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웅진 초기부터 굳건한 정치체계 확립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재조사 결과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백제가 공주에 도읍한 475년부터 538년까지 재위한 웅진기 왕들의 묘역이 모여 있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대해 2023년 9월부터 재조사를 실시한 결과, 백제가 웅진 초기부터 이미 굳건한 정치체계와 활발한 대외교역을 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유물들과 왕실의 돌방무덤 구조와 묘역 조성 과정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백제는 도읍 시기별로 한성기, 웅진기, 사비기로 나눌 수 있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조사한 왕릉원 1~4호분은 무령왕릉 묘역과 구분돼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모두 도굴된 상태로 조사가 진행된 바 있으며 96년 만에 재조사 중이다.
왕릉원에 있는 1~4호분의 묘역 조성과정을 보면 사전에 수립한 계획에 따라 경사면을 깎아내 완만하게 조정한 다음 가장 동쪽부터 순서대로 조성했다. 내부 벽면엔 모두 석회를 바르고 바닥에 하천에서 채취한 자갈을 채웠다.
왕릉원에 있는 묘역 중 2호분에서는 화려한 유물들이 대거 출토됐다. 특히, 청색의 유리옥이 달린 정교한 금 귀걸이의 경우, 백제 초창기인 한성기 귀걸이와 웅진 후반기 무령왕릉의 왕비 귀걸이 중간 형태로 보인다. 이에 따라 2호분에 묻힌 왕은 웅진 초기에 재위했으며 당시에도 백제 왕실은 높은 수준의 금세공기술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철에 은을 씌워 장식한 오각형 형태의 칼 손잡이 고리 장식은 앞서 발견된 바 있어 당시 백제가 지방 수장층에게 하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웅진 초기에도 백제의 대내외 정치 체계는 굳건히 유지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여러 종류의 유리옥 1000여점이 수습됐는데 이중 황색과 녹색 구슬에 사용된 납 성분은 무령왕릉과 동일하게 산지가 태국으로 분석됐다. 이에 당시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광볌위한 대외 교역망이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2호분에서 화려한 금 귀걸이와 함께 출토한 어금니 2점의 법의학 분석결과, 10대 중후반의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2호분 주인이 개로왕(21대)의 직계 후손 중 유일한 10대 왕이던 삼근왕(23대, 개로왕 손자)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도 얻었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이같은 결과를 종합해 그동안 정치적 혼란기로만 인식되던 웅진기 전반부터도 백제는 이미 내부 정치 체계와 대외 교역망을 잘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