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ESG 공시 안 돼…인권·사회정보 의무화해야”
‘S’ 선택 공시, 기업 인권 리스크 ↑… 글로벌 경쟁력 ↓
한국공인노무사회, ESG 공시 로드맵 공식 의견서 제출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 초안’에 대해 각계각층의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한국공인노무사회가 ESG 공시에 인권·사회(S) 분야 또한 의무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인권과 노동 등 사회(S) 분야의 선택 공시는 인권 리스크를 키우고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국제 흐름 역행이자 ESG 본질 훼손 = 3일 한국공인노무사회는 지난달 31일 금융위원회에 ESG 공시 제도화 로드맵에 대한 공식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노무사회는 이번 금융위 방안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인권·사회(S) 분야 선택 공시’를 꼽았다. 현재 금융위는 국제적으로 기준이 확립된 기후(E) 공시부터 우선 의무화하고, 인권·노동 등 사회(S) 분야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노무사회는 “이는 ESG 공시 제도를 안정적으로 도입하려는 취지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권·사회 분야에 대한 공시를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와 국제적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실제 인권·사회 정보 공시 의무화는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유럽연합(EU), 일본, 대만 등 주요국은 공시 기준을 기후로만 한정하지 않고 지속가능성 전반으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s)’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EU ‘지속가능한 공급망 실사법(CSDDD)’ 등 국제 기준은 이미 기업의 인권 실사 및 관련 정보 공시를 핵심적인 책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장진나 노무사회 부회장(ESG 위원장)은 “기후 분야에 한정해 공시를 의무화하고 사회(S) 분야를 선택사항으로 미루는 것은, 환경·사회·지배구조의 통합적 관점을 중시하는 ESG 국제적 정합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ESG의 한 축을 의도적으로 경시해 ESG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인권 정보, 기업 가치에 중대한 영향 미치는 핵심 = 인권 리스크 관리 실패는 곧 기업의 장기적 가치 하락을 초래한다. 때문에 인권 관련 정보는 단순한 비재무적 정보가 아니라 기업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재무 관련 정보다. 특히 최근 국내 대기업 등에서 연이어 불거진 산업재해, 직장 내 괴롭힘, 성차별, 공급망 내 인권침해 사건 등은 막대한 유·무형 손실과 국제 경쟁력 약화를 초래했다. 인권 리스크를 사전에 식별, 예방, 구제하는 인권 실사 체계를 구축하고 그 이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시하는 것은 기업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수적인 경영 활동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인권 경영 관련 내용을 ESG 공시 기준에 충분히 포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장 부회장은 “사회(S) 분야 공시를 선택사항으로 둘 경우, 기업들은 당장의 부담을 이유로 인권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결국 예측 불가능한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투자자 보호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속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기업의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의 근본 목적에도 반하는 일이다.
◆신뢰성 담보하기 위한 전문적 검증 필요 = 노무사회는 인권·사회 정보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공인노무사를 검증 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노무사회는 “인권·사회(S) 분야는 노동관계법령, 산업안전 등 고도의 법률·실무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이라며 “공시나 제 3자 검증 과정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법적 자격과 실무 경험을 갖춘 전문가, 공인노무사의 참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인권·사회(S) 분야의 핵심 지표인 △노동권 보장(결사의 자유, 단체교섭) △산업안전보건 △고용상 차별금지 및 다양성 확보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 시스템 △공급망 내 인권실사 △내부 고충처리 및 구제절차 운영 등은 모두 ‘공인노무사법’ 제2조에 따라 공인노무사가 전문적으로 다루는 고유 업무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장 부회장은 “공인노무사는 노동관계법령에 대한 깊은 지식과 수많은 기업 현장의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리스크를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정 자격사”라며 “기업이 관련 정보를 공시하거나 제3자 검증을 받을 때 공인노무사의 참여를 반드시 의무화해 실질적인 인권 존중 책임 이행을 담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사회는 성공적인 제도 안착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 개선안도 제시했다. 우선 기후 분야 우선 도입 방침을 유지하더라도, 인권·사회(S) 분야의 공시 의무화 일정을 본 방안에 명확히 구체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공시 의무화 시기를 2027년으로 앞당길 것 △대상을 ‘연결자산 총액 10조원 이상 기업’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모든 상장사로 확대할 것 △거래소 공시에서 자본시장법에 따른 ‘법정 공시’‘로의 전환 시기를 명확히 해 구속력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장 부회장은 “인권·사회 분야를 배제한 ESG 공시는 반쪽짜리 제도에 불과하다”며 “금융위가 이번에 발표한 로드맵 초안을 재검토해 사회 공시를 전면 의무화하고 공인노무사의 전문적 역할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숙·한남진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