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기자 질문의 품격과 생중계 카메라

2025-06-20 13:00:00 게재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에서는 종종 설전이 벌어진다. 대통령은 기자의 불편한 질문을 ‘무례’라고 비판하고, 기자는 대통령의 얼버무림을 ‘무성의’라며 맞선다.

잘 알려진 일화 중 하나는 2018년 11월 7일의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남미 이민자 행렬인 ‘캐러밴(Caravan)’을 ‘침공’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CNN의 짐 어코스타 기자는 “침공이 아니다. 이민자들이 미국에 오려는 행위일 뿐”이라고 강변했다. 트럼프는 “무례하다. 당신은 국민의 적”이라며 쏘아붙였다.

거친 설전과 소동은 고스란히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소동 직후 백악관은 어코스타의 출입을 정지시켰다. CNN은 곧바로 백악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언론과 권력 간의 긴장 관계, 권력의 언론관, 권력에 굴하지 않는 기자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백악관 브리핑룸의 생중계는 역동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실은 브리핑룸에 카메라를 더 설치해 기자의 질문 장면을 생중계한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백악관 브리핑룸을 예로 들며 국민의 알권리와 브리핑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기자와 대통령, 기자와 대변인, 기자와 수석이 치열하게 담론을 나누며 치고받는 장면이 과연 나올까.

출입기자는 언론사 대표, 당당하게 질문해야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각 언론사의 ‘에이스’로 꼽힌다. 스스로 ‘1호 기자’라며 자부심을 갖던 시절도 있었다. 취재 잘하고 정권 인사 잘 알고 평판 좋은 ‘대표’를 선발하니 그런 말이 나온 듯하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대통령실 출입기자도 바뀌거나 바뀌고 있다. 민주당 출입 기자가 대통령실로 전입하고, 전임 기자는 국민의힘으로 옮기는 추세가 특징적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기자의 얼굴, 기자가 질문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 기자는 이미 독자에게 신분이 공개된 공인이다.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줄 예리한 질문을 던지며 강단있게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면 된다. 대통령실이 부실하게 답변하거나 얼렁뚱땅 뭉개면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타사 기자 질문을 대통령실이 얼버무리면 그 다음 기자가 재차 묻는 ‘꼬리 질문’을 해야 한다. 그간의 기자회견을 보면 앞선 내용과 무관하게 자기가 준비한 질문만 하는 기자가 적지 않았다. 격에 맞지 않는다.

‘질문 생중계’ 방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찮다. 언론의 정파성과 이념성에 따라 발언권을 제약하거나, 불편한 질문을 하는 기자를 ‘좌표’ 찍을 우려가 상존한다. 인격 침해, 기자 조롱, 신상 털기, 언론사 불매 운동 같은 부작용도 제기된다.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특정 보도에 대한 댓글 공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기자의 고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필자 또한 현역 언론인 시절 그런 고통을 적지 않게 겪었다.

그러나 이 또한 기자의 숙명이자 넘어야 할 산이다. ‘실력’과 ‘품격’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어떤 직업인인가. 질문하고, 경청하고, 취재하고, 확인하고, 해석하고, 보도하는 직업인이다. 예리하게 허를 찌르는 물음은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 지식을 쌓고 핵심을 꿰뚫고 취재원의 심장을 때릴 포인트를 탐구해야 한다. 질문은 짧고 명확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감정 섞인 질문, 장황한 질문, 포인트가 무딘 질문은 금물이다.

기자 질문 생중계는 대통령실과 기자단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를 주문한다. 대통령실은 성실하게 답변하고 기자의 인격과 발언권을 보장해야 한다. 불편한 질문을 하는 기자를 폄훼하거나 발언권을 축소한다면 생중계는 쇼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통령실은 더 긴장해야 한다. 얇은 실력이 탄로날 수도 있다. ‘말 돌리기’와 ‘얼버무리기’는 국민이 냉정하게 판단할 것이다.

실력과 질문 품격으로 정면 돌파를

당연히 기자는 질문의 품격을 높여야 한다. 트럼프의 강압적인 언사에도 굴하지 않던 CNN의 짐 어코스타와 같은 강단이 필요하다. 제발 회견에만 집중하자. 자판만 두들겨선 안 된다. 기자는 타이피스트가 아니다. 회견 내용을 몽땅 녹취해 요약까지 해주는 인공지능 ‘앱’을 활용하자. 그리고 조지 오웰의 이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거짓말을 폭로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실을 조명하기 위해, 나는 쓴다. ”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