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밀폐공간 질식사고 또 반복

2025-07-07 13:00:14 게재

올들어 인천·여수·전주 등에서 잇달아 … 하청구조에 안전보다 비용절감 우선

유해 가스 농도를 미리 측정하기만 해도 방지할 수 있는 후진적 산업재해·안전사고인 밀폐공간 질식사고가 반복하고 있어 재발 방지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사고가 중소사업장은 물론 대기업 사업장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하청 구조에 따른 문제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일 인천 계양경찰서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22분쯤 인천시 계양구 병방동에서 “도로 맨홀 안에 사람 2명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신고 접수 20분 만에 맨홀 속 지하에서 심정지 상태인 오·폐수 관로 조사·관리 업체 대표 A씨를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맨홀 속에서 오·폐수 관로 현황 등을 조사하던 직원 B씨는 실종돼 소방당국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맨홀 GIS(지리정보시스템) 데이터베이스 구축용역’의 하도급 업무를 맡은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B씨가 맨홀 아래로 내려간 직후 “가스다”라고 외친 뒤 올라오지 않자 A씨가 구조하러 뒤따라 내려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들이 유독가스에 질식한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사고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사고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또 경찰은 발주처부터 재하청 업체까지 전부 수사 선상에 두고 계약관계와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대기업 사업장도 안전지대 아냐 = 맨홀 등 밀폐 공간에서 작업하다 유독가스로 질식하는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여수시 만흥동 한 식품 가공업체에서 폐수처리시설을 청소하던 업체 직원과 대표가 유해가스를 흡입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해조류 찌꺼기와 오수가 섞인 4m 깊이 정화조 내부에서 청소 작업을 하던 직원이 가스흡입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회사 대표가 구하러 정화조 안으로 급하게 들어 갔다가 같이 변을 당했다.

지난 5월에는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의 한 제지공장에서 맨홀 등 청소 작업을 하던 노동자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홀로 종이 찌꺼기(슬러지) 등이 쌓여 있는 3m 깊이의 맨홀에 들어갔던 작업자가 쓰러지자 동료들이 구조하러 들어갔다가 추가로 사고를 당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성명을 내고 “3m 깊이의 맨홀 청소작업은 질식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만큼 회사가 사전에 충분한 예방대책을 마련하고 그에 맞게 작업을 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사고”라며 “사고 원인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회사 대표와 안전책임자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지난해 2월 인천 현대제철 인천공장 폐수처리장 저류조에서 작업하던 하청업체 직원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 방독마스크가 아닌 일회용 마스크를 쓰고 작업했다.

인천 맨홀 실종자 수색 6일 인천 계양구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실종된 작업자를 수색하기 위해 계양소방서 119구조대가 맨홀 안에 투입되고 있다. 이날 오전 이곳 인근 맨홀에서 40대 남성 1명이 심정지 상태로 구조되고 50대 남성 1명이 실종됐다. 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유해가스에 노출되면 치사율 높아 = 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2015~2024년) 전국 밀폐공간 질식사고로 298명이 산업재해를 입었다. 이 중 126명(42.3%)이 숨졌다. 사망자 가운데 40명이 여름철인 6~8월에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혹서기 사고 재발 우려가 큰 상황이다.

특히 황화수소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질식 사망자의 28.9%를 차지하고, 일산화탄소(20.5%)까지 합하면 절반 가까이 된다. 황화수소는 색깔은 없지만 썩은 계란 같은 독특한 냄새가 나는 독성을 가진 가스다. 소량만 흡입해도 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어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특히 농도가 너무 높으면 후각이 마비돼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조차 맡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밀폐공간 사전 파악, 산소·유해가스 농도 측정 및 환기, 호흡보호구 착용 준수 여부 등 3대 안전수칙만 지켜도 막을 수 있는 사고라고 지적한다. 밀폐공간 사고가 후진적 안전사고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오폐수처리시설, 맨홀, 분뇨 처리시설과 같은 장소는 산소결핍과 유해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밀폐공간 질식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작업 전 산소농도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수시로 환기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독마스크도 없이 작업 = 산업안전보건 관련 법령에는 밀폐공간에서 작업 시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적정 공기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환기를 시키거나 노동자에게 송기마스크 혹은 방독마스크를 착용토록 하고 있다. 또 사업주 등은 작업 시작 전에 유해·위험 요인 관리를 통해 안전을 확보하고 작업 시행이 적정한지 여부를 확인해 허가해야 한다.

하지만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도급구조로 인해 비용 절감을 앞세우다 보니 안전 문제를 경시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6일 발생한 계양구 사고의 경우 유해가스 농도를 미리 측정하거나 마스크 등을 갖추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달 식품공장 정화조에서 사고를 당한 이들도 안전장치를 갖추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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