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민 국방장관의 사명은‘제2의 창군’이다
64년 만에 문민 국방부장관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지난해 12.3 내란사태로 어수선한 군의 기강을 바로잡고 국방개혁과 한미동맹, 남북군사 관계를 재설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정부 수립 이후 일부 민간인 출신 국방부장관도 있었으나 5.16 군사쿠데타 이후부터는 군 장성 출신들의 독무대였다. 이는 6.25전쟁 이후 70년 넘게 지속해온 불완전한 정전체제에서 유사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보좌하고 군사작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 군의 현실태는 어떠한가? 세계적 차원의 냉전이 해체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군은 반공 이데올로기와 상명하복의 경직된 군사문화가 팽배하고 ‘평화’를 적대시하며 현상유지에 급급해왔다. 폐쇄성과 권위주의 문화는 군의 민주적 통제에 걸림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12.3 비상계엄은 국방부장관,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주요 군 지휘관들이 군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총구를 외부의 적이 아닌 국민에게 겨누는 참극을 벌였다. ‘재래식 군사력 세계 5위’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외국군에게 전시작전통제권을 맡겨두고 있는 현 실태야말로 ‘제2의 창군’과 같은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문민 국방장관, 전략가이자 국방운영의 CEO
오늘날 국내외 안보상황은 녹록치 않다. 안으로는 12.3 내란을 조기 종식하고 군의 민주적 통제 강화와 강군육성의 과제를 안고 있다. 밖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군사위협과 북·중·러의 전략적 밀착, 그리고 미국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한국군의 역내 역할 강화 요구 등과 같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난 1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밝힌 △국민의 군대 재건 △장병 정신전력 강화와 인공지능(AI) 첨단 방위역량 구축 △한미동맹 중심의 국방협력 네트워크 구축 △한반도 평화정착의 군사적 뒷받침 등 국방정책의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관건은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군대 문화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많은 국방개혁의 청사진들이 있었으나 미완으로 남은 이유는 군 안팎의 강한 저항 때문이었다. 이는 군이 스스로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장관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개혁에 한계가 있음을 방증한다.
리더는 구조를 설계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장관은 무기 대신 냉철한 이성을 가진 전략가이자, 개혁의 설계자이고 실행하는 전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국가는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한 동력이기 때문에 개혁의 청사진에 맞는 법과 규정의 마련이 필수적이다. 제도가 공정하고 합리적일 때 몸에 피가 돌 듯 경로 의존성을 가지고 조직의 작동방식으로 정착될 수 있다.
향후 문민 국방장관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그럴 때마다 후보자가 “도려낼 부분 도려내야 새살이 돋는다”라는 의지를 밝혔듯이 읍참마속(泣斬馬謖) 자세로 과감한 개혁을 실행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지난해 12.3 내란은 일부 정치군인들이 학연과 근무연으로 뭉쳐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벌인 비극적 사건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국방개혁은 군 장교 인사제도의 혁신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무엘 P. 헌팅턴도 그의 저서 ‘군인과 국가’에서 나폴레옹 전후 프로이센이 유럽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귀족 출신에게 유리했던 교육과 진급제도의 개선을 꼽고 있다.
인사시스템 혁신과 신상필벌, 개혁의 시작
다른 하나는 ‘신상필벌’의 군 기강 확립이다. 각종 군 관련 사건·사고 발생 시 분명한 책임규명과 처벌, 공에 대해서는 합당한 포상문화가 정착돼야 개혁의 동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에 비견될 해병대 박정훈 대령의 항명 사건의 경우 박 대령의 직무 복귀만으로 부족하다. 문민장관은 박 대령이 군 간부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상위 계급으로 진급과 함께 국방부조사본부장 임명 등과 같은 상징적 조치를 통해 새로운 군대문화가 싹틀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