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 경제’에 불확실성 더하는 트럼프
중동지역 지정학적 불안은 여전한 변수 … “시장의 침묵은 가장 큰 비명”
시장은 불확실성을 무서워한다. 눈에 보이는 위험은 관리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 동안 세계시장은 글로벌 무역갈등과 지정학 리스크, 정치적 혼란 등으로 점점 깊은 불확실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충돌은 세계시장의 ‘불확실’에 ‘불확실’을 더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는 초강수를 둔 뒤 이스라엘-이란 전쟁을 우격다짐식으로 봉합했지만 불확실성은 더 짙어졌을 뿐이다.
WSJ “이란 폭격으로 불확실성 가중”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RSM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조 브루수엘라스는 현재 미국 경제를 ‘만연한 불확실성’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는 “테이블 위에 너무 많은 리스크가 있다”면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다행히 걱정했던 유가는 빠르게 안정을 찾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자흐스탄 알제리 오만 등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산유국 8개국이 신속하게 감산을 철회했다. 무엇보다도 이란이 세계 원유의 약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지 않았다. 국제 원유가격은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일시 상승했다가 6월 24일 기준 7% 하락해 배럴당 68.51달러를 기록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글로벌 에너지시장의 기본구조가 바뀌고 있다. 세계가 점점 중동 중심의 원유 공급 체계에서 벗어나고 있다. 미국의 셰일오일 개발과 비중동권 산유국의 부상,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등이 에너지 시장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미국은 셰일오일 산업의 성장과 함께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했다. 캐나다는 오일샌드로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의 산유국에 올랐다. 브라질도 심해유전 개발로 세계7위 산유국으로 떠올랐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칼렌 헨드릭스 연구위원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원유 생산의 중심은 점차 중동에서 벗어나고 있다”면서 “이는 중동사태와 유가의 역사적 연결성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비중도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는 2023년 기준 세계 전력 생산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전기차도 크게 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신차 판매 중 20% 이상이 전기차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은 여전히 세계경제 불확실성을 키우는 큰 변수로 남아 있다. WSJ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격화될 경우 세계경제는 더욱 불투명해 질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유가가 10% 오르면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의 핵심 항목이 0.04%p 상승하고,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할 경우 미국 GDP 성장률은 0.1%p 하락할 수 있다.
FT “시장 충격, 수년간 지속 가능성”
중장기적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의 석유시장 전문가인 아므리타 센은 23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이란-이스라엘 충돌에 의한 석유시장 충격, 수년간 지속 가능성’이라는 칼럼을 통해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다시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센은 “최근 세계 원유 생산이 정점을 찍고 있으며 수요는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이런 상황에서 이란과 이스라엘 간 갈등은 중장기 유가 상승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썼다. 특히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체제전복을 추진할 경우 정치적 강경파 혹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부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기적으로 국내 정치 불안이 심각해질 경우 이란의 석유·가스생산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극단적 시나리오로 국가 분열이나 내전 발생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1979년 이란혁명, 1991년 걸프전, 2002년 베네수엘라 쿠데타, 2011년 리비아 내전 등 OPEC 회원국들의 정치 혼란은 원유 생산에 장기적인 피해를 안겼다. 산유국의 정치불안은 원유 공급을 장기간 위협하며 유가를 끌어올리는 공통된 경향을 보였다.” 센은 현재 OPEC+ 산유국들이 이미 증산 여력을 대부분 소진한 상황임을 지적했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도 2027년을 정점으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글로벌 관세전쟁 여파로 시추장비 투입 규모도 감소하는 추세다. 관세가 높아지면 시추장비 투입과 유지보수에 필요한 핵심 자재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도 글로벌 석유 수요는 감소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의 재집권과 함께 미국의 친화석연료 정책기조는 강화되고 있다. 미국 하원은 지난 5월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조기에 종료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석탄 및 가스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대한 모든 규제를 철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조차도 친환경 에너지의 비용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저탄소 체제로의 전환 속도를 늦추고 있다. 센은 “현재 이란의 약화된 상황은 향후 수년간 유가상승을 초래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이란의 생산이 감소하는 시점과 다른 산유국들의 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가 겹친다면 시장 불확실성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어두운 경제 지표들마저 쏟아지고 있다. 최근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3%, 미국은 1.4%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특히 오는 7월 31일 트럼프가 부과했던 이른바 ‘해방일’ 관세유예가 만료되면 ‘하반기에는 전 세계 무역이 거의 멈춰 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아직까지 패닉에 빠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 주식시장은 4월 초 이후 20% 넘게 오르며 사상 최고치에 근접해 있다.
왜 그럴까?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 학장이자 FT 칼럼니스트인 질리언 테트가 이를 분석했다. 테트는 며칠 전 FT에 ‘시장의 침묵, 그것이 더 두렵다’는 칼럼을 통해 세계시장의 불확실성을 짚었다. 그는 “투자자들은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다가오는 경고 신호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테트는 시장 침묵의 원인을 세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타코(TACO)효과’ 때문이다. ‘TACO효과’란 “트럼프는 항상 겁을 먹고 물러선다”의 머리글자를 딴 월가의 신조어다. 트럼프를 조롱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및 무역정책들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 것으로 시장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시간차 문제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1990년 이후 무역 충격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은 경제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최대 1년이 걸린다”로 나왔다. 국제결제은행(BIS)도 최근 “불확실성이 투자와 생산 성장에 실질적인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지만 그 영향은 올해가 아니라 2026년에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셋째 ‘재난 피로’ 가능성이다. 한꺼번에 온갖 충격이 쏟아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고통을 이겨내는 데 익숙해졌다. 현재 시장을 무너뜨릴 만큼의 단일 충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중동전이 격화되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큰 충격이지만 지금 유가는 70달러 안팎이다.
가장 큰 꼬리위험은 트럼프발 불확실
투자자들이 마주한 것은 명확하고 즉각적인 재앙이 아니라 점점 다가오는 꼬리위험(tail risk)이다. 가장 큰 꼬리위험은 트럼프발 불확실이다. 국제법을 어기는 이란 폭격, 상상을 뛰어넘는 관세부과, 법조차 무시하는 이민자 추방 등에 이어 또 어떤 돌발행동을 이어갈지 알 수 없다.
결국 다시 불확실성의 문제로 돌아온다. 전문가들조차 어떤 꼬리위험이 닥칠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테트의 말대로 “가끔은 침묵이 가장 큰 비명”인지도 모른다. 경제전문가들에게 한마디. “바보야, 문제는 트럼프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