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호황 베트남, 새벽일까 황혼일까
미중 사이서 외교 줄타기까지
또 람 서기장의 이중 과제
베트남 경제는 지난 15년간 연평균 6%의 성장을 기록하며 아시아의 신흥 경제 강국으로 떠올랐다. 도이모이(Doi Moi, 쇄신) 정책 이후, 1인당 국내총생산은 18배 이상 늘었고 빈곤율은 급감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조립 공장을 세우면서 베트남은 세계 공급망의 핵심 허브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 기반은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최신호에 따르면 이 호황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문제의 핵심을 구조적 의존과 낮은 부가가치로 꼽았다. 외국 기업들은 2023년 기준 GDP의 20%, 수출의 72%를 차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은 단순 조립에 국한돼 있으며, 평균 생산성은 아시아 중위권보다 37% 낮다. 숙련도가 낮은 노동자들이 이끄는 조립 공정에 의존하는 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은 어렵다. 임금은 오르고 인재는 부족하다.
새로 취임한 또 람 서기장은 이 위기를 직시하고 있다. 그는 공무원 10만명을 줄이고, 관료조직을 절반 가까이 축소하며 민간 중심의 경제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민간 부문의 경제 비중을 현재의 50%에서 70%로 끌어올리는 것이 그의 목표다. 연구개발 지출에 대한 세제 혜택, 외국 기업과 협력하는 국내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포함됐다.
하지만 민간 기업 환경은 여전히 척박하다. 복잡한 규제, 불투명한 집행, 국가의 은행 지배력은 창업과 성장을 막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토지와 신용에 접근하기 어렵고, 교육 시스템은 시대에 뒤졌다.
또 다른 과제는 외교다.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 모두와 전략적 관계를 맺고 있다. 두 나라는 베트남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지만, 남중국해 분쟁과 경제 안보 갈등으로 베트남은 외교적 균형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하자 람은 가장 먼저 연락해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철폐를 제안했다. 트럼프는 이를 칭찬했지만, 며칠 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하노이를 방문하자 비난으로 돌아섰다.
과거 응우옌 푸 쫑 전 서기장은 강대국 사이에서 “굽히되 꺾이지 않는” 대나무 외교를 펼쳤다. 베트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비난을 피하며 중립적 입장을 유지했다. 또 람은 이런 외교 전략을 계승하면서도 적극적인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올들어서만 13개국을 방문한 그는 유럽연합(EU)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러시아와는 저렴한 원자력 개발을, 한국과는 방산 협력을 논의 중이다. 특히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서의 역할 확대가 주목된다. 이코노미스트는 “베트남은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며 동시에 경제 체질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람이 직면한 과제는 녹록지 않다. 강대국 압박은 계속될 것이며, 내부의 정치적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2026년 초 열릴 당대회에서 그의 리더십이 재신임받을지도 미지수다. 더구나 성장을 지속하려면 조립 공장에서 기술 산업으로의 도약이 필요하고, 외교에서는 단순한 중립을 넘어 주도적 역할이 요구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