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고령화시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정년연장’
지금 우리는 저출산·고령화가 동시에 심화되는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평균 기대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국민연금 수급 개시는 65세부터 개시된다. 반면 현실의 정년은 60세에 머물러 있다. 이로 인해 생계는 필요하지만 일자리는 없는 ‘노후 공백’의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정년연장’에 대해 ‘계속고용의무제’라는 대안을 내놨다. 이는 정년을 법적으로 연장하는 대신, 기업이 일정 방식으로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계속고용의무 기간은 단계적으로 연장해 2033년 65세에 이르도록 한 제도다. 공익위원 제언 형식으로 제시된 이 방안은 ‘정년연장’이라는 용어는 피하면서 실질적 고령 고용을 유도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경사노위 계속고용의무제, 대안일까
하지만 공인노무사로서 현장의 노사 갈등, 청년 고용 불균형, 고령자의 생계 불안과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직접 마주해온 필자로서는 이 논의가 과연 지속가능한 사회적 합의의 출발점인지 의문이 남는다.
경사노위가 최근 제안한 ‘계속고용의무제’는 법정 정년 연장에 대한 기업의 부담과 반발을 고려함과 동시에 고령자인 근로자의 생계 보장 문제를 해결하려는 절충안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많은 문제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기업에 고용의무는 부과하면서도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임금체계 개편 또는 단계적인 지원책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다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너무도 당연히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신규채용을 중단 또는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청년층의 고용위축 이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둘째, 경사노위의 제안은 노사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된 것이 아닌 공익위원 중심으로 제시된 ‘중재안’에 가깝다. 즉 노동계는 정년 자체를 법적으로 연장하자는 입장이고 경영계는 고령자 고용의무화에 강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첨예한 상황에서 이번 경사노위의 제안은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적 제안이기에 당사자들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셋째,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지 않은 ‘계속고용’이 법적으로 보장되면 결국 노동시장은 경직될 것이다. 즉 이러한 결과는 조직 내 인력 순환을 막고 전체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고령자 재고용’이라는 형식 아래 임금을 대폭 줄이고 단순 업무로 재배치하는 방식이 일반화된다면 고령자의 자존감과 직무만족도는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
‘연령’이 아닌 실질적인 ‘내용’이 중요
정년 문제는 단순히 연령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본질적인 쟁점은 고령자도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합한 유연근무 제도와 재교육 시스템을 갖춘 ‘내용’ 중심의 노동시장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기업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정년연장 또는 고령자 계속고용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즉 정년연장을 논의하면서 임금체계 개편을 외면한다면 기업은 계속고용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된 임금체계 도입을 위한 정책과 지원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정부는 단순히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기보다는 고령자 계속고용 또는 정년연장을 위한 기업규모별 또는 기업상황별 적합한 지원 방안을 병행해야 한다. 집행중심의 규제정책은 결국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중소 또는 중견기업에 부담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대 간 균형을 고려해야 한다.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과 대립구도에 놓이지 않도록 청년층의 고용정책과 유기적으로 연동된 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정년연장이 고령자와 청년 모두의 일할 기회를 보장할 수 있도록 더 늦기 전에 사회적 합의를 진행해야 한다.
정년연장은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이지만 성급한 제도 도입은 오히려 더 풀기 어려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번 경사노위의 계속고용의무제 제안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제도의 실행에 앞서 부족함을 인지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년연장에 대한 우리사회의 노력은 노동시장 구조와 인식, 제도 전반을 바꾸는 데서 나와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나이의 연장이 아니라 청년층과 고령층이 조화를 이뤄 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진관
노무법인 위너스(인천)
대표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