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중동전쟁에 물가관리 비상…농축수산물 가격 급등 조짐
이재명정부 1기 경제팀 과제 첩첩산중 ③ 물가·민생
짧은 장마에 폭염 이어지며 수박·토마토·오이·상추 수확 비상
폭염에 가축 폐사 규모 7.6배 급증 … 닭·돼지고기값 급등세
고산지 재배 물량 확대 … 배추 미리 사들이고 할인행사 지원
폭염이 이재명정부 국정운영 기조마저 뒤흔들 기세다. 역대 최악의 폭염 예고에 농축산물 가격안정에 비상이 걸려서다. 이대로라면 오를 대로 오른 먹거리 가격이 더 뛸 판이다. 먹거리 가격은 서민 생활과 직결된 민생지표다. 장기 내수부진과 미국의 관세압력이란 안팎의 도전 속에서 갓 출범한 이재명정부 1기 경제팀이 더 큰 복병을 만난 셈이다.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 뒤 부처 업무보고에서 한 첫 지시가 물가관리였다. 김민석 국무총리 인준 뒤 처음 소집한 장관회의 핵심주제도 체감물가 잡기다.
◆물가상황 갈수록 심각 = 물가상황이 심상찮다. 짧은 장마와 이른 폭염이 겹치며 여름철 대표 과채류 가격이 줄줄이 치솟고 있다. 작황 추세가 좋지 않아서다. 특히 수박 한 통 가격이 3만원에 육박했다. 시장에선 ‘히트플레이션’(열+인플레이션)이란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9월 초중순까지 이어질 수 있단 점이다. 이미 먹거리가격 상승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업친데 덥친 격이 됐다.
11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전날까지 수박 한 통의 평균 소매가격은 2만8165원이었다. 이달 초(2만3473원) 대비 약 20% 올랐다. 지난해 같은 날(2만444원)과 비교하면 37.8% 상승했다. 서울 등에선 판매가격 3만원을 넘긴 매장도 흔하다.
작황부진과 폭염에 따른 수요 급증이 맞물린 게 가격급등을 부추겼다. 수박 주산지인 강원도, 충청 지역에 지난달 집중호우가 쏟아지며 일조량이 부족했다. 이떼문에 출하 시기가 평년보다 늦춰졌다. 수박의 생육 초기인 5월에는 냉해, 6월에는 고온이 작용하면서 전체 작황에도 악영향을 줬다. 수박은 2~3개월의 생육 기간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 고온이 이어지면 수확 시점이 일주일 이상 지연되기도 한다. 수요 측면에서는 폭염이 기름을 부었다. 이달 수박 도매가격은 전년보다 4.3%가량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여름 과채류 전반의 가격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복숭아(백도·상품)는 이날 10개에 2만3414원으로 개당 평균 2300원 선을 넘어섰다. 토마토(1㎏)는 4600원을 웃돌았다. 이달 1일(3447원) 대비 35.6% 급등한 수준이다. 오이(10개입)는 1만2003원으로, 올여름 처음 1만2000원을 돌파했다. 열무와 상추도 이달 초 대비 각각 39.0%, 18.0% 올랐다.
올해는 폭염이 적어도 9월 초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여름 기온이 작황을 좌우하는 대부분 농산물의 가격 급등세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닭·돼지도 이런 더위 못견뎌 = 축산물도 폭염 비상이다. 전례 없는 폭염에 폐사가 늘고 관리비용도 늘면서 소비자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행정안전부 국민안전관리 일일상황보고에 따르면 8일 기준 가축 폐사는 16만123마리로 돼지 2117마리, 가금류 15만8006마리가 폐사했다. 올해 5월20일부터 8일까지 폐사된 총 가축 수는 37만9457마리다. 지난해 동기 4만9799마리 대비 7.6배로 급증했다. 올해 가축 폐사는 예년보다 한 달 가까이 빨리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국내 농가의 과밀 사육 환경 특성상 폭염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 대부분 축사가 폐쇄형 구조여서 열이 쉽게 배출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닭, 오리 등 가금류도 버티기 어려운 날씨다. 오는 20일 초복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특히 올해 초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등으로 계란 한 판(30구) 가격이 석 달째 7000원대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폐사율까지 오르면 닭 가격은 물론 계란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9일 기준 닭고기 kg당 가격은 5925원이다. 평년 5708원 대비 3.8% 올랐다. 아직은 수급에 큰 문제는 없지만 닭은 자체 체온조절 기능이 없어 외부 온도가 올라가면 체온이 올라 폐사되는 개체 수가 급증하는 경우가 많다.
돼지고기 공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산 돼지고기 도매가는 지난해 대비 5%가량 올랐다. 폭염으로 공급은 감소하고 수요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9일 기준 국내산 삼겹살 100g의 소매가격은 2806원으로 지난해 2736원 대비 2.6%가량 올랐다.
◆물가현장으로, 정부 초비상 =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하자 정부가 ‘체감 물가’ 잡기에 나섰다. 이미 크게 오른 체감물가가 민생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한국은행지표를 보면 생활물가가 4년간 19% 넘게 상승했다”며 “체감물가를 낮추기 위해 범부처가 총력 대응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는 새 정부 출범 5주 만에 처음 열린 것이다. 물가 등 민생 경제와 국민 안전이 화두였다.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은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쪽방촌을 찾았다. 폭염 취약계층 현장 상황과 지원사업 현황을 긴급 점검하기 위해서다.
그는 역대급 폭염 속에서 쪽방 주민들이 겪는 일상의 고충을 듣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냉방비용 증가로 인한 경제적 부담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에너지복지 사업 실시기관 관계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임 차관은 “에너지 구입 이용권(에너지바우처) 등을 통해 취약계층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에너지바우처 예산은 4797억원이다. 에너지복지 전달체계에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찾아가는 행정서비스’를 할 것을 참석한 관계자들에게 주문했다. 폭염 취약 가구를 선제적으로 발굴·지원할 것도 주문했다.
한편 정부는 물가대책과 관련, 이미 가격이 뛴 가공식품과 기후로 인한 가격 변동성이 큰 배추, 과일 등 농·축·수산물 물가를 중점 관리하기로 했다. 특히 오는 21일부터 시작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으로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한우의 공급은 평상시보다 30% 늘리기로 했다.
오는 18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휴가철 기간엔 농·축산물 주요 품목가격을 40% 할인한다. 전통시장 130개소에서 구매액의 일부를 환급하는 행사도 함께 진행한다. 날씨 탓에 수급 불균형이 예상되는 여름배추 생산량 중 15%에 해당하는 3만5500톤은 미리 사들여 출하량을 관리한다. 수박을 비롯한 시설재배 채소의 작황 회복도 지원한다.
최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인해 공급이 불안정한 석유류도 관리대상이다. 정부는 최근 안정세로 돌아선 석유 가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범부처 석유시장점검단’을 통해 주유소 현장점검을 실시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