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트럼프와 머스크 파국 부른 미 공화당 감세법안

2025-06-10 13:00:06 게재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이달 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달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가까스로 통과시킨 세금 및 지출 법안이 향후 10년간 국가부채를 약 2조4200억달러 증가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메디케이드에 대한 역사적인 삭감으로 2034년까지 약 1100만명이 건강보험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과 일부 공화당 지도부는 CBO의 분석에 결함이 있고 해당 기관이 자유주의자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하원 공화당 지도부는 CBO의 예측이 세금 감면에 따른 경제성장 효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분석 결과를 축소하려는 입장을 취한다.

이번 법안은 2017년 트럼프행정부 시절 통과된 고소득층 감세 조치의 연장과 함께 팁 및 초과근무 수당에 대한 세금 면제,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 국방 우선 지출 확대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트럼프는 연방 지출 1630억달러 삭감을 요구했으며, 이로 인해 국방을 제외한 지출은 22.6% 삭감돼 2017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국방 예산은 13%, 국토안보 관련 예산은 65% 증가할 예정이다.

공화당 내 재정 보수주의자들의 반발

특히 법안은 미국의 핵심적인 두 사회안전망 제도인 저소득층 의료 지원 프로그램 메디케이드와 저소득층 식품 지원 프로그램에서 1조2000억달러 이상을 삭감해 세금 감면 비용을 충당하려 한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의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 개편과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신설된 친환경 에너지 및 전기차 관련 세금 보조금도 감축 대상에 포함되었다.

메디케이드 삭감은 이미 심각한 미국 내 의료 불균형을 더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보편적 건강보험 제도가 없는 유일한 선진국으로 연간 4조5000억달러 이상을 의료에 지출하고 있다. 메디케이드는 빈곤선 이하 국민의 45%를 빈곤선 위로 끌어올리는 핵심 제도로 이에 대한 삭감은 수백만명이 건강보험 없이 살아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상원이 하원에서 통과된 감세 및 지출 법안의 심의에 착수했지만 상원에서 수정된 법안은 최종적으로 다시 공화당이 근소한 다수당인 하원에서 재승인을 받아야 트럼프 대통령의 책상에 놓일 수 있다. 존 튠 상원 의장은 7월 4일까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공화당 상원의원들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뚜렷하다.

일부 의원들은 하원안이 재정적자를 확대할 우려가 있다며 지출삭감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다른 의원들은 하원안에 포함된 메디케이드 등 사회안전망의 대폭적인 삭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특히 재정 보수주의 성향의 론 존슨(위스콘신) 상원의원과 랜드 폴(켄터키) 상원의원은 하원 법안에 대해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법안의 앞날이 불확실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기존 법안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존슨 의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공화당이 상하원과 백악관을 장악한 지금이야말로 지출을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재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폴 의원은 폭스뉴스 선데이 인터뷰에서 국가 부채 감축을 위한 구체적 조치가 부족하다며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이건 진지한 제안이 아니다”라며 “공화당은 메디케이드, 사회보장, 식품 지원 등 부채의 핵심 원인에 더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원에서의 수정 가능성은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에게는 부담스러운 시나리오다. 두 사람은 의원들에게 신속한 법안 통과를 촉구해 왔지만 상원이 하원 통과안을 심각하게 수정할 경우 법안은 최종 승인을 위해 하원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며 이 과정에서 법안의 운명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

현재 하원에서 공화당이 근소한 차이로 다수당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안의 향방은 소수 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 특히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블루 스테이트’ 출신 공화당 의원들은 법안에 포함된 주세 및 지방세 공제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법안을 온건파의 입장에 맞춰 수정하면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예산 매파들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 반대로 강경 보수파를 만족시키기 위해 비용 절감을 강화할 경우 블루 스테이트 의원들이 법안 통과를 저지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더해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유권자들이 실질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사회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 삭감이 지나치다는 점도 우려한다. 특히 메디케이드와 2022년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도입된 청정에너지 세금 공제 등의 축소는 민심의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머스크 “역겹고 혐오스럽다”며 직격탄

정부효율성부에서 물러난 일론 머스크가 최근 X에 올린 글에서 의회의 대규모 지출 법안을 “역겹고 혐오스럽다”고 강도 높게 비난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머스크는 “의회가 미국을 파산시키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크고 아름답다’고 치켜세운 법안의 예산 규모에 대해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이로 인해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재정 매파와 메디케어나 사회보장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을 지지하는 그룹 간 갈등의 골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두 그룹은 공화당 내 핵심 세력이다.

머스크의 공격은 감세가 경제성장을 자극해 비용을 상쇄할 것이라는 공화당 지도부의 주장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국가부채를 최대 3조달러까지 증가시킬 게 골자다. 맨해튼연구소의 제시카 리들은 “관세나 정부효율성부가 적자 해소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는 모두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재정 매파 공화당 의원들은 머스크의 예산 삭감 캠페인이 상원에서 지출을 추가로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하며 삭감된 법안이 하원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머스크의 발언은 그간 코너에 몰렸던 재정 매파들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이들이 트럼프의 정치적 압력에 다시 굴복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공화당 내 재정 보수파들은 과거 여러 차례 트럼프의 입장에 따라 입장을 바꾼 전례가 있다.

일상적 감세카드로 재정운용 원칙 흔들려

연방 예산 운영에는 오래된 경험법칙이 있다. 바로 위기에는 과감한 지출, 위기 이후엔 재정회복이다. 전쟁과 불황, 팬데믹처럼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국가가 적극적인 지출로 대응해야 하고 상황이 정상화되면 건전한 국가재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0년대 초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지만 임기 후반 경제가 안정되자 세금 인상을 수용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 협력해 1990년대 말 경제 호황기에 예산 균형을 달성하며 재정건전성을 확보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0년대 초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GDP의 약 55%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 감세와 지출 증가가 반복되면서 현재 부채는 GDP의 123% 수준으로 제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최근에는 경제위기와 무관하게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적자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경제가 안정된 상태였음에도 대규모 감세를 추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대규모 재정 지출을 유지했으나 적어도 향후 적자 축소를 위한 예산 계획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제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 트럼프 대통령은 수조달러 규모의 추가감세와 지출을 통해 부채를 더 늘릴 준비를 하고 있다. 예산의 기본원칙이 흔들리며 미국은 위기 시기에만 썼던 재정적자 카드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위험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서민원

CA 변호사·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