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훈 칼럼
이란전쟁의 교훈-에너지안보가 우선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 천연가스(LNG)의 20%가 지나가는 ‘에너지 동맥’이다. 하지만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비축유 방출을 결정했음에도 유가는 100달러를 넘보는 상황이다.
한국은 석유 수입의 70% 가까이를 중동에 의존해 국적 유조선이 통과 못 하자 도입량이 급감했다. 주유소에 가도 기름을 못 넣는 1970년대 오일쇼크의 상황이 다시 현실이 될 수 있다. 이 사태는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준다. 마치 한강 다리가 막히면 서울이 마비되듯 에너지 공급망 하나가 무너지면 국가 전체가 흔들린다.
국내 정유소는 중동산 저가 중질유에 최적화돼 당장 미국 텍사스 경질유나 영국 브렌트유를 쓰려면 효율이 떨어져 비용이 많이 들며, 정유 공장이 수시로 고장나고, 대기오염 물질 배출이 증가할 수 있다. 단순히 ‘도입선 다변화’ 구호가 아니라, 다양한 원유를 정제할 플랜트로의 개조가 필요한다. 이 개조에는 최소한 수조 원이 든다.
게다가 작년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탈탄소 과제 속에서 민간 정유사는 ‘좌초자산’ 우려로 신규 투자를 꺼린다. 호주처럼 정부가 약 20억 호주달러(약 1.8조원)를 지원해 정유사를 지원하는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정유 플랜트, 중동유에 ‘올인’된 함정
반면 LNG는 난방 비수기 덕도 있지만 민간 기업(SK이노베이션, 포스코인터내셔널, GS에너지, 한화에너지 등)의 활약이 크다. 과거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 독점으로 중동 의존적이었으나 2000년대 민간 직수입 제도 도입으로 미국 호주 인도네시아 등으로 도입선이 다변화되었다. 결과적으로 현재 공급 차질이 적다.
하지만 민간이 도입한 LNG는 자가소비 용도로만 활용이 가능하며 재판매가 법적으로 막혀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공정한 배관 관리와 중동 관계에 집중하고 재판매를 자유화해 LNG 공급의 유연화를 꾀해야 한다.
석유를 정제하면 휘발유 경유 등유 항공유 등의 연료유가 대략 절반 나오며, 나프타가 나머지 절반이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산업의 핵심 원료로 나프타에서 생산되며 플라스틱 섬유 의류 파이프 단열재 포장재 자동차부품 접착제 페인트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현재 석유 공급지장으로 나프타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어 이들 제품의 생산도 지장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유화학 기업인 여천NCC는 나프타의 공급 지장으로 ‘불가항력’을 선언하며 공장 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게다가 주로 중동 LNG로부터 질소계 비료를 만드는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비료마저 공급이 안 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LNG 공급 지장으로 비료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어 ‘식량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화석연료는 수송·난방·발전 연료일 뿐 아니라 인류 생존과 생활의 기반이다. 예를 들어 석유 나프타에서 생산되는 에틸렌으로 플라스틱으로 옷 포장재 주택용파이프단열재를 만들며, LNG는 암모니아(질소비료 원료)를 통해 농작물을 키운다.
호르무즈 봉쇄처럼 공급이 끊기면 비료 부족으로 굶주림 공포가 현실화된다. 재생에너지가 아무리 확대돼도 옷 집 식량생산이 멈출 순 없다. 반도체(화학세정제 포토레지스트), 자동차(플라스틱부품 고무타이어), 디스플레이(합성수지 필름),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도 화석연료 원료 없이는 존립 불가능하다. 탄소중립을 추구하되 화석연료 안정 확보 노력을 병행해야 미래 에너지 위기를 막을 수 있다.
탄소중립 모범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2023년 ‘에너지안보·넷제로부(DESNZ, Department for Energy Security and Net-Zero)’를 신설했다. 우리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국인 영국이 부처명을 지을 때 ‘에너지안보(Security)’를 ‘넷제로(Net-Zero)’ 앞에 배치한 이유는 명확하다.
국가 생존을 위한 안보가 탄소중립보다 우선이라는 문제의식이다. 실제로 DESNZ는 에너지 공급 안정화와 청정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며, 러시아 가스 위기 때 안보 중심 정책으로 국민 부담을 줄였다. 우리도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안보를 병행하되, 포기할 수 없는 ‘생존가치’인 안보에 더 큰 무게를 둬야 한다. 그래야 호르무즈 같은 위기 속에서도 국가가 흔들리지 않는다.
위기 극복, 에너지 체질 개선의 기회
이번 호르무즈 위기를 우리의 에너지 취약 체질을 바꾸는 ‘황금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호주 사례처럼 예산 지원으로 중동유 외 미국 텍사스, 브렌트유를 효율적으로 정제할 수 있는 플랜트를 보강해야 하며, 민간 LNG 플레이어가 미국 호주 등에서 수입한 LNG를 자유롭게 재판할 수 있도록 시장 규제를 풀어야 한다.
또한 생존과 생활 기반인 화석연료의 필수성을 인정하고 과도한 축소 정책을 완화하는 게 급선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안보 균형만이 기업 대규모 투자를 끌어모으고 국민 불안을 해소한다. 에너지안보는 국가 생존의 절대 핵심이다.
미래에너지융합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