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I, 그 길을 묻다’ 펴낸 강민구 변호사
“AI 시대 법조의 연료는 판결문”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판결문 공개 확대 필요”
“인공지능(AI)이 자동차의 엔진이라면 법조 AI의 연료는 판결문입니다.”
강민구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현 법무법인 도울 대표변호사·사진)는 17일 내일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선변호인과 일반 국민이 판사와 같은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한 진정한 무기대등은 불가능하다”며 “재판지원 AI 논의에 앞서 판결문 공개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AI, 그 길을 묻다’를 출간한 그는 “AI 시대 법조인의 경쟁력은 더 좋은 질문과 더 깊은 분석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최근 출간한 'AI, 그 길을 묻다'는 어떤 계기로 집필하게 됐나
배경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정보법학회 공동회장으로 있으면서 인터넷과 법의 충돌 지점을 정리한 『인터넷, 그 길을 묻다』를 만들었다. 교수 40명이 참여해 1200쪽 분량의 책을 냈는데 10년 넘게 기본서 역할을 했다. 올해 한국정보법학회 창설 30주년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AI 시대에도 그런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I와 법, 제도, 규범, 문화, 사회가 충돌하는 지점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자는 취지였다.
■ 이번 책은 집필 과정 자체가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전문가 40명을 모아 책을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AI를 적극 활용했다. 심화 리서치 기능을 이용해 40개 주제를 발굴했고 AI가 초안을 만들면 다시 클로드 등으로 다듬고 마지막에 내가 검토했다. 약 40년 법조 경험을 바탕으로 최종 수정한 것이다. 석 달 만에 상·하권을 완성했다.
■ 교정도 AI로 했다고 들었다
사람이 1200쪽을 교정하려면 보통 2주 정도 걸린다. GPT, 제미나이, 클로드, 그록 네 개 AI에 원고를 동시에 넣고 맞춤법, 표현 통일, 명칭 정리 등을 시켰다. 1·2·3차 교정을 거쳐 반나절 만에 끝냈다. 사람이 하면 10일 걸릴 일을 몇 시간 만에 처리한 셈이다.
■ 책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AI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법과 제도, 윤리, 국방, 저작권, 인격권, 국제안보까지 연결된 문명 전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후학과 연구자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하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 최근 사법부가 재판지원 AI를 추진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AI 자체보다 판결문 공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판사들은 해방 이후 모든 판결이 축적된 판결문관리시스템을 실시간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국선변호인이나 일반 변호사, 국민은 접근할 수 없다. 무기대등을 실현하려면 결국 판결문 공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공개를 말하는 것인가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성범죄나 가사사건처럼 민감한 사건은 예외로 하더라도 나머지 판결은 최소한의 익명화만 거쳐 공개해야 한다. 지금은 익명화를 사람이 하는 시대가 아니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업체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판결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개인정보 침해 우려는
한국은 미국과 달라 실명 공개는 어렵다. 다만 지금처럼 과도하게 익명화하면 판결문이 암호문이 된다. 기업과 당사자가 여러 명인 사건은 사건 구조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최소 익명화 원칙이 필요하다.
■ 판결문 공개가 AI 발전과도 연결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AI가 자동차 엔진이라면 법조 AI의 알파와 오메가는 판결문이다. 판결문은 법조 AI의 휘발유이자 연료다. 미국의 웨스트로(Westlaw), 렉시스(Lexis), 하비(Harvey)가 강력한 이유는 민간이 오랜 기간 판결문 데이터를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 현재 한국 법률 AI 수준 평가는
한국의 법률 AI나 공공 AI는 대부분 GPT,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미국 범용 AI 엔진 위에 한글 데이터를 올리는 구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원래 엔진이 가진 문서 처리와 추론 능력이 상당 부분 떨어진다. 법조 실무의 핵심은 판례 검색이 아니라 기록 분석, 준비서면 검토, 항소이유서 작성 같은 추론 작업인데 그 부분이 아직 부족하다.
■ 사법부가 추진하는 양형 AI는 어떻게 보나
양형 AI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 양형은 주어진 데이터를 토대로 가중·감경 요소를 계산하는 작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정확할 수도 있다. 다만 사실관계 전체를 분석하고 당사자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영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 생성형 AI의 환각 현상에 대한 우려도 크다
환각은 무료 버전을 쓰거나 질문을 잘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AI는 우문우답, 현문현답 기계다. 사용자가 질문을 제대로 해야 한다.
■ 어떻게 해야 환각을 줄일 수 있나
판례를 물을 때는 “실제로 존재하는 판결번호만 인용하라”, “공인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판결만 사용하라”고 강하게 지시한다. 법령도 국가법령정보센터 기준으로만 인용하라고 한다. AI는 정보가 없으면 창조하려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명확한 제한을 걸어줘야 한다.
■ 마지막으로 AI 시대 법조인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결국 질문하는 능력이다. 정보 자체는 AI가 제공한다. 앞으로 법조인의 경쟁력은 누가 더 좋은 질문을 하고, 더 깊이 분석하고, 더 정확하게 판단하느냐에서 결정될 것이다. AI는 법조인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법조인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기술이다. 다만 그 전제는 판결문 공개와 정보 접근의 민주화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