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26 대청도 서풍받이 길

해병 할머니 미담 깃든 국가지질공원

2025-07-11 13:00:13 게재

‘해병 할머니 여기 잠들다.’

백섬백길 81코스 인천 옹진군 대청도 서풍받이 길 초입에 있는 무덤의 묘비명이다. 무덤의 주인공은 2012년 87세로 별세하신 이선비 할머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할머니가 여자 해병으로 근무하셨던 것일까?

동네 어르신에게 사연을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 졌다. 할머니는 평생 사탄동(모래울동) 마을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했다. 황해도 해주에서 부모를 따라 다섯살 때 월남한 소녀는 열네살에 대청도로 시집와 73년을 살았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잇다가 1951년 해병대가 대청도에 주둔하면서 군복 수선하는 일로 해병대 장병들과 인연을 시작했다. 군인들도 배가 고프던 시절, 찢어진 군복을 수선하러 온 해병들에게 밥도 해 먹였다. 해마다 돼지를 두 마리 길러 한 마리는 해병대에 기증했다. 해병대 모든 부대원에게 똑같은 속옷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어느 때부터 해병의 어머니로 불리기 시작했다. 장병들은 잔반을 모아 해병 어머니의 돼지 사육을 도왔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된 뒤에는 손자 같은 장병들의 편지를 대신 부쳐주거나 고민을 들어주며 힘든 군 생활에 좌절하지 않도록 다독였다. 자기 손자처럼 극진하게 보살폈다. 해병대 지휘관들은 병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할머니에게 보내 상담받게 할 정도였다.

세월따라 해병 어머니는 ‘해병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는 “내 재산목록 1호는 해병 장병들과 찍은 사진”이라고 늘 말씀 하셨다 한다. 할머니는 노환으로 2010년부터 인천의 한 요양원에서 지내다 2012년 영면에 들었다.

할머니는 “내가 죽거든 손자 같은 해병들의 손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셨고 해병대 장병들은 할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이곳에 모시고 비석을 세워드렸다. 참으로 아름다운 인연이고 세세생생 전해져야 할 미담이 아닌가.

대청도는 국가지질공원이다. 개발의 광풍으로부터 살짝 비켜 나 있었기에 원형을 잃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었다.

대청도는 홍어의 섬이기도 하다. 흑산도 바다보다 홍어가 많이 나는 곳이 대청도 어장이다. 대청도에는 삭힌 홍어를 먹는 문화가 없어 생 홍어를 회로 먹는다.

대청도 옥죽포 사막은 바닷바람에 날아온 모래가 쌓이고 쌓여 생긴 거대한 모래 언덕이다. 사진 섬연구소 제공

서풍받이 길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거대한 절벽까지 왕복하는 3㎞의 짧은 산책길이다. 대청도에 걷기 길은 많다. 제대로 걸으려면 삼각산 등산로를 오르면 된다. 가볍게 걸으려면 서풍받이 길이나 옥죽포 사막에서 미아 농여해변까지 걷는 것이 좋다. 사탄동 해변 소나무 숲길도 걷기 좋다. 이 길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자동차로 이동해야 한다.

옥죽포 사막은 거대한 모래 언덕이다. 바닷바람에 날아온 모래가 쌓이고 쌓여 생긴 모래 언덕. 바람이 불면 마구잡이로 날아드는 이 언덕의 모래들이 한때는 옥죽포 주민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방사림으로 소나무를 심었다. 몇 킬로미터에 이르던 거대한 모래언덕이 지금은 반도 남지 않았다. 모래언덕이 관광자원으로 인식되면서 심었던 소나무를 베어내고 다시 복원 중이다.

옥죽포 사막에 서면 사막은 사막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숨구멍 하나 없는 아스팔트 세상이야말로 진짜 사막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막은 비로소 막혔던 숨통 터주는 오아시스란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