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탄소국경세, 어디에 지불할 것인가

2025-07-23 13:00:06 게재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를 도입했다. CBAM이란 EU 역외에서 생산되는 대EU 수출품에 대해 EU 역내에서 EU 배출권거래제의 적용을 받고 생산되는 동일 상품이 부담하는 탄소가격과 동일한 비용을 ‘관세와 유사한 탄소국경세’로 부과하는 제도다.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기 수소 등 6가지 수입품에 대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 7월1일 EU집행위원회는 CBAM 대상 제품 확대 및 우회 방지 대책을 위한 의견조회 절차도 개시해 본격 시행을 앞두고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대서양 반대편인 미국에서도 지난 4월 ‘해외오염세법(Foreign Pollution Fee Act, FPFA)’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이 또한 미국산 제품보다 배출집약도가(제품톤당 CO₂배출량) 높은 수입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에서 적용 대상 품목이 기존 6개(알루미늄 시멘트 철강 비료 유리 수소)에서 태양광 및 배터리 부품을 더한 8개로 확대되었다.

미국 연방의회 통과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현재 집권 공화당이 지향하는 탄소국경세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EU 및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은 2027년부터 도입되는 자체적인 탄소국경세를 공식화했고, 호주 역시 탄소 누출 제도 설계 검토를 위한 협의회를 운영하는 등 탄소국경세는 점차 다른 국가로 확산되며 새로운 국제 무역규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재(철강 플라스틱), 에너지(전기 열), 수송수단(선박 자동차), 가전제품(에어컨 냉장고) 등을 싸게 만들 수 있는 국가가 만들어 필요한 국가에 수출해 왔는데, 여기에 탄소배출이 추가로 고려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기후위기 심화와 보호주의 확산이라는 글로벌 흐름속에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수출국 내 탄소가격 부과 촉진하는 효과

주목할 점은 수입국의 탄소국경세 가속화는 수출국 내 탄소가격 부과를 촉진하는 긍정적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만약 수출국이 자국에서 제품에 탄소가격을 부과할 경우 대부분의 탄소국경세는 이미 수출국에서 지불된 탄소가격만큼은 탄소국경세에서 면제해 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수출국에서 탄소가격을 많이 지불한다면 수입국에 탄소국경세를 납부할 금액이 줄어 든다. 만약 한국 기업이 국내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이미 해당 제품에 대한 탄소가격을 국내에서 지불했다면 그 만큼은 EU에 납부할 탄소국경세 금액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수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제품을 수출할 때 탄소국경세를 수입국에 더 많이 내도록 할지, 아니면 자국내 탄소가격제도를 도입해 탄소국경세를 감경받을지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좋은 예다.

이미 10년 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약 900개 기업에 대해 탄소가격을 부과해 온 한국이 마침 조만간 향후 5년간 기업들이 국내에 지불할 탄소가격을 결정하는 할당계획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 결정에 따라 EU CBAM 대상 제품에 대한 탄소가격 지불 비중이 달라질 것이다. 탄소국경세는 단순히 국경에서 수입품에 대해 탄소가격을 부과하는 것을 넘어 다른 국가가 탄소가격을 부과하도록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

탄소가격 지불에 대한 고민은 배출 주체인 기업도 마찬가지다. 제품을 생산할 때 배출하는 탄소배출이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글로벌 흐름 속에서 우선은 탄소국경세로 인한 수출가격 변화를 계산해 보고 이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사내 탄소가격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 내부 배출원별 탄소가격 저하 유인

마치 정부가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기업별로 배출허용량을 부여하고 초과 배출에 대해 탄소가격 지불을 강제하듯이 기업도 자발적으로 배출원별(예를 들어 공정별) 배출허용량을 부여하고 초과 배출분에 대해 기업 내에서 탄소가격을 지불하도록 체계화함으로써 기업 외로 지불할 탄소가격을 낮추어 가도록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발적 사내 탄소가격제도 도입은 사내 구성원들에게 탄소감축 필요성을 인지시키고 이로 인해 사내 조직별 전략 및 투자 의사결정에 반영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고, 사내 탄소가격 부여로 조성되는 기금을 사내 탄소감축에 투자하는 선순환도 가능하다.

탄소국경세가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에 수출국은 물론이고 수출기업도 어디에 탄소비용을 지불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성우 김·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