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검찰개혁 속도 내고 법원개혁도 적극 추진할 때
유명가수 J는 자신은 타인에게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그 타인이 그린 그림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판매했다. 판매자는 그림의 이런 제작방식을 구매자에게 말해줄 의무가 있다는 전제 아래 검사는 사기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기죄 성립을 부정했다. 검사가 명시적으로 기소하지 않은 저작권법위반죄 여부는 심리하지 않는 것이 불고불리원칙과 사법자제원칙에 부합한다고 봤다. 위 그림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예술계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옳고 사법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위 그림의 제작방식은 그림이 J의 친작인지, 타인의 대작인지를 의미한다. 이는 곧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의 문제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저작권법위반죄도 심판할 수 있었으나 사법자제원칙을 내세워 이에 대한 판단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이 사법자제원칙이라고 말했으나 사법회피원칙으로 읽혔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정치권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종종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 흔히 정치의 사법화라고 부른다. 정치권이 정치의 본질을 회피하고 사법 영역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정치의 외주화다.
정치의 사법화보다 사법의 정치화 더 큰 문제
정치의 사법화는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검사가 개입할 때 나타난다. 검사가 정치권의 기대에 맞춰 공소권을 남용해 무리한 기소를 할 때다.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에 대한 검찰수사가 없었던 때를 찾기 어렵다. 이로 인해 유력 후보자가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정치생명이 끊어지기도 했다.
정치의 사법화보다 더 큰 문제는 사법의 정치화다. 사법자제원칙 또는 사법회피원칙을 내세워 정치권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법이 정치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특히 검사의 공소권 남용과 편향적 기소를 통제해야 할 사법이, 정치권의 요구를 실어 나르며 정치세력과 공생하는 검찰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내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구속취소사건에서 종전 실무에 어긋나는 법해석을 해 피고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내놓았다. 그동안 형사실무는 체포적부심은 시간으로 계산해왔고, 구속영장재판이나 구속적부심은 일수로 계산해왔다. 그러나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구속취소 재판에서 법원은 구속영장재판을 시간으로 계산해 피고인 윤석열을 석방했다. 내란이란 중대한 혐의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불구속재판을 받고 있다.
반면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이재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종전 실무에 어긋나는 신속한 절차 진행을 한 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함으로써 피고인에 불리한 결과를 내놓았다.
2022년 9월 8일 공소제기된 후 1심 선고까지 2년 2개월, 2심은 4개월이 걸려서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2025년 3월 28일 대법원에 상고 사건으로 접수된 후 34일만에 판결이 선고됐다. 선거사건 재판은 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 안에 끝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규정을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유독 강조했다.
사법이란 구체적인 분쟁이 발생한 경우 독립적 지위를 가진 중립적 기관이 무엇이 법인가를 인식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의 유지와 법적 평화에 기여하는 국가작용이다. 사법의 본질은 기관의 독립성과 업무의 중립성에 있는 것이다.
이재명정부 법원개혁에 나서야
헌법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이 사법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고(제101조 제1항), 법관의 신분과 그 직무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제103조, 제106조). 법원에서 온 우편물 봉투에 이렇게 적혀있다. “법원은 일반적인 절차 안내 이외에 재판의 중립을 해할 수 있는 법률상담은 할 수 없습니다.”
재판의 정당성은 재판 결과의 정당성과 절차의 정당성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결과의 정당성보다 절차의 정당성이 강조되는 시대다. 재판 절차의 부당성 내지 불공정성은 재판 결과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법관의 독립성과 중립성도 의심받게 한다.
새로운 정부는 그 동안 중단되었던 검찰개혁을 다시 이어가면서 속도를 내야하고, 법원 개혁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