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의 미국 톺아보기

2026년 미국 중간선거, 표보다 먼저 흔들린 행정절차

2026-06-18 13:00:02 게재

#1. 지난 2일, 캘리포니아에서는 주지사 후보를 비롯한 주 단위 예비선거와 로스앤젤레스 시장 예비선거가 치러졌다. 그러나 선거 뒤에도 개표는 며칠 더 이어졌다. 사실 캘리포니아의 개표·검증절차 지연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이 주는 모든 등록 유권자에게 우편투표지를 보낸다. 선거일인 6월 2일까지 소인이 찍힌 우편투표지가 각 카운티 선거당국에 6월 9일까지 접수되면 집계대상에 포함된다. 물론, 추가 서명확인과 보완절차도 거친다. 투표권 보장과 검증을 우선하는 제도가 개표시간을 늘리는 셈이다.

그런데 그 시차는 정치적 의혹의 빈틈으로 바뀐다. 우편투표 집계 이후 앞서가던 후보의 순위가 뒤바뀌자 트럼프와 일부 공화당 인사들은 다시 조작과 부정선거 의혹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절차상 필요한 지연이 조작 정황처럼 소비되고, 행정의 신중함마저 의혹의 근거로 제시됐다. 2026년 미국 선거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정상적인 행정절차마저도 불신의 상황으로 바뀌는 현실이다.

#2. 지난 3일, 미국의 대표적 흑인 인권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는 연방우정청(USPS)을 상대로 법원에 긴급 개입을 요청했다. USPS는 미국의 우편 업무를 담당하는 연방기관이다. NAACP는 새로운 선거 우편 처리 방침을 문제 삼았다. USPS가 새롭게 정한 절차에 주 정부가 협조하지 않으면, 해당 주의 우편투표지 배송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NAACP는 이 방침이 선거우편을 우선 처리해 배달하기로 한 2021년 합의를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해외 체류자, 군인, 고령자, 장애인, 투표소까지 가기 어려운 지역의 유권자에게 우편투표는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경로다. 그런데 그 길을 누가 관리하느냐에 따라 표가 제때 도착할 수도, 절차 밖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투표지가 오가는 길을 관리하는 권한은 곧 투표절차의 조건을 정하는 권한으로 이어진다. 봉투 규격, 바코드 부착 방식, 주 정부가 제출해야 할 유권자명단, 선거우편의 우선 처리 여부가 투표권 행사 가능성을 좌지우지한다. 우편 시스템이 선거 규칙을 실제로 움직이는 행정 통로가 되는 순간이다.

#3. 2020년 대선 이후, 부정선거 논란의 중심에 자주 섰던 애리조나 매리코파 카운티에서는 최근 선거 장비 반출 문제를 둘러싸고 카운티 내부 갈등이 불거졌다. 발단은 선거 집계센터에 있던 스캐너와 임시투표 봉투였다. 유권자 등록과 우편·조기투표 업무를 맡는 ‘레코더’ 사무실 직원들이 이를 밖으로 빼내 표식이 없는 픽업트럭에 실었고, 임시투표 봉투도 함께 옮긴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카운티 행정을 총괄하는 감독위원회 측은 선거장비 관리 권한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레코더 측은 문제의 스캐너는 조기투표 업무를 위해 사무실 예산으로 구매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이 갈등은 행정조정으로 끝나지 않았다. 4월 들어 특별검사가 임명됐고, 직원들이 절도 혐의와 관련해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주 예비선거 투표 시작을 몇 주 앞둔 시점에 벌어진 이 사건은 매리코파 카운티 선거관리 권한 다툼에 새로운 불씨를 지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거준비 과정에서 장비를 옮기고, 봉투를 관리하고, 임시투표를 처리하는 평범한 행정행위가 언제든 형사사건의 언어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선거관리 공무원으로서는 일상적인 행정 판단마저 위험부담으로 다가오게 된다. 2026년 미국 선거의 갈등은 유세장보다 카운티 선거사무소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부정선거 서사가 선거행정에 대한 시비로

앞서 본 세 사건을 통해 우리는 미국 선거행정에 가해지는 압박이 몇몇 지점에 집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우편투표다. 투표지가 유권자의 손에서 다시 선거 당국에 돌아와야 한 표가 된다. 그 길을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투표권 행사의 조건도 달라진다. 둘째는 선거장비다. 스캐너, 투표지 봉투, 원본 기록, 보관 절차가 모두 의혹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셋째는 선거공무원이다. 이들이 행정적 판단을 할 때마다 형사책임 논란과 정치적 공격을 의식하게 된다면 선거관리는 적극적 운영이 아니라 방어적 생존의 문제가 된다.

세 장면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유권자 명부 문제도 2026년 미국 선거행정의 핵심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에서 유권자 명부는 선거 참여가 시작되는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개표가 이미 행사된 표를 세는 과정이라면 명부는 누가 선거에 들어올 수 있는지를 정하는 입구다.

명부 등재 여부, 주소 정보의 정확성, 시민권 확인 과정에서의 분류, 정정 통지에 대한 대응 가능성 등이 모두 투표 가능성과 연결된다. 즉, 투표 자격을 판단하는 기준, 명부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 정부 데이터와의 대조 방식,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절차 하나하나가 선거 참여의 조건이 된다. 결국, 선거참여를 가르는 조건은 투표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만들어지는 셈이다.

선거행정의 압박이 커지는 만큼 이를 제도적으로 막으려는 움직임도 뚜렷해지고 있다. 일부 주와 지방정부는 선거행정 보호를 위한 법적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법원 명령이나 명확한 법적 근거 없는 선거자료·장비 접근을 막기 위해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 밀워키는 선거공무원에 대한 괴롭힘과 투표소 소란을 막는 조례를 만들었다. 선거를 운영하는 사람과 절차를 보호하지 않으면, 선거 결과에 대한 신뢰도 지켜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압박과 대응의 흐름은 2020년 대선 이후 형성된 부정선거 서사가 현재의 선거행정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우편투표가 크게 늘었고, 일부 경합 주에서는 뒤늦게 집계된 표가 승패의 흐름을 바꿨다. 당시 트럼프와 지지자들은 이 시차를 부정의 증거로 몰아갔지만 법원과 주정부는 검증을 통해 선거결과를 뒤집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선거제도 자체를 의심하는 정치적 언어가 굳어졌다.

그 결과 2020년의 부정선거 주장은 2026년 선거 운영 방식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 의심의 대상은 특정 후보의 득표수에서 선거를 운영하는 절차 전체로 넓어졌다. 표가 언제 도착하는가, 어떤 표를 먼저 세는가, 선거자료를 누가 요구할 수 있는가, 현장의 공무원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는가 등이 모두 정치적 압박을 받는 지점이 됐다. 2026년 미국 선거행정은 바로 이러한 의심 위에서 준비되고 있다.

선거행정 세부절차, 정치적 신뢰와 연결

공교롭게도 비슷한 장면이 최근 한국에서도 나타났다. 6·3 지방선거에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지연되거나 중단됐다. 투표용지 부족 상황에 대응할 별도 매뉴얼이 없었다는 조사 내용까지 알려지면서, 이 문제는 한국 선거관리 체계의 허점을 드러내는 사안이 됐다.

미국과 한국의 사례는 선거행정의 세부 절차 역시 정치적 신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우편투표 배송 기준과 장비 관리가 선거제도에 대한 불신을 확대했고, 한국에서는 투표용지 배정과 현장 대응이 선거관리 전반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계기가 됐다.

부정선거 서사가 이미 정치적 언어로 자리잡은 상황에서는 실제 행정 오류와 근거 없는 의심이 맞물리는 순간, 부정선거의 그림자는 선거행정의 작은 빈틈까지 제도 전체에 대한 의심으로 키운다.

2026년 미국 중간선거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행정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그 무대가 유세장이나 TV토론장이 아니라 유권자 명부, 우편물 분류 시스템, 카운티 선거사무소, 법원 서류 안에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행정의 공간에서 근거 없는 부정선거 주장이 자라날 틈을 줄이는 데서 시작된다.

서강대

BK21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