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추경예산은 시작일 뿐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2025년 1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95만원으로 1년 전보다 1.4% 늘었다. 그렇지만 물가수준을 고려한 실질소비지출은 0.7% 감소했다. 가계소비가 위축되니 경제성장 지표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0.2%는 그 자연스런 결과다.
이렇게 보기 흉한 1분기 경제성적표는 무엇보다도 지난해 12월 3일 불법적인 계엄선포 이후 한국을 짓눌러온 우울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내란사태로 말미암아 불확실성의 안개가 짙어진 마당에 경제활동, 특히 소비생활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이제 차츰 달라지고 있다. 국민들의 수심이 걷히고, 기대심리도 차츰 되살아나는 듯하다.
불확실성지수 낮아졌지만 민생회복과 경제활성화에 더욱 발벗고 나서야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1.8로, 4월보다 8.0포인트 올랐다. 고무된 한국은행은 2분기 내수지표 개선 조짐이 있다면서 성장률을 0.5%로 전망했다. 내구재와 비내구재 소비, 도소매업 생산이나 설비투자 등이 나아지고 신용카드 사용액도 늘어났다는 진단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국내 불확실성의 안개가 현저히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정치불확실성 지수는 모두 지난 3일 대통령선거를 전후로 크게 낮아져 비상계엄 사태 이전 수준까지 안정됐다. 경제불확실성 지수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2.5%로 더 낮췄다. 따라서 국내요인만 고려해 볼 때 경제회복의 여건은 점차 무르익어가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아직은 냉기가 남아있다. 특히 영세 소상공인의 경우 사업부진과 부채증가로 인한 어려움이 여전히 크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민생회복과 경제활성화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2차 추경예산 편성을 서두른다. 이재명 대통령이 전임정부 장관들과 함께하는 국무회의를 마다하지 않고 주요 경제부처의 실무진과 직접 비상경제점검TF회의를 여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민생경제TF 2차 회의도 9일 열렸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한 방송에 출연해서 밝힌 2차 추경규모는 대략 20조~21조원이다. 1차 추경예산 14조원까지 더하면 총 35조원에 이른다. 지금 민생경제, 특히 소비부진이 심각하기 때문에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주장했던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도 담겨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 대통령과 새롭게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지금 많은 국민, 특히 소상공인들은 정부의 지원손길을 고대하고 있다. 이런 갈망에 응답하는 것이 새정부의 책무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럴 때 추경예산 편성을 통해 지원에 나선다면 경제심리 개선과 성장세 회복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동시에 재정여건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해까지 극심한 세수부진으로 재정건전성은 더 나빠진 상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올 들어 세금징수가 다소 늘어나는 듯하지만, 넉넉한 수준은 아니다. 더욱이 한은의 금리인하로 시중에 공급되는 통화가 늘어날 전망이다. 금리가 낮아질 때 재정지출까지 크게 늘어나면 물가불안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까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중도의 길’이 있다. 민생의 어려움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곤란하지만 재정자금을 적정규모 이상으로 푸는 것 역시 유익한 일은 아니다. 민생지원금도 꼭 필요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요컨대 재정기능을 활용해 내수회복을 꾀하되 과도한 확장으로 인한 재정악화와 물가불안은 피해야 한다.
재정기능 활용해 내수회복 꾀하되 과도한 확장으로 재정악화 불러선 안돼
추경예산은 경제회복을 위한 실마리를 푸는 시작일 뿐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대기중이다. 소상공인의 과도한 부채 등 취약한 부문을 보강하는 더 큰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위기설에 시달리는 지방건설사를 비롯해 여러 분야와 부문에서 심화되는 양극화 해소 등 경제구조 개선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 이런 복병이 해소되지 않으면 재정과 금융자금 팽창으로 인한 머니게임만 창궐하게 될 수도 있다. 경제회복과 성장은 한 차례의 토너먼트 승부가 아니다. 방향을 제대로 잡고 거북이처럼 일관성 있게 나아가야 한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