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박홍근 장관 후보자에게 거는 기대
기획예산처는 국가자원의 배분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재정사령탑이다. 조직특성상 수장의 정책기조는 실물경제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 4선 의원 출신인 박홍근 후보자가 초대 장관으로 지명되면서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 최근 간담회에서 밝힌 재정운용 방향에 주목해봤다.
박 후보자를 설명하는 일화 중 가장 눈에 띈 대목은 학창시절 소아마비 친구를 위해 9년간 가방을 들어주며 등하교를 도운 일이다. 몇 달쯤이야 어떻게 가능하겠지만 9년을 한결같이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타인의 결핍을 자신의 일상으로 수용하는 끈기와 인간성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대학시절 본인의 장학금을 더 어려운 동료에게 양보했다거나, 25년째 15평형 아파트에 거주한 행보 역시 정치인 박홍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다.
최근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박 후보자는 이러한 개인적 가치관을 구체적인 재정정책으로 바꿔 제시했다. 그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관행적으로 낭비되는 불요불급한 예산에 대해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재명정부의 확장재정 기조 속에서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실용주의적 접근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 11일과 12일 진행된 전문가 간담회에서 그는 기획예산처의 역할을 ‘단순한 예산배분’에서 ‘국가미래전략의 설계자’로 재정의했다. AI 대전환, 인구절벽, 양극화 등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20~3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재정·예산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실질적인 정책으로 구현하는 ‘두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박 후보자는 ‘따뜻하고 유능한 재정’을 강조하며 공급자 중심의 행정에서 벗어나 현장의 목소리와 국민 참여를 바탕으로 재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도 했다. 을지로위원장 시절 고공농성 등 극한의 노사 갈등 현장에서 20시간 넘는 마라톤협상을 이끌어냈던 경험은 그가 예산편성 과정에서도 국민과 서민의 편에서 실질합의를 도출해낼 정무적 역량을 갖추었음을 시사한다.
곳간을 지키는 파수꾼은 엄격해야 하지만 그 문을 여는 손길에는 온기가 있어야 한다. 9년 동안 친구의 가방을 들었던 인내가 국가예산의 낭비를 막는 파수꾼의 안목으로, 갈등의 현장을 누볐던 발걸음이 민생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집행자의 손길로 이어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의 삶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시도가 경직된 재정당국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도 주목된다.
박 후보자는 지명 직후 밝힌 소감에서 ‘따뜻하고 유능한 재정’을 강조했다. 벼랑 끝 민생경제를 바로 세우고 30년 국가전략을 설계하겠다는 그의 포부가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