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자사주 처리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2월 국회서 통과한 3차 상법 개정에 따라 자사주 처리가 주요 의안으로 다뤄졌다. 새로 취득한 자사주를 1년 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18개월 내 소각해야 한다. 해당 기업들이 전부 소각하는 대신 경영상 목적으로 일부 자사주를 처분하겠다고 하자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지침이 논란이 됐다.
SK하이닉스는 자사주 30만주를 임직원 보상용으로 지급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현대차도 임직원 보상을 위한 자사주 처분을 논의했다. 한화시스템 LS일렉트릭 크래프톤 등도 같은 목적으로 자사주 처분 계획을 제시했다. 이마트는 신세계푸드 자회사 편입을 위해 자사주를 동원하는 ‘포괄적 주식교환’ 안건을 상정했다.
이들 기업들은 임직원 보상,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 경영목적 등을 내세워 자사주 소각없이 보유하거나 처분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이 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할 때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공시했다는 점을 들어 ‘임직원 보상이나 주식의 포괄적 교환은 공시 내용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다.
임직원 보상용 자사주 지급에 반대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논란
기업들은 보상이나 자회사 편입에 자사주를 활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높이는 수단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국민연금 시각과 간극이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사실 소액주주에 영향이 크다. 이 사안이 주주환원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될 우려도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확보한 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 272곳이다.
공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자사주 처분의 목적과 방향이 주주가치 제고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합당한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사주를 임직원 보상으로 하는 것은 임직원 개인의 소득을 올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자사주를 보유한 임직원은 단순한 주식투자자가 아닌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주주로서 지위를 갖는 셈이다. 주인의식을 가진 임직원은 그렇지 않은 임직원과 큰 차이를 가질 수 있다. 회사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지 여부에 달렸다. 비용을 쓸 때도 영업할 때도 마음가짐이 다르다. 이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이고 기업 가치가 높아지면 주주가치도 제고된다. 물론 주식소유는 필요조건일 뿐이고 투명한 경영과 적합한 배분이 함께 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가 원칙론에 치우치기보다는 주주가치 제고의 큰 틀과 개별 기업의 특수성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이들 기업의 안건들은 주총에서 통과됐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다른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올해 주총은 ‘권고적 주주제안’ 제기가 확산되는 추세를 보였다. 코스피 상장사 DB하이텍은 주주제안으로 위장계열사 부당거래 진상 규명을 위한 법원 검사인 선임 신청 권고의 건을 주총 의안으로 상정했다. 태광산업도 자기주식 소각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을 상정했다. 지배주주가 아닌 일반주주는 경영진의 미온적 태도나 거부로 회사에 주주 의사를 전달하기 어렵다. 주주제안권은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보안해 실효성 있는 주주권 행사를 돕는 제도적 수단으로 의미가 있다.
주주가 이같은 관여활동을 통해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의사를 나타내고 경영진과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감시를 수행한다면 점차 지배구조 개선에 이를 수 있다. 이는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진다. 적대적 M&A 대상이 된 기업도 외부주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 아니라 임직원 주주들의 결집에 관심을 가질 때다. 평소에 임직원이 자사주를 소유할 수 있게 하고 독려해야 한다.
점차 다양하고 개방적으로 바뀌는 지배구조 긍정적
일반주주의 활동과 목소리가 주총에서 반영되듯이 이사회에도 사외이사(독립이사) 역할과 책임이 높아지고 있다. 삼성그룹과 SK 주요 상장사 등은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가 맡도록 했다. LG그룹은 올해 상장사 11곳 모두를 ‘사외이사 의장 체제’로 바꿨다. 이사회 중심의 경영에 한발 다가섰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국내기업 대부분은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가 맡았다. 이사회는 경영사안을 심의 결정하고 경영진을 감독하는 역할과 책임을 갖는다. 그동안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임하면서 이해상충 우려도 있고 경영의 투명성 제고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처럼 기업의 지배구조가 다양하고 개방적으로 바뀌고 있다. 일반주주들이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고 행동하려는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고무적이다.
범현주 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