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공격, 상승전환 대비하던 한국경제에 직격탄

2025-06-23 13:00:03 게재

이란 의회, 호르무즈해협 봉쇄 승인 … 수입원유 70%가 통과

유가 최악땐 150달러 폭등 위기 … 국내 물가 전반에 악영향

추경 경기부양효과 상쇄 가능성 … 1%대 성장도 불투명해져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하던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와 기업들은 국내 산업에 미칠 여파를 살피며 연일 긴급 상황점검에 나섰다. 나토회의에 참석하려던 이재명 대통령은 순방계획을 중단했다. 그만큼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큰 탓이다.

중동산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 에너지 가격이 연쇄 상승하면서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둔화)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뾰족한 대응수단이 없는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사상 처음 봉쇄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한국은 물론 세계경제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가 이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 물가를 자극할 뿐 아니라 원가상승으로 한국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린다. 3년6개월 만에 3000선을 회복한 코스피가 다시 흔들릴 수 있다.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경기 부양 효과를 상쇄할 가능성도 크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동사태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주재,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휴일에도 비상점검 = 23일 정부는 이형일 기재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 주재로 이틀 연속 중동사태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개최했다. 정부는 국제에너지가격 변동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휴일인 전날 열린 1차회의에서도 이 대행은 중동 상황과 금융, 에너지, 수출입, 해운물류 등에서 24시간 모니터링 강화를 지시했다. 다만 정부는 현재까지는 석유, 가스 등 에너지 비축과 수급이 현재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중동 인근 한국 선박 31척도 안전하게 운항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최남호 2차관 주재로 점검회의에 나섰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은 정부 비축유(90일)와 민간 비축분을 합쳐 약 200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들도 즉각 상황 점검에 나섰다. 중동 위기가 심화하자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71%에 이르는 국내 정유 업계는 조달지 다변화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들이 기존 (중동) 거래처 대신 다른 지역에서 대체 원유를 도입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선사 업체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란과 이스라엘을 우회할 수 있는 물류 노선 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주요 가전기업들도 물류비 상승과 현지 사업 위축 우려 등 직접적인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가전제품은 부피가 크고 항공 운송이 어려워 대부분 해상 운송에 의존한다. 현재 해상운임은 이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기준 지난달 초 1300에서 이달 2000대로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물류비 부담이 급증한다.

이들 기업들은 통상 6개월~1년 단위 해상 운송 장기계약 덕분에 단기적 타격은 크지 않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신규 계약에서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물류의 핵’ 호르무즈해협 = 정부가 미국의 이란 공습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호르무즈해협 때문이다. 이란과 오만의 영해를 지나는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전 세계 ‘원유수송 뱃길’이 막힌다.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으로 나갈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좁은 뱃길인 이 해협의 핵심수역이 이란의 영해다.

이란은 국제사회 제재 등에 처할 때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위협용 카드를 꺼내곤 했다. 아직 봉쇄가 단행된 적은 없지만 현재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면서 어느 때보다 호르무즈 봉쇄 우려가 커졌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한국 경제엔 직격탄이나 다름 없다. 한국 수입 원유의 68%가 이 지역을 통과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주요 산유국의 생산 시설이 모두 페르시아만 인근에 있어 한국으로 오는 중동산 원유는 대부분 호르무즈해협을 거친다.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현실화하면 지금 70달러 선까지 급등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뱃길이 막히면 해운 운임도 급격히 오를 수밖에 없다.

◆물가 자극하고 내수에도 악영향 =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도 악영향이다. 그나마 이어지고 있는 중동지역 수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중동에서 수주한 금액은 56억4174만달러로 전체 수주 금액의 48.5%에 달한다.

이 때문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장기화하면 올해 한국 경제가 1%대 성장도 불투명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전날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1.0%로 전망했는데, 이는 미국의 이란 공격 소식 이전에 나온 전망이다.

국제유가 급등은 물가전반을 자극하고 수출은 물론 내수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전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공격당일인 지난 13일(현지시간) 배럴당 74.23달러에서 20일 77.01달러로 급등했다. 전국 휘발유 가격은 23일 오전 9시 기준 리터당 1655원을 넘었다. 서울은 이미 1700원대를 돌파했다. 통상 국내 유가는 국제유가를 2~3주 정도 시차를 두고 따라간다. 당분간 오를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7일 보고서에서 “7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내외까지 올라가고 이후에도 전년 대비 20% 수준의 상승이 지속된다면, 올해 4분기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 후반으로 반등할 것”으로 분석했다.

◆불확실성 커진 금융시장 = 물류 차질 가능성 역시 크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의 물류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하면 에너지 공급 대란이 불가피하다.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20%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유통된다.

금융시장 역시 단기적으로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6·3 대선 이후 꾸준히 오른 코스피 지수는 지난 20일 3021.84로 3년6개월 만에 3000선 위로 올라섰지만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확산하면 안전자산인 달러화 수요가 몰리면서 원화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수출 전반에도 악영향을 준다. 중동이 한국의 주요 수출 지역은 아니지만 글로벌 공급망 불안 확대에 따른 교역 위축 등 간접적인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 전쟁으로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현상) 위험이 커진 것도 대미 수출 둔화 요인 중 하나다.

2차 추경으로 경기를 진작하려던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 한국은행이 당초 예상보다 금리 인하를 미룰 가능성이 커진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기업이 신사업 진출이나 신규 투자를 줄이면서 추경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형일 기재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은 이날 “특이동향이 생기면 기관 간 긴밀한 공조하에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시행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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