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이재명 시대’의 성공조건

2025-06-04 13:00:05 게재

이변은 없었다. 윤석열의 내란사태로 시작된 선거는 내란심판으로 끝났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9.4% 득표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2%)를 물리치고 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8.3%를 받았다.

김문수 후보 패배는 필연적 결과다. 김 후보도 국민의힘도 애초 대선승리는 안중에 없었다. 원인제공자였던 윤석열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하고, 부정선거 악령도 떨쳐내지 못해 ‘내란심판’ 프레임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단일화 외에는 눈에 띄는 대선전략도 없었다. 이런 선거캠페인에 비춰보면 김 후보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득표를 한 셈이다.

이준석 후보는 10%에 못 미치는 득표율에도 2030 남성에게서 높은 지지를 받아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문재인 이명박 전 대통령 ‘오답노트’에 성공비책 있어

이재명 후보의 당선은 또 다른 신화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소년공 출신으로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는 점도 그렇지만, 윤석열정권의 집요한 죽이기에도 끝내 살아남아 승리를 거머쥔 불사조 같은 정치역정은 두고두고 회자될 성공스토리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성공신화 만큼이나 이 대통령 앞에 놓인 과제들도 역대급이다. 윤석열의 유산 정리부터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 트럼프 관세전쟁 대응, 미중 전략경쟁 속에 살길찾기 등 당장 눈앞의 과제만 해도 열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더구나 내란심판 여론이 대선을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 10명 중 4명이 김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은 이 대통령의 앞날이 만만찮음을 시사한다.

물론 길이 없는 게 아니다. 역대 대통령의 실패는 이 대통령 국정운영의 지도와 나침판이 되기 충분하다. 그중에서도 문재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오답노트’는 결코 허투루 넘겨서는 안될 이재명 시대의 성공비책일 것이다.

촛불시민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출범한 문재인정권은 통치철학 부재와 아마추어적 국정운영, 촛불의 뒷배만 믿었던 완장권력들의 어쭙잖은 권력질로 5년 만에 주권자로부터 버림받았다. 특히 ‘적폐청산’에 목맸다가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내고, 청산해야 할 적폐세력에게 정권을 헌납한 과정은 한편의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이 대통령도 시작부터 ‘내란세력 척결’이라는 압박과 유혹에 시달릴 것이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그 과제는 ‘짧게’ ‘좁게’ 끝낼 일이다. 문재인의 ‘적폐청산’처럼 그것을 국정의 풀어갈 열쇠로 여기는 순간 망하는 길로 접어들게 돼 있다. 사실 내란세력 척결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이재명정권이 성공하면 그들의 설 자리는 그냥 없어진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은 개인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았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또 큰 표 차이로 이겼지만 국민 기반이 단단하지 않다는 점도 비슷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 후보는 530만표 차 압승을 거두지만 전체 유권자 득표율은 30.5%에 불과했다.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도 김 후보에게 290만표 차 대승을 거뒀지만 전체 유권자 득표율은 38.9%에 머물렀다. 더구나 이 대통령 앞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때보다 더 강고한 반대진영이 사사건건 딴죽을 걸 채비를 하고 있다.

이명박정권의 위기는 대선 압승 5개월 만에 찾아왔다. 이 전 대통령은 총선까지 이긴 기세를 몰아 일방통행 국정운영을 밀어붙였지만 바로 사단이 나고 말았다. 졸속적인 대미 소고기협상이 범국민적 저항에 부닥치자 이 전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들으며 자책했다”며 반성문까지 썼지만 정권 1년차의 그 소중한 시간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기반이 허약한 정권은 노자의 경구처럼 ‘겨울철 살얼음판 냇가를 건너듯, 사방 주위를 두려워하듯(豫焉若冬涉川 猶兮若畏四隣, 15장)’ 매사에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극복대상은 ‘어제의 이재명’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더 큰 적이 버티고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대부분의 자수성가형 인물들이 그렇듯, 역경을 뚫고 정점에 오른 정치인들은 세상을 만만하게 보기 십상이다. 이 대통령도 성남시장과 경기지사의 성공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도 경기도의 4배에 불과하다’며 자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정운영은 경기도정과 차원이 다르다. 지나친 자신감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GE와 크라이슬러 CEO를 역임한 로버트 나델리(Robert Nardelli)는 평범한 배경의 자신이 쟁쟁한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성공한 비결로 “어제의 나를 극복대상으로 삼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극복대상 또한 ‘어제의 이재명’이다. 이 사실만 잊지 않아도 성공한 대통령의 초석을 놓게 될 것이다.

남봉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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