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사법리스크 벗은 삼성, 재도약 계기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7일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를 받아냈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시세조종 등 각종 부정거래와 회계부정 등을 저지른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그러니 이 회장은 4년 10개월 만에 완전히 사법리스크를 벗어난 것이다. 함께 기소됐던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도 모두 무죄로 확정됐다.
법원은 1심과 2심 과정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런 판단은 대법원으로 이어졌다. 대법의 무죄판결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검찰이 삼성의 편법승계 의혹을 밝히고자 나름대로 열심히 수사한 노력에 비춰볼 때 아쉬운 대목임을 지적한 의견도 있다.
반면 한국상장회사협의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환영하는 분위기다.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환경에서 경제회복에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상장사협의회는 “이재용 회장이 ‘창조적 리더십’을 발휘해 우리나라 경제의 돌파구를 열어주기를 기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부당합병 회계부정 의혹 등 무죄 확정
어쨌든 이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숱한 논란을 자꾸 되새겨보고 싶지는 않다.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마당에 자꾸 되돌아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충고할 수 없다는 옛 현인들의 가르침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이재용 회장과 삼성그룹의 미래가 밝아졌다고 할 수는 없다. 당장이야 이재용 회장의 발목을 잡던 족쇄가 풀렸다는 것은 이 회장과 삼성그룹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재용 회장의 책임은 그만큼 더 무거워졌다. 삼성그룹의 핵심기업 삼성전자가 직면한 냉혹한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본다면 결코 희희낙락할 수 없다. 이 회장 눈앞에 놓인 과제는 헤라클레스가 치렀던 12가지 고역보다 더 힘겨운 난제일지도 모른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디램 개발에서 뒤처졌다. 아직까지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공급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디램 시장에서 후발주자 SK하이닉스로부터 맹렬한 위협을 받고 있다. 이미 지난 1분기 D램 시장에서 처음으로 SK하이닉스에 점유율 1위자리를 내줬다.
더 슬프고 괴로운 것은 파운드리 부문이다. 대만의 TSMC를 따라잡겠다는 공언과는 반대로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2분기 TSMC의 시장 점유율은 67.6%로 전분기보다 상승한 반면 삼성전자는 8.1%에서 7.7%로 떨어졌다.
이런 딱한 상황은 2분기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삼성전자의 2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4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56%나 줄어들었다. 특히 파운드리 사업은 1분기와 2분기 연속으로 2조원을 넘는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 생존 당시 반도체로 천하를 호령했던 그 자신감과 기상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실 이건희 전 회장은 아들 이재용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많은 무리수를 동원해 관철시켰다. 그런데 결과는 이렇듯 안타깝다.
삼성전자가 직면한 냉혹한 현실 극복 위해 온 힘 쏟아야
과거부터 이재용 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았지만 요즘 그 의구심이 더 짙어지는 듯하다.
그나마 지금까지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를 이유로 댈 수 있었다. 사법리스크 때문에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의 발목이 잡혔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런 변명도 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의 성공과 실패는 오로지 이재용 회장 자신의 책임이다. 더 이상 다른 이유를 내세울 수도 없다.
그러니 이제 이재용 회장은 현실을 정직하게 인식하고 돌파할 근본적 혁신대책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자신의 경영능력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회장이 그동안 남모르게 쌓아둔 내공과 저력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런 내공이 있다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아낌없이 쏟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회장 자신과 삼성그룹의 미래가 보장되고 경영권도 온전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