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독일 톺아보기
독일 메르츠 새 총리의 과제와 전망
10대 독일 총리로 중도우파 기민당(CDU)의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취임했다. 독일 역사상 5번째로 중도좌파 사민당(SPD)과의 대연정으로 우리와 비교하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연합정부다. 하지만 메르츠 총리는 출발부터 평탄하지 않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첫 총리투표에서 부결되는 ‘불명예’를 맛보았다. 독일 정치의 ‘롤러코스터’ 전개에 촉각을 세우던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메르츠 총리의 취임에 안도했고,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등 유럽 주요국가 정상들은 일제히 환영 취임축사를 보냈다.
독일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경제규모 3위 및 유럽 1위로 우크라이나 군사지원과 유럽 군비확장의 중추이다. 지난 70년 전통인 취임 첫 일정으로 그는 과거 철천지원수 국가였지만 전후 최고 동맹국 프랑스를 방문해 마크롱 대통령을 만났고, 또한 의회에서 첫 정부성명을 발표했다. 그 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결하기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강한 독일’ 내걸고 경제와 국방에 집중
‘강한 독일’을 내건 메르츠 총리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4가지 과제 즉 국방 경제 관료주의 개혁 그리고 이민 규제 등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강한 국방’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안보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EU를 ‘착취자’로 규정할 정도다. 메르츠는 취임 일성으로 독일 연방군을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또 국가 GDP 2%에서 5%까지 국방비를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헌법을 개정해 ‘부채 한도선’을 깨고 특별국방비 500억유로를 확보했다.
메르츠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유럽 평화가 위태롭다”면서 “우리가 자녀·손주 삶을 결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독일 연방군 개혁을 위한 야심찬 계획으로 “가장 강한 유럽 군대를 위해 모든 재정 자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치군 트라우마를 벗어나 연방군 현대화를 위해 개혁의 칼을 빼든 것이다.
평화통일 이후 징병제를 없애고 모병제를 채택한 독일이 자발적 군복무에 대한 강력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는 또 국방산업을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 ‘더 유럽적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독일 군수기업 라인메탈이 연일 최고 주가를 기록할 정도다. 독일·유럽 안보를 위해 미국 나토와의 관계를 심화시키도록 노력하면서 자강을 외치고 있다.
메르츠는 “미국이 핵우산을 철수하면 프랑스 핵우산을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가 우·러 평화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무제한 무기’(500㎞ 토러스 순항미사일 등)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겠다고 선언하자 즉각 러시아가 반발했다.
둘째, 경제부흥이다. 전임자인 올라츠 숄츠정부 시기 3번째로 독일이 ‘유럽환자’라는 조롱을 받았다. 코로나 이후 유럽에서 유일하게 독일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기 때문. 경제전문가들은 올해도 제로(0%) 성장률을 보이고 내년에야 부동산 경기로 1%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메르츠 총리는 경제 분야에서 ‘정부의 역할’을 이전 정부와 다르게 정의하고 있다.
기업인 출신 장관 기용해 경제부흥 추진
메르츠는 “산업에 대한 민간투자의 촉진”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 재정이 취약해지더라도 민간 투자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가 출신답게 그는 ‘기업가정신’을 강조한다. 그는 “철도, 학교 등에 국가부채로 조달한 자금을 즉각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철도망이 거의 망가지다시피 해 기차연착이 일상화되면서 ‘문제 철’로 비난받고 있다. 독일의 정확성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메르츠 총리는 기업인 출신 2명을 장관으로 기용했다.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의지다. 먼저 에너지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경제·에너지부 장관으로 베스트에네르기 대표(CEO)였던 카테리나 라이헤가 취임했다. 그녀는 메르켈정부 당시 탈원전 정책 폐기와 추가 원전건설을 주장한 정치인이다. 이어 새로 신설된 디지털·국가현대화부 장관으로 기업인 카르스텐 빌트베르거가 취임했다. 그는 유럽에서 1천곳이 넘는 전자제품 매장 세코노미 대표로 그동안 기민당에 디지털 정책을 조언해 왔다. 인공지능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독일경제는 저성장 늪에 빠져 있다. 게다가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수출중심국가 독일에 이중고를 안기고 있다. 트럼프는 이미 독일의 최대 글로벌 제품 자동차 등에 25% 관세를 매겼는데, 다시 50% 관세를 선언했다. 메르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을 통해 관세가 조정되겠지만 독일로서는 심각한 경제 상황이다.
또 미중 관세전쟁으로 중국의 값싼 제품들이 독일로 밀려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기자동차의 경우 비야디(BYD) 등 중국 제품과 미국 테슬라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 최강국인 독일로서 자존심이 구겨지는 대목이다.
또한 우·러 전쟁으로 가스 등 에너지값이 폭등해 제품 생산단가가 높아지고 국제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이같은 경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메르츠정부의 미래가 달려있다. 그는 "올 여름까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뉘른베르크 경제학 교수이자 ‘독일경제현인회의’ 베로니카 그림 위원장은 “현 정부 정책으로는 경제전환이 쉽지 않다”면서 “부채투자로 약간은 성장할 수 있지만 구조개혁과 혁신분야 민간투자가 촉진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 성장을 촉진하는 방식인 저축 잠재력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해서다. 시민수당과 연금 개혁, 보조금 감소와 규제 완화를 통해 과부하가 걸린 복지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셋째, ‘관료주의 숙청’이다. 개혁 대신에 숙청이라는 과격한 용어까지 등장한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료주의 타파’와 맥을 같이 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민주적 제도라고 평가받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관료주의로 붕괴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철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를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 따라 아부하고 자리만 탐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국가에서 합법적으로 나치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해 최악의 전쟁을 경험했다. 메르츠는 또 ‘번거로운 공급망법’ 등을 폐지하고, ‘행정을 디지털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넷째. 이민자문제 해결이다. 2015년 중동 시리아전쟁으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당시 중동난민 약 125만명을 받았다. 이어 2022년 우·러 전쟁으로 다시 우크라이나 난민 100만명 이상 받아들였다. 이후 졸링겐, 막데부르크 등 독일 거리에서 외국인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 결과 극우 AfD가 기민당에 이어 제2당으로 부상했다. 독일 내부 안보가 무너지고 있다. 따라서 메르츠 정부는 불법 난민을 막고 이민을 눈에 띄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독일 경제 국방정책 새 정부에 '반면교사'
메르츠정부는 야당인 극좌우 정당들(녹색당, 좌파당, AfD 등)에 ‘자비로운 반대’를 기대할 수 없다. 극우 AfD 정당 알리스 바이델 대표는 의회 연설에서 “메르츠는 두번째 선거의 총리”라며 조롱했다.
메르츠 총리는 독일헌법보호소가 AfD를 ‘우익극단세력’으로 분류한 것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진보의 녹색당 카타리나 드뢰게 대표는 “현 정부가 불안하다”면서 이민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극좌인 좌파당 소렌 펠만 공동대표는 “현 정부가 재군축 광기를 추구한다”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츠 총리는 “우리는 미래로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3일 우리나라 대선이 치러지고 새 정부가 출범한다. 미중 경제패권전쟁과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에게 경제와 외교국방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 대해 독일 새 정부가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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