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떠나거나 버티거나 엎드리거나

2025-07-03 13:00:04 게재

미국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1955년 영화에 데뷔했을 때 그의 이름은 크레딧에 오르지도 않았다. 세월이 흘러 1964년 영화에 비로소 이름을 올린다. ‘이름 없는 사나이’로 출연한 ‘황야의 무법자’다. 마카로니 웨스턴 대부인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달러 트릴로지’의 첫번째 영화다. 원래 제목은 ‘한 줌의 달러를 위해’다. 우리 식으로 하면 ‘그깟 돈 몇 푼을 위해’겠다.

두번째 영화는 ‘석양의 건맨’이다. 원제목은 ‘몇 달러 더 벌려고’다. 여기까지는 제목에 달러(Dollar)가 들어간다. 세번째가 '석양의 무법자'다. 돈을 두고 벌이는 세 부류의 인간군상을 그려낸다. 원제목은 ‘착한 자, 나쁜 자, 추한 자’다.

이 ‘달러 트릴로지’에서 달러를 권력이나 자리로 치환하면 어떨까. 새 정부 출범 30일인데 최근 관가에서 보이는 공직자들의 모습이 얼핏 겹쳐 보인다. 좋거나 나쁘거나 추한 게 아니라 쫓겨 떠나거나 버티거나 엎드리는 모습으로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한부 동거중인 전임 정부 국무위원들의 시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한 청문회에 이어 내각도 속속 진용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청문회 과정이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은 실용과 탕평을 바탕으로 속도감 있게 진행 중이다.

떠나는 친윤 검사들의 아전인수 궤변

떠나는 행렬은 검찰부터 시작됐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1일 사의를 표명하고 2일 퇴임식을 가졌다. 이른바 ‘친윤’ 검사장들도 줄줄이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다. 심 총장은 입장문을 통해 민주당이 주도하는 검찰개혁을 비판했다. 형사사법제도를 시한과 결론을 정해놓고 추진하면 예상하지 못한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거다. 검찰의 기득권 유지를 마치 국민을 위한 것처럼 호도하는 거다.

검찰개혁은 김대중정부 때부터 추진했지만 그들의 비수에 찔려 번번이 좌절되지 않았나. DJ는 아들을 구속함으로써, 노무현은 형을 구속함으로써 개혁을 저지했다. 문재인정권은 적폐청산을 위해 검찰의 칼을 썼다가 그 칼에 당했고. 사실 심 총장은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초래한 장본인 아닌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합법적 탈옥’을 주도하지 않았나.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부장판사의 이해하기 힘든 구속 시간 계산에 대해 즉시 항고도 일반 항고도 하지 않고 뭉개버렸다. 지금 윤석열 피의자가 반바지 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하고 특검 수사에도 어깃장을 놓는 바탕에는 심 총장의 배려가 있다. 하마터면 김용현 전 국방장관도 불구속 상태로 풀려날 뻔 했다.

검찰불신을 깊게 만든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 먼저 사죄해야 하지 않나. 여전히 검찰권력의 영속을 기대하며 “5년짜리 권력이 겁이 없다”고 한 윤석열의 오만에 동조하는 것처럼 비친다. 동반 사퇴한 검사들도 견강부회 강변과 아전인수 궤변을 남겼다. 떠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끝을 남긴 모습이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버티기로 작정한 듯하다.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에게 “방통위원장은 대통령과 임기를 맞추는 게 좋겠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윤 전 대통령과 맞추겠다는 거냐”고 확인하자 자신의 임기를 고수하겠다고 한다.

이 밖에도 임기보장을 내걸고 버티는 공직자 기관장들이 있다. 전임 정권 막바지에 낙하산을 탄 기관장들 말이다. 특히 12.3 내란사태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알박기’로 자리를 차지한 기관장과 기관 임원들이 그렇다.

어쩌면 이들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송 장관은 실용 내각의 상징이 됐다. 일각에서는 유력한 장관 후보를 결과적으로 저격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송 장관이 감사를 벌였던 인사라는 점에서 비롯된 추측 혹은 억측이겠다. 아마도 실제는 능력과 실용, 여성과 통합 메시지를 담았겠지만.

이번 검찰인사에서 중용된 ‘친윤’ 검사들도 그렇다. 조국혁신당이 문제를 제기한 친윤 핵심들이 예상과 달리 살아남을 뿐 아니라 영전했다. 검찰 동요를 막고 서서히 정리하겠다는 심산일까, 아니면 새 정권에 충성맹세를 받아들인 걸까.

대부분의 ‘영혼 없는’ 공직자들은 납작 엎드린 모습이다. 전임 정부에서 민주당 법안에 거부권 논리를 세웠던 그들은 이제 법안 통과의 타당성을 어떻게 제시할까. 과연 양곡관리법을 반대했던 농림부와 노란봉투법을 반대했던 고용노동부 관리들은 어떤 입장일까.

새 술 새 부대에 담는 게 탕평의 첫 걸음

레오네 감독의 ‘달러 트릴로지’를 ‘자리 트릴로지’로 바꿔보자. 그러면 제목이 ‘그깟 자리를 위해’ ‘좀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떠나는 자, 버티는 자, 엎드리는 자’가 어떻겠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다. 위스키를 숙성하는 참나무통처럼 재활용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다.

그럼에도 뉘와 썩은 사과는 속히 집어내야 한다. 그게 만사를 좌우하는 탕평 실용 인사의 첫걸음 아닐까.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