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위기의 굴뚝산업, 혁신이 시급하다
신용평가 전문회사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16일 한화토탈에너지스의 무보증사채 등급 전망을 ‘AA-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강등시켰다. 이어 나이스신용평가는 24일 SK그룹의 화학 소재 계열사인 SK피아이씨글로벌의 기업신용등급 전망을 ‘A-/안정적’에서 ‘A-/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이들 석유화학 기업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최근 석유화학 업황이 장기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날의 전망도 불투명해 보인다. 중국경기가 여의치 않은데다 미국 관세정책 불확실성도 여전해 업황 개선이 지연되고 있다.
석유화학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거대장치 산업인 철강도 시름에 잠겨 있다. 경기가 침체돼 있는데다 중국과 일본제품이 밀고들어오면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대형 철강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을 수 없다. 철강업계 맏형 같은 포스코는 이미 지난해 포항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주요철강업체들이 올 들어 잇따라 공장가동을 줄였거나 줄일 예정이다. 중소 철강사들의 가동률도 50~60%대라고 한다.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 철강 등 중후장대 굴뚝산업
철강과 석유화학은 한국의 고도성장과 함께해온 거대 장치산업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고부가가치 제품보다는 시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범용제품이 많다는 것도 유사하다. 그러다보니 경기침체의 그늘에서 업황과 실적이 저조하고 공장가동이 저조해진다는 것도 비슷하다. 이런 범용제품만으로는 과거와 같은 완전가동은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업계에서도 탈출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각 사가 보유한 나프타분해시설(NCC)을 통폐합하는 방안을 논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HD현대오일뱅크가 롯데케미칼의 설비를 넘겨받고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가 나쁠 때 기업들이 혼자 살아보려고 경쟁을 벌이면 가격이 더 떨어진다. 수익은커녕 공장을 돌릴수록 손실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통폐합을 통해 경쟁자를 줄이고 생산량까지 조절하면 그나마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추진됐던 중화학공업 빅딜도 같은 원리에서 추진됐었다. 당시에도 과잉설비로 말미암아 구조조정을 강요받았다. 특히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이 세운 현대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의 합병이 추진됐지만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지금도 이같은 구조조정을 다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무렵에는 일부 석유화학 회사들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지금은 그때처럼 극도로 부실해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요즘 국내외 경제상황에 비춰볼 때 모종의 돌파구는 분명 필요해 보인다.
정부도 지난해 석유화학 산업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워룸’을 설치하는 등 나름대로 고심해 왔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대책을 제시한 것은 없다. 다만 올 하반기에는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놓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가 적절한 방책을 만들어 위기탈출을 돕는 것은 필요하고도 유익한 일이다.
그렇지만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 현재 방만하게 투자된 비핵심자산부터 정리해야 한다. 기업의 수익성을 향상시키기는커녕 도리어 좀먹는 사업들은 부지런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포스코나 현대제철, LG화학과 롯데케미칼 등 일부 기업들이 비핵심자산을 처분하는 등 나름대로 자조노력을 하고 있다.
기업 스스로 노력하면서 정부에 도움 요청하는 것이 순리
요컨대 기업 스스로 노력하면서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받는 것이 순리다. 그래야만 정부나 정치권도 지원할 명분이 생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말이다. 아무리 로봇과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온다고 하지만 철강과 석유화학 등 굴뚝산업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이들 굴뚝산업도 이제는 기존의 범용제품 위주에서 벗어나 부가가치 높은 제품으로 근본적인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 시황에 따른 영향을 덜 받고 나아가서는 어떤 시황에서도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품 위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이 진정한 혁신을 거쳐 보다 강건한 체질을 갖추도록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머뭇거리다간 더 어려워진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