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집권여당의 품격

2025-06-20 13:00:00 게재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이 김병기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임, 원내지도부 구성을 마무리했다. 8월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까지 뽑으면 명실상부한 집권당의 진용을 갖추게 된다. 김 원내대표는 취임 후 “이재명정부를 뒷받침할 불침항모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정권을 든든하게 떠받치는 제대로 된 여당이 되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민주당이 집권여당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야당일 때도 압도적 의석을 무기로 의회권력을 휘둘렀는데, 이제 행정권력까지 장악했으니 더한 폭주가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우려다. 여기에 문재인정부 시절 촛불의 뒷배만 믿고 완장권력을 휘둘렀던 여당(민주당)과 윤석열정부 시절 용산의 돌격대 역할에만 충실했던 여당(국민의힘)에 대한 기억들이 의구심을 덧보태고 있는 것일 게다.

헌법적 함의 고려하면 여당은 대통령 하수인 아냐

정권 출범 후 민주당은 그래도 조금 여유를 찾은 것 같다. 하지만 국민 상당수는 민주당의 폭주본능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탄핵 남발과 무리한 입법공세, 사법부에 대한 과도한 압박 등 민주당의 태도는 윤석열정부에 등을 돌린 이들조차 뜨악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그때는 막무가내 정권에 맞선 야당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핑계거리가 있었다. 허나 지금은 다르다.

민주당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 총선에서 180석의 압도적 의석으로 행정권력 지방권력에 이어 의회권력까지 독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집권여당 민주당에 대한 평가는 솔직히 낙제점에 가깝다. 그때도 민주당은 쪽수의 완력에만 의존했을 뿐 집권당으로서의 정치력이나 품격은 보여주지 못했다.

문재인정부 민주당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단어는 ‘오만함’일 것이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오만함,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기둥이니 50년은 집권해야 한다는 오만함, 반대진영은 ‘적폐세력’ ‘토착왜구’이니 때려잡아야 한다는 오만함 등등. 미국의 철학자 마이클 린치도 “지적 오만함은 파벌적일 때 가장 치명적”(‘우리는 맞고 너희는 틀렸다’, 2019년)이라고 했지만, 그때 민주당 모습은 ‘파벌적 오만함’ 그 자체였다.

이재명정부 여당 민주당이 맞닥뜨린 상황 또한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 민주당 내부는 윤석열의 내란사태를 저지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넘쳐날 것이다. 고유의 ‘오만함 DNA’가 발현될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에도 자기들끼리만 잘났다고 으쓱대다가는 또 다시 주권자로부터 냉정하게 외면당할 것이다.

윤석열정부 시절 국민의힘도 ‘정권을 망가뜨리려면 여당이 이렇게만 하면 된다’는 전범을 보여줬다. 보수정권을 3년 만에 궤멸상태로 몰고 간 것은 물론 윤 전 대통령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여당답지 못한 태도도 한몫 거들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시절 국민의힘은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 정도가 아니라 아예 ‘윤석열 돌격대’였다. 대통령 입맛대로 당대표를 쫓아내고, 친윤을 전위대로 내세워 당을 주물럭거려도 “아니 되옵니다”라고 하는 이 한명 없었다.

사실 집권여당과 대통령의 관계는 우리 헌법의 행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헌법에는 대통령(4장)보다 국회(3장)가 먼저다. 의회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당은 의회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지도부 대부분이 국회의원으로 구성돼 있다. 말하자면 여당이 대통령의 하수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헌법적 함의다. 윤석열정부의 몰락은 여당 국민의힘이 이런 헌법정신을 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집권당의 힘은 쪽수 아닌 설득에서 나온다

지금 집권여당 민주당이 갈 길은 이 대통령의 그것 못지않게 엄중하고 멀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입법적으로 뒷받침해야 하고, 시대적 과제 해결에도 앞장서야 한다. 시중의 민심을 대통령에게 가감없이 전달하고, 때로는 “아니 되옵니다”며 제동을 거는 것도 여당 몫이라 하겠다.

이럴 때 쪽수만 믿고 마냥 밀어붙이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집권당의 ‘쪽수 의존증’은 오히려 주권자들의 견제를 부를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E 뉴스타트 지적처럼 권력은 설득에서 나온다. 설득의 요체는 ‘기브 앤드 테이크’의 흥정이다. 흥정의 키를 잡고 있는 이는 바로 대통령과 집권여당이다.(‘대통령의 권력’, 2014년)

우리도 이제는 품격 있는 집권여당을 만나고 싶다. 그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문재인정부 시절 민주당처럼 ‘오만’하지 않으면, 그리고 윤석열정부 때의 국민의힘처럼 ‘비굴’하지 않으면 된다.

남봉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