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텐센트, 안방서 AI주도권 경쟁
차이신 “텐센트는 위챗 중심 생태계 구축 … 알리바바는 AI 방대한 인프라 구축”
올해 2월 전세계는 딥시크가 글로벌 인공지능(AI)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딥시크는 몇주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갑자기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됐다. 한동안 딥시크는 중국 인터넷경제의 권력구조를 뒤흔드는 듯했다. 하지만 거대 기술기업인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방관하지 않았다. 조직을 신속히 재편하고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며 AI 경쟁에 뛰어들었다.
텐센트는 딥시크 모델 R1을 자사의 AI 챗봇 ‘위안바오(Yuanbao)’에 통합했다. 경쟁 대신 협력을 선택한 이례적인 결정이었다.텐센트는 자체 AI모델 훈위안(Hunyuan)의 훈련을 일시중단하고 딥시크와 위안바오 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텐센트가 위안바오 등 애플리케이션에 집중한 반면, 알리바바는 인프라와 개방성을 중심으로 전략을 짰다. 알리바바 CEO 우융밍은 올해 2월 “향후 3년간 AI와 클라우드 인프라에 3800억위안(약 72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0년간 전체 투자액과 비슷한 액수다. 알리바바는 AI와 관련없는 투자를 대폭 축소하고 모든 자원을 AI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매체 ‘차이신’은 최신호에서 “알리바바는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를 중심으로, 텐센트는 위챗 등 대규모 소비자 플랫폼에 AI를 통합하는 데 베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의 경쟁은 최고의 AI모델을 만드는 것을 넘어 차세대 컴퓨팅 시대를 정의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알리바바 한 임원은 “AI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승리를 논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알리바바의 AI 인프라 베팅
알리바바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인프라 전쟁에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중국 주요 기술기업 중 처음으로 오픈소스 AI 개발을 완전히 수용했다. 한 AI 벤처투자사의 파트너는 “알리바바 계획은 3가지 축으로 구성됐다”며 “자체 기반모델을 개발하고, AI 챗봇 기업을 인수하거나 자체개발하며, 인프라부터 최종사용자 애플리케이션까지 전체 스택에 걸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리바바는 2020년 클라우드 부문을 재편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 전 임원 저우징런을 CTO로 영입하며 AI 전환을 시작했다. 저우징런은 알리바바 AI연구소인 ‘DAMO아카데미’의 대표도 맡았다.
그러다 오픈AI가 2022년 11월 챗GPT를 출시하며 전세계를 놀래켰다. 알리바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격했다. 같은 달 알리바바는 오픈소스 중국 모델허브인 ‘모델스코프(ModelScope)’를 조용히 출시했다. 화려한 채팅봇에 가려졌지만 개발자들 사이에서 인기모델이 됐다. DAMO는 300개 이상의 검증된 모델을 생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 가운데 1/3 이상이 중국어 기반이며 모두 오픈소스로 공개됐다. 모델스코프는 현재 7만개 이상의 모델과 1500만명의 개발자를 보유하고 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는 2023년 4월 LLM모델 큐원(Qwen)을 출시했다. 10월에는 수백억개의 파라미터를 갖춘 2번째 버전을 출시했다. 이후 큐원1.5, 큐원2, 큐원3 등 새로운 모델을 3~4개월마다 출시했다. 가장 최근의 성과는 올해 4월 출시된 큐원3이다. 알리바바 측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오픈소스 모델”이라며 “딥시크 R1모델의 파라미터 1/3만 사용하면서도 이를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큐원 모델을 잇따라 내놓은 데엔 전략 전환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2023년부터 알리바바 그룹을 이끌고 있는 우융밍 CEO는 알리바바 클라우드 의장직도 맡고 있다. 알리바바는 올해 초 신규 클라우드 수요의 60~70%가 AI모델 추론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큐원을 통해 직접 수익을 거두는 것은 불확실하지만, 큐원이 알리바바 클라우드 전체 제품으로 트래픽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알리바바의 최신분기 실적은 이 비전을 뒷받침한다. 올해 1분기 알리바바 클라우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 증가한 301억위안(약 5조7300억원)을 기록했다. AI 관련 매출은 7분기 연속 세자릿수 성장을 달성했다. 클라우드 사업 조정EBITDA는 전년 동기 대비 69% 증가한 24억2000만위안(약 46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월 기준 바이두와 중국전력망공사, 차이나모바일, BMW, 오포(OPPO) 등 29만개 이상의 개발자와 기업들이 알리바바 클라우드가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이용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대기업 비야디(BYD도 이달 들어 알리바바와 계약을 체결했다.
생태계에 묶어두려는 텐센트의 AI 전략
알리바바가 AI 인프라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는 동안 텐센트는 사용자가 먼저 접하는 애플리케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초 텐센트는 AI 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해 회사 내 훈위안 모델 의존도를 줄이고 딥시크와의 통합을 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특히 플래그십 AI 어시스턴트인 위안바오를 통해 이 전략을 구체화했다. 위안바오와 QQ 브라우저 등 4개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딥시크와 통합했다.
위안바오는 즉각 텐센트의 주요 AI 제품으로 부상하며 대규모 지원을 받았다. 텐센트 핵심자산이자 중국 최대 소셜앱인 위챗은 올해 4월 위안바오를 통합해 첫 AI 기능을 론칭했다. 텐센트 마틴 라우 사장은 최근 실적발표에서 “위챗 사용자의 연락처, 대화, 콘텐츠 흐름에 완벽히 통합되는 위챗 전용 AI에이전트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텐센트는 브라우징을 넘어 차세대 AI 도구를 조용히 개발 중이다. 눈에 띄는 제품 중 하나는 PDF를 중심으로 개발된 스마트 워크스페이스 어시스턴트 ‘IMA’다. 지난해 11월 PC 버전을, 올해 초 모바일 버전을 출시했다. 텐센트 생태계에서 딥시크를 완전히 채택한 첫번째 제품 중 하나다. 올 3월 기준 IMA의 PC 사용자 수는 전월 대비 24.8% 증가했다.
텐센트의 가장 큰 강점은 위챗 중심 생태계의 막대한 영향력이다. 한 B2B AI 기업 창업자는 “많은 기업 고객들이 이미 위챗 워크와 도큐멘트 위에 자동화 도구를 구축하고 있다”며 “고객 데이터와 워크플로우 등 모든 것이 이미 그 안에 존재한다. 위챗 생태계 안에 자연스레 머물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 AI서비스 기업 ‘라이예’의 CTO 허위촨은 “AI 에이전트가 표준이 된다면 많은 기업들이 텐센트에 베팅을 하게 될 것”이라며 “사람들이 이미 사용하는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 생태계 내에 AI가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AI 내부화 경쟁으로 이어져
2024년 중국 기술 대기업들은 대규모 AI모델을 배포하기 위해 경쟁한 해였다면, 올해는 이를 사업운영의 핵심으로 내재화하기 시작한 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마케팅부터 물류, 게임부터 글로벌 무역까지 AI를 모든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명확한 상업적 성과는 중국의 인터넷 경제를 이끌어온 광고 분야에서 나타났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대규모 모델을 활용해 광고를 사용자에게 더 잘 매칭하고 대규모 캠페인을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텐센트는 2021년부터 광고 타겟팅을 위한 조 단위 파라미터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현재 AI를 활용해 비디오 스크립트부터 가상 인플루언서까지 모든 것을 제작하고 있다. 텐센트 최고전략책임자 제임스 미첼은 “전통적인 배너광고 클릭률(CTR)은 0.1%, 피드광고 클릭률은 1%였다”며 “하지만 AI를 통한 일부 광고는 3%의 클릭률을 달성했다. 아직 어느정도까지 오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를 혁신하고 있다. 추천과 검색에 집중해온 알리바바는 최신 AI를 통해 콘텐츠 생성과 소싱 효율화, 국경 간 무역 자동화를 실현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자사의 글로벌 B2B 플랫폼에서 구매자와 판매자를 위한 AI 에이전트를 출시했다. 지난해 11월엔 ‘아씨오(Accio)’라는 거래 전용 검색엔진을 선보였다. 주문자의 모호한 요청을 구체적으로 해석해 장비목록, 공급업체 추천 등 전체 구매계획을 제공하고 있다.
차이신은 “알리바바의 오픈소스 클라우드와 텐센트의 위챗 생태계 중 어느 쪽이 장기전에서 승리할지는 아직 미지수”라며 “하지만 중국의 AI 호황 속에서 플랫폼 파워(컴퓨팅·콘텐츠·커뮤니티)가 가장 가치 있는 자산으로 입증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