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만에 ‘최단기 추경’…밤새고 코피 쏟으며 만든 ‘민생 방파제’
기획예산처 직원들 ‘자정 퇴근’ 일쑤 … 주말 반납하고 ‘월화수목금금금’
강행군 사무관들 심의장서 코피 투혼 … “숫자에 민생 달렸다는 책임감”
점심시간을 막 넘긴 2026년 3월 31일 12시31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26조2000억원 규모의 ‘중동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이 의결됐다. 정부세종청사 기획예산처 예산실 곳곳에서는 나지막한 탄성과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지난 12일 대통령의 추경편성 첫 지시가 떨어진 지 19일, 실무작업 착수로부터는 불과 17일 만에 이뤄낸 ‘최단기 추경’의 기록이다. 통상 한 달 이상 소요되는 추경편성 과정을 절반 이하로 단축한 경이로운 수치 뒤에는, 밤을 잊은 채 코피를 쏟아가며 숫자에 매달린 예산실 직원들의 사투가 있었다.
◆전 직원 ‘자정 퇴근’은 기본 = 정부가 이번 추경을 ‘초광속’으로 추진한 배경에는 중동전쟁 발발에 따른 급격한 유가 급등과 1500원을 넘어선 환율 등 전시상황에 준하는 경제 위기감이 있었다. “위기일수록 속도가 정책의 효능을 결정한다”는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의 특명에 따라 예산실 전 직원은 지난 17일간 ‘비상 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첫 지시 닷새 뒤인 지난 17일 국무회의에서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민생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신속한 추경 편성을 거듭 지시하기도 했다. 그는 “전쟁 추경이 신속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대다수 취약 부문은 더 나빠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소득 지원 정책을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추경을 한다면 지방에 더 대대적으로,, 획기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라”고 큰 방향을 제시했다.
이 기간 예산실 직원의 평균 퇴근시간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주말은커녕 낮과 밤의 경계조차 희미해진 ‘월화수목금금금’의 강행군이었다. 조용범 예산실장을 비롯한 예산실 국과장들은 외부 식사약속도 대부분 연기하면서 추경편성에 몰두했다. 특히 이번 추경은 단순한 예산 배정을 넘어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 고유가 피해지원금 설계 등 전례 없는 신규 사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검토해야 할 서류만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 사무관은 “집에 있는 아이 얼굴을 본 지 일주일이 넘었다”며 “새벽 2시에 퇴근해 7시에 다시 출근 준비하는 일상이 반복됐지만, 우리가 늦어지면 서민들의 고통이 길어진다는 생각에 멈출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심의장에서 터진 ‘코피 투혼’ = 가장 치열했던 곳은 이번 추경의 핵심인 유가 대응과 에너지 복지, K패스 등을 담당한 산업정보예산과와 복지예산과, 국토교통예산과 등이었다. 특히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가연동보조금 등 복잡한 수식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을 담당한 3명의 핵심 사무관들은 과로로 인한 한계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취재 결과, 유가 대응 사업을 설계하던 ㄱ사무관은 부처 간 조정회의 도중 책상 위로 뚝뚝 떨어지는 코피를 닦아내며 발언을 이어가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면세유 등 유가보조금을 담당했던 ㄴ사무관 역시 국회 보고 자료를 작성하다 코를 막고 업무를 계속했다는 후문이다. 추경예산을 총괄했던 ㄷ서기관(최근 승진)까지 포함해 예산실 안팎에서는 이들 ‘사무관 3인방’의 코피 투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함께 밤을 지샌 부처 관계자는 “예산 심의장은 숫자 하나, 단어 하나에 수천억원의 국정과 민생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터와 같다”며 “그 압박감 속에서 잠도 못 자고 버티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뜨려 하지 않았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숫자 하나하나가 민생 방파제” = 이들의 사투를 곁에서 지켜본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역시 취임 뒤 수시로 실무자들을 찾아 격려하며 힘을 보탰다. 박 장관은 평소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지만, 필요한 곳에는 가장 따뜻하게 흘러가야 한다”는 소신을 강조해 왔다.
그는 이번 추경안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17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완벽한 추경안을 만들어낸 우리 예산실 직원들이야말로 진정한 ‘경제 수호신’”이라며 “심의장에서 코피를 쏟아가며 지켜낸 그 숫자 하나하나가 고유가에 시름 하는 국민들에게 든든한 방파제가 될 것”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이번 추경은 1998년 외환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사태 당시보다도 빠른 속도로 편성됐다. 하지만 예산실 직원들은 기록 경신보다 중요한 것은 ‘적기 집행’이라고 입을 모은다. 26조2000억원이라는 거대한 재원이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투입돼 기름값 부담을 낮추고 민생의 숨통을 틔워주느냐가 진짜 성적표라는 뜻이다.
기획예산처 박창환 예산총괄심의관은 “우리 직원들의 코피와 땀방울이 섞인 예산안인 만큼, 단 1원도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집행과정도 철저히 관리하겠다”며 “국회에서도 민생의 절박함을 고려해 신속하게 심의를 마무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숫자의 이면에 숨겨진 공무원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2026년 제1차 추경안.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밤샘 근무를 마치고 퉁퉁 부은 눈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은 예산실 직원들의 시선은 이미 국회의 문턱을 넘어 민생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