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간호사제도, 졸속 추진을 멈춰야
과거 정부는 운전면허 제도를 간소화한 바 있다. 방문 횟수를 줄이고 시험 절차를 축소하며 국민 편의를 앞세웠지만, 그 결과는 초보 운전자들의 사고율 급증과 ‘장롱면허’라는 사회적 문제였다. 결국 이 제도는 안전성과 신뢰 부족으로 폐기되었고, 제도는 단순함보다 책임과 전문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런데 지금, 훨씬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현장에서 비슷한 방식의 졸속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은 중증·응급 환자를 돌보는 전담간호사 제도다.
복지부 ‘병원 자율’제도 설계
보건복지부는 전담간호사 제도를 병원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설계하고 있다. 병원이 자체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병원장이 이수증을 발급하면 전담간호사로 인정되는 구조다.
국가 차원의 교육 기준이나 인증, 자격 심사 없이 제도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 인력에 대해, 최소한의 공공적 안전장치조차 없이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셈이다.
하지만 전담간호사는 단순한 간호 업무를 넘어 고위험 환자의 생명 유지와 회복을 직접 책임지는 핵심 인력이다. 중환자실, 응급실, 수술실 등에서 고도의 임상 판단력,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만큼 전문성과 숙련도가 요구된다. 그런데도 몇 시간짜리 온라인 강의나 병원별 편차 큰 기준으로 이들을 양성하겠다는 것은, 간호사 간 역량 차이를 심화시키고 결국 환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접근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현장에서 쉽게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담간호사를 기존 인력의 대체재로 보거나, 고난도 업무를 한두 명의 인력에게 집중시키는 일부 병원 운영 방식은 간호사에겐 과도한 부담을, 환자에겐 생명 위협을 초래한다.
특히 인력 배치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일부 병원에서는 전담간호사 제도가 비용 절감을 위한 편법으로 악용될 우려도 크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전담간호사에게 분야별 자격을 부여해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지속적인 경력 계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제도 설계가 필수적이다. 중환자, 응급, 수술 등 영역별로 표준화된 교육 기준과 자격 심사 체계를 국가가 직접 마련하고, 이를 공신력 있는 방식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병원별 자의적 운영과 인력 착취가 반복되지 않는다.
대한간호협회와 전국 56만 간호사들은 이러한 졸속 추진에 단호히 반대한다.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 인증을 기반으로 한 체계적 교육과 자격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교육은 단지 절차가 아니라, 국민 생명을 지키는 마지막 안전망이기 때문이다.
의료 질·환자안전 확보 우선
운전면허조차 안전 기준을 강화한 시대에, 의료 인력의 자격 기준은 왜 오히려 완화하려 하는가.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교육을 생략하거나 형식화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정교하고 책임 있는 제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제도는 편의보다 책임을 우선해야 한다. 특히 의료 정책에서 ‘간편함’은 곧 ‘위험’이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정책에는 타협이 없어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졸속 추진을 멈추고, 공공성과 전문성에 기반한 안전한 전담간호사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