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최혜국 약값정책, 글로벌 약값 도미노 상승 우려
글로벌 제약사들에 가격인하 압박
미국서 인하하면 유럽 등서 오를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약값을 낮추기 위해 글로벌 제약업계를 압박하면서, 전세계 각국이 더 비싼 약값을 지불하거나 신약 접근성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제약사들은 트럼프정부와 미국 약값 인하를 위한 자발적 협상을 진행중이다. 트럼프정부가 지난달 ‘최혜국 약값 정책(Most Favoured Nation drugs policy)’ 행정명령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미국 환자에게 제공하는 약값이 전세계 가장 낮은 약값 수준을 가진 나라와 동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비교범주는 1인당 GDP가 미국의 60% 이상인 나라가 대상이다.
지난해 미국 랜드연구소가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약값을 비교조사한 결과 미국의 평균 처방약 가격은 OECD 33개국 평균 대비 약 2.78배 높았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약값이 100이라면 영국의 동일 처방약은 40, 프랑스는 48, 독일은 68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FT에 따르면 미국의 최혜국 약값 정책은 현재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와 글로벌 제약사들이 진행중인 약값 재협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정부가 영국 수준으로 약값을 인하하라고 요구할 것을 우려한 글로벌 제약사들이 영국에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은 제약사들의 약값 인상에 쉽게 응하지 않을 전망이다. 예산이 빠듯한 데다 이미 다년계약을 맺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FT는 “이럴 경우 제약사들은 유럽 등 저가시장에서 신약 출시를 미루거나 포기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유럽은 미국의 약값을 빼먹는 무임승차자”라고 비난해왔다. 미국이 고가의 약값을 지불함으로써, 유럽 등 각국이 저렴한 비용으로 의약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리스크 리서치회사 ‘포어프론트 어드바이저스’의 이사인 더스틴 벤턴은 “최혜국 약값 정책은 유럽이 더 지불해야 미국이 덜 지불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PwC 파트너 필립 스클라파니는 “현재 미국 약값이 100달러고 유럽 약값이 20달러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80~90달러까지 올라가고 미국도 그 정도까지 내려가기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정부는 약값 압박을 무역협상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이 맺은 무역협정문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제약사들의 환경 개선에 노력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의약품 가격협상 권한이 각국에 있기 때문에 미-EU 무역협정에 관련 조항을 넣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미국의 약값이 평균적으로 높은 주요 이유는 제약사들이 보험사나 중개기관인 약가조정업체(PBM)와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개별 협상하기 때문이다. 가격상한선을 따로 두지 않는다. 반면 유럽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부 주도로 약값을 협상하며 상한성을 두고 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