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풍을 헤쳐 나가는 아세안의 지혜

2025-07-25 13:00:00 게재

‘트럼프 서한’ 14개국 중 아세안 회원국이 6개 … 역내 경제협정 확대·거대 지역 FTA 추진 박차

방문객들이 6월 25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코스모프로프 CBE 아세안 2025(Cosmoprof CBE ASEAN 2025)’ 박람회에서 화장품을 체험하고 있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15개국 2000개 이상의 화장품 브랜드가 참가해, 급성장 중인 동남아시아 뷰티 시장을 겨냥한 최신 뷰티·화장품 혁신 제품을 선보였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발 관세 폭풍의 해일이 동남아 무역 전선을 삼키고 있다. 상호관세 부과 90일 1차 유예 기간 만료일(7.8)이 3주간 2차 유예 만료일(8.1)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7일 14개국에 상호관세 부과 서한을 발송하자 이를 받아본 아세안 주요국들은 망연자실 충격에 빠졌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9일 미국의 관세 위협을 앞두고 아세안 외교장관 연례회의에서 세계 무역이 무기화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의 단합이 선언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며 회원국들이 아세안 역내 무역을 늘리고 지역통합에 투자하며 외부 강대국에 대한 전략적 의존을 줄일 것을 요구했다.

이날 트럼프의 서한을 받은 14개 국가 중 6개국이 아세안 회원국이라는 점을 두고 중국과의 공급망 경쟁 차원에서 이들 나라들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인도-태평양 국가 중 1차 유예 시한 내 미국과 무역 협상에서 상호관세 관련 합의를 도출한 나라는 베트남이 유일하다. 미국은 베트남이 수출하는 상품에 대한 관세를 46%에서 20%로 내린다. 단, 제3국의 베트남을 통한 우회 수출에 대해서는 40%를 적용한다. 반면, 미국은 자국산 제품을 베트남 시장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인도네시아와 무역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미국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상호관세를 32%에서 19%로 인하하며 미국 상품은 인도네시아에 무관세로 수출된다. 베트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관세가 더 높은 제3국 수출품의 인도네시아를 통한 미국으로의 우회 수출(환적) 시에는 인도네시아가 지불할 관세에 더 높은 관세가 추가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엔 필리핀 수출상품에 대한 관세를 20%에서 19%로 인하하고, 필리핀은 미국 제품에 무관세로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4월 상호관세 발표 이후 미국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맺은 아세안 국가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세 나라다.

RCEP, 브릭스 등 다자틀 적극 활용

태평양을 가로질러 휘몰아치는 관세 전쟁에 대응해 아세안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속적 경제 활력을 창출해 세계경제 성장의 엔진 역할을 계속할 수 있느냐 하는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다. 지난 5월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단호한 결의를 보여 주었다.

이번 미국의 관세 포화는 아세안 국가들이 비미국 주요 파트너 국가들과 무역 관계를 다변화 하고 새로운 파트너십을 추구할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으며 이와 함께 역내 통합 심화를 우선순위로 설정케 했다.

우선, 아세안은 이번 쿠알라룸푸르 정상회의를 계기로 기존의 아세안 공동체의 세 기둥(정치안보 공동체, 경제 공동체, 사회문화 공동체)에 제4의 기둥(아세안 연계성)을 세웠다. 이는 통합 심화에 부여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해준다. 이번에 채택된 아세안 연계성 전략(6개 전략 목표, 49개 전략 조치)이 이를 방증한다.

두번째, 아세안 제1,2위 경제 대국인 인도네시아와 태국은 경제 성장과 경제 고도화를 촉진하기 위해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셋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이다. CPTPP는 일본이 주도하는 거대 자유무역협정이다. 아세안에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4개국과 호주, 캐나다, 영국, 멕시코 등 12개국이 회원국이다. 인도네시아는 작년 9월 정식 가입 신청을 했으며, 태국, 필리핀 등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에쿠아도르, 코스타리카, 우루과이가 이미 가입 신청을 했다.

넷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확대이다. RCEP에는 아세안 회원국 전체와 한중일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추가로 칠레, 스리랑카, 홍콩이 이미 가입 신청을 했으며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 국가들이 잠재적 후보국으로 거론된다. 지난 5월 제주에서 개최된 아세안 통상장관 코커스에서도 아세안은 CPTPP 와 RCEP 회원국 확대문제를 비중있게 논의했다.

다섯째, 아세안 회원국의 브릭스(BRICS) 참여 확대다. 6월 13일 베트남은 주요 신흥 경제 그룹인 브릭스의 파트너 국가로 가입했다. 최근에 인도네시아가 브릭스의 정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말레이시아 및 태국이 파트너 국가로 참여했다. 나머지 아세안 회원국들도 브릭스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렇지만 아세안의 브릭스 참여 활동 보폭은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은 브릭스의 반미 정책에 동조하는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른 한편, 아세안과 개별 아세안 회원국들은 무역 다변화를 위해 양자 자유무역협정 체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6월 23일 말레이시아는 유럽자유무역연합체(EFTA)와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과의 FTA 협상도 진행 중이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는 아세안과 중국, 인도의 FTA 개정을 추진 중이며, 내년 아세안-캐나다 FTA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태국은 연내 EU와 FTA, 한국과 EPA 협정을 체결한다는 계획이다. 페루와는 오는 8월까지 FTA를 체결할 예정이다.

경제 1,2위 인니-태국은 OECD 가입 추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세안 1,2위 경제 대국의 OECD 가입 추구는 지정학적, 지경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OECD는 2024년 2월과 6월 각각 인도네시아 및 태국과 가입 협의를 개시했다. 이 두 나라는 OECD 가입 후보국이 되는 최초의 아세안 회원국이다. 두 나라는 OECD 가입을 중진국 함정을 피하고 장기 발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방향이라고 본다.

이들의 가입 협상 과정은 베트남의 관심을 촉발시켰으며 이는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 가능한 도미노 효과를 시사한다. 이들 두 나라는 지식 전수, 정책 조정을 촉진하고 규제를 벤치마킹하며 무역 프레임워크를 조화시킴으로서 아세안과 OECD 사이에 중요한 교량이 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아세안은 기존의 거대 지역 FTA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CPTPP 확대에 과녁을 맞추고 있다.

아세안은 지역 경제통합 심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챗 GPT에 의하면 12개 CPTPP 회원국의 통합 GDP는 미화 13조7000억달러로 글로벌 GDP의 13~15%를 차지한다. CPTPP 역내 무역은 회원국의 전체 무역의 15~20%로 추산되며 2025년 현재 CPTPP는 글로벌 무역의 14~15%를 차지한다.

아세안 1위 경제 대국 인도네시아는 수출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는 희망 속에 작년 9월 CPTPP 가입 신청서를 공식 제출했다. 현재 RCEP은 글로벌 GDP의 30%, 글로벌 교역의 30%를 차지하며 23억 이상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역 전체에 걸쳐 2030년까지 추산 소득을 미화 6530억달러로 증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

이러한 엄청난 범위와 심오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RCEP의 완전한 잠재력은 미개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와 관련 자카르타 소재 CSIS 재단 이사회의 유수프 와난디 부의장은 6월 30일자 자카르타 포스트 기고를 통해 아세안은 “안정되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해 RCEP의 재활성화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점이 바로 오는 10월 아세안 정상회의 및 관련 정상회의 계기 RCEP 리더들의 정상회의가 필요한 이유’라고 설파한다.

아세안-일본과 협력해 CPTPP 가입 추진을

우리는 아세안의 이런 움직임에 어떻게 보조를 맞추어야 할까. 우선 한-OECD 정책 대화를 통해 우리의 1996년 OECD 가입 과정의 여러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세안과의 협력 외연을 넓혀나 갈 수 있다. 동시에 2014년 일본의 이니셔티브로 출범한 OECD 동남아지역 프로그램(SEARP) 관여를 통해 한-일-아세안 3자 파트너십을 결성하여 가입 로드맵 이행 관련 협력을 강화해 나갈 수 있다.

둘째로는, 아세안 및 일본과 협력해 우리의 CPTPP 가입을 적극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CPTPP 확대는 우리의 국익과 부합한다. 우리 정부 당국자, 연구소, 경제계, 학계 등 유관 이해 당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금이 CPTPP 가입을 서둘러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자무역질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지금, 입장이 유사한 중견국들의 연대라는 점에서 CPTPP는 가장 적합하고 현실적인 틀이다.

지금 가장 높은 수준의 메가 FTA인 CPTPP는 최근 영국이 가입하면서 존재감과 위상이 더 높아졌다. 개방된 세계시장 확보가 중요한 한국이 뉴노멀 시대에 CPTPP 체제 바깥에 머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일 관계가 개선된 지금이 가입할 기회다.

다른 한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RCEP의 잠재력은 엄청나지만 활용도는 미진하다. 와난디 CSIS 재단 부회장의 제안대로 올 10월 아세안 정상회의 및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계기 RCEP 정상회의가 개최되면 이는 RCEP 재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은 RCEP을 관세 태풍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하나의 기제로 보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세안 주도 RCEP 정상회의는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