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새정부에 바라는 중대산업재해 정책

2025-05-30 13:00:06 게재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법’(중대재해법)이 시행 4년차에 접어들었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우리 사회의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경영자 처벌 때문에 산업안전 분야는 크게 들썩였다.

다가온 대선 후보 토론에서 한쪽은 처벌 완화, 한쪽은 최근의 사고를 들어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두 의견 모두 각각의 타당한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명에 ‘처벌’이 있다고 제정 취지가 처벌은 아니지 않은가. 개인과 조직을 막론하고 처벌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보다 면하는 것을 우선하기 마련이다. 중대재해법은 현장 특성에 적합한 사고예방 체계 구축과 이행을 유인해야 한다. 쉬운 주제는 아니어서 대선 후보들이 언급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관련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게 아쉽다.

중대재해법, 어떤 변화 일으켰는지 먼저 살펴야

국가통계 상 과거 30년에 걸쳐 중대산업재해는 거의 1/10 수준으로 감축됐다. 경제성장, 사회적 인식 변화가 동력이고 방법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상당 기간 전부터 추세적 정체 상태에 있다. 그런 상황인식과 사회의 누적된 욕구가 고 김용균씨 사망을 계기로 분출돼 산안법 전면 개정과 중대재해법을 탄생시켰다.

중대재해의 속성과 감소 정체를 고려한다면 신설 법령과 정책의 효과를 논하기에 앞서 그로 인한 변화를 살피는 것이 우선일 테다. 중대재해법 영향으로 정부의 예산과 조직, 안전 시장, 기업의 투자는 크게 확대됐다. 그렇게 늘어난 예산과 인력이 어떻게 운영되고, 산업 분야의 구석구석에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지, 그 영향까지 살펴볼 일이다. 특히 법규와 정책 보완을 위해 정부는 이런 변화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중대재해법은 미숙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터진 봇물에 휘말려 급속도로 법이 제정되는 통에 시행 후의 상황들을 충분히 고려하기엔 시간 자체가 부족했다. 일선 현장 언어 시스템 심리 사회 경제 경영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 견해를 충분히 녹이지 못했다.

기업의 합리적 변화를 유인할 수사 방법도, 학습도 턱없이 부족했다. 최악은 산안법의 한계를 넘어 사고예방을 위한 변화를 끌어내야 할 중대재해법을 그 시행령으로 산안법의 틀에 묶어버린 것이다.

그런 중대재해법이 기업과 경영자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시행령과 무리한 수사 덕에 변호사들은 물론, 안전시장까지 면책을 위한 자문으로 북새통이 벌어졌고 사고예방 자원을 사후 면책 증빙용 서류 작성에 매몰시켰다. 재정적 여력이 있는 대기업에서 유자격자들을 쓸어 담는 통에 중소기업은 인력난까지 겪고 있다.

이런 혼란 중에 2022년 말부터 정부 당국은 국가통계인 산업재해통계와는 별개로 통계청의 승인을 받아 ‘재해조사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라는 부가통계를 발표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과 보험 승인 간 약간의 시차 때문에 산재 사망사고 예방사업 구축 즉, 정책 수립과 집행에 활용이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2024년 3월에 관련 보도자료 서두를 ‘2023년 조사사망자수 역대 처음 500명대 진입’으로 장식하며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추진 효과’를 주요 영향 요인으로 내세웠다.

보여주기식 정책과 성과 포장하지 말아야

산업안전 정책의 객관적 평가는 쉽지 않고 동력이 될 관심도 부족해 합리적이라 할 만한 평가가 수행된 경우가 없다. 그런 상황에 몇 달 정도의 정보 시차가 정책 수립과 집행에 어떤 차질을 빚는다는 건가.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정부 정책용 통계를 시중에 홍보하는 이유는 무언가. 자랑삼아 내세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추진효과’와 중대대해 감소의 상관관계를 판단한 근거는 무언가. 객관적 근거가 없다면, 배 떨어진 이유가 까마귀가 날아 오른 것이라는 얘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통계로서 일관성과 객관성 결여는 물론, 인위적인 조사대상 기준에 들지 않는 연간 수백 건의 업무상 사고 사망재해는 정책적으로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중대재해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성과가 목마르더라도 합리적 근거 없는 성과를 말하면 안된다. 법규와 정책의 적절한 보완과 혁신을 방해하는 행위다. 차기 정부는 그런 보여주기식 정책과 성과 포장을 하지 않기 바란다. 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른 실질적 변화를 구석구석을 면밀히 살펴 현재의 혼란과 낭비를 종식시키고 기업의 실질적 사고 예방 노력을 유인할 법규 개정과 정책 마련을 바란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