 등 시술까지도 무한정 허용한다. 성형수술과 시술 자체는 이미 많은 미국인에게 인기가 있지만 공화당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방식은 더 공격적이고 노골적이다. 트럼프행정부에서 권력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아무리 무리하게 보일지라도 스스로 보수층의 미학에 맞추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일대 사회학 교수인 알카 메논은 대중들의 눈에 잘 띄는 성형수술이나 시술은 여성 정치인이 자신의 몸에 투자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행위라고 해석한다. 외모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여성이라는 점을 지지층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외모 집착은 극단적 정책 성격과 맞물려

그렇다면 이러한 공화당 화장법, 성형, 시술 등 외모에 관한 집착은 트럼프행정부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먼저 외모 집착은 그의 행정부의 정책적 성격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극단적인 외모 집착과 극단적인 정책적 성격이 짝을 이루는 것이다. 게다가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을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의 미학은 트럼프 2.0의 정치 철학과 정책 목표에 관한 더 큰 무언가를 말해준다.

앞서 언급했던 크리스티 노엠을 예로 들어보자. 트럼프는 국토안보부에서 일한 적도 없고 법 집행에 관한 배경 지식이 거의 없는 그녀를 국토안보부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노엠이 그 직책에 적합한 얼굴과 이미지를 지녔기 때문이다.

노엠은 트럼프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추방 광고에 직접 등장하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이 배경에는 트럼프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다고 한다. 뒤이어 그녀는 공화당 화장을 잔뜩 한 얼굴로 군복까지 차려입고 성조기 앞에 서서 이민자들을 직접 추적해 가두겠다는 경고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국경을 지키는 트럼프에 감사를 표하면서 그에 대한 충성심까지 놓치지 않았다.

샌디에이고주립대 정치학 교수인 로니 슈라이버는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보이는 여성성 강조는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의 규범과 차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성전환 미국인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트럼프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자신이 허용하는 여성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셈이다. 몇몇 여성들에게 권력을 주더라도 마찬가지다.

공화당에서 지금 강조하는 여성의 외모와 이미지는 곧 여성성을 재확인하는 그의 치밀한 전략일 뿐이다. 놀랍게도 일상생활의 면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김찬송

위스콘신대

정치학, 미국 선거·여론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