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봉균 화학물질안전원장
“탈탄소 녹색문명 도약, 화학안전 거버넌스로 완성”
에너지전환 신기술로 해결 과제 산적, 지역 역량 미흡 … 사전위험진단으로 기업 성장 돕고 시민학교로 안전의식 확대
“갈등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어요. 화학안전은 시민사회와 산업계 사이에 상당한 이해 차이가 있는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버넌스에 기반한 문제 해결이 효과적입니다. 느려 보이지만 갈등 상황에서는 이것만큼 빠른 방법도 없죠.”
24일 박봉균 화학물질안전원장은 “정부 내에서 화학안전 거버넌스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화학사고가 나면 기업들은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하고 주민들은 기업더러 지역사회에서 나가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처음엔 갈등이 있어도 자꾸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면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걸 체감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원은 화학안전분야 전문기관으로 △화학사고·테러 예방과 대응 △화학안전 정보 제공 △교육 등을 담당한다. 박 원장과의 인터뷰는 충북 청주 흥덕구에 있는 안전원에서 이뤄졌다.
■거버넌스 강화를 강조하지만 실제 효과를 체감하기가 쉽지는 않다.
화학사고 예방을 위해 지역 대응 역량 강화가 필수지만 이를 위한 동력이 적은 게 현실이다. 이해당사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상호 이해 및 신뢰를 형성하는 일이 우선이다. 이를 기반으로 지역사회 역량강화와 화학안전 정책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고 합리적인 화학안전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원장이 된 뒤 현장을 돌아보니 상대적으로 시군 단위의 거버넌스가 약했다.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현장을 다니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의 어려움을 듣고 뭐가 문제인지, 어려움은 어떤 게 있는지 등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했다.
나아가 실제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2023년부터 화학안전거버넌스 평가 지표를 개발해 적용 중이다. △화학물질위원회 구성·운영 △주민 알 권리 충족도 △조례 제정 △인력 예산 등 행정적 지원 △이행 점검 등의 평가 기준을 적용해 지표를 만들었다. 2023년 243개 지자체 전국 평균은 28점에 불과했다. 다행히 조금씩 개선이 되고는 있다. △2024년 35.2점 △2025년 42점 등이다. 2030년까지 60점 이상으로 올리는 게 목표다.
■지난해 기후에너지환경부 출범 뒤 화학안전 등 전통적인 환경 정책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는 지적도 있다.
관점에 따라 다른 문제인 것 같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탈탄소 전환은 최우선적인 과제다. 기후부 정책 핵심은 ‘탈탄소 녹색 문명을 향한 도약’이다. 각 분야의 정책과 제도가 이 도약을 완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학안전의 경우 새로운 공정이나 신기술 등이 들어오면서 준비해야 할 사항들이 더 많아졌다. 한 예로 동일 면적에서 더 많은 태양광 전력을 뽑아낼 수 있는 고효율 텐덤셀 상용화를 위해 납 기반 할라이드 페로브스카이트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때 납이 문제가 될 수 있다.
2차 전지 열폭주 현상을 줄이고 양극재 음극재 등 새로운 공법의 안전 확보도 중요하다. 태양광 폐패널과 폐배터리 재활용과 폐기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환경오염과 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 강화도 필요하다.
그린수소 생산과 이용 확대에도 대비해야 한다. 과거 석유화학 체제에서는 나프타가 플랫폼 화학물질이었다면 수소 경제로 전환 시 암모니아나 메탄올이 중심이 된다. 암모니아는 10대 화학사고 물질 중 하나로 설비나 사고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화학사고가 157건으로 2024년 128건에 비해 20% 가량 증가했다. 작업자 실수로 인한 사고가 늘기도 했지만 신기술 신공법이나 반도체 이차전지 등 원료물질 사고도 증가해 대책이 필요하다.
■화학사고가 늘고 있는데, 대응 체계는 어떻게 갖추고 있나.
사고 은폐에 대한 처벌 규정 강화로 미신고 사고가 양성화된 측면도 있다. 작업자 실수로 인한 사고가 늘었고 대학 실험실 사고 증가, 2차전지 등 신기술 원료물질 관련 사고도 새로운 유형으로 떠오른다. 화학사고는 소방·경찰·지자체 등 여러 기관이 함께 대응할 수밖에 없는 만큼 정보 공유와 협력이 핵심이다.
안전원은 24시간 화학사고 종합상황실을 운영하며 약 2700명이 참여하는 사고상황 종합 앱을 통해 현장 상황과 물질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소방·경찰·지자체 등 여러 기관을 법적 강제 없이 정보와 협의로 조율하는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사전에 물질·시설·방재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사고 접수 후 대응 정보 제공까지 걸리는 시간을 평균 8분여로 단축해 왔다. 정보 제공 자동화를 목표로 화학사고대응정보시스템(CARIS)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안전원에서는 첨단산업 사전안전성평가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제 화학사고 예방 시 어려운 점들을 들었을 때 실제 현장에 적용 시점에 도움을 받고 싶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기술 개발·상용화 단계에서는 정부 지원이 활발하지만, 해당 기술을 적용해 플랜트를 건설·가동하는 단계에서는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안전원에서는 화학물질 관련 설비가 만들어지기 전 단계부터 실제 화학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신경을 써야 하는지 등을 사전에 상담을 해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양해지는 화학사고 예방을 위해 공부를 하는 건 기본이다. 탈탄소기술로 인해 어떤 산업이 발전할지 예측하고 화학안전적 측면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고 미리 봐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등 직원들이 탈탄소 지원사업 발굴 세미나를 수차례 한다.
■화학안전과 관련한 신기술개발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직원들이 워낙 현장에 많이 있다 보니 다양한 기술을 개발·실용화로 이어진 부분들이 있다. 비수용성 독성가스 누출을 90% 차단할 수 있는 에어커튼 방재기술을 개발했고 특허도 냈다. 해당 기술은 2024년부터 서울시 암사정수센터에서 적용 중이다.
드론 영상촬영을 통한 화학사고 피해영향범위를 예측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화학사고로 인한 농작물 피해 등을 황변이나 갈변 등 잎 색깔 변화를 수치화해 피해 범위나 정도를 측정하는 기존 색소 분석 방식(RGB)은 40일 정도 걸린다.
하지만 드론 영상촬영을 통한 분석을 적용하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충북 음성군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누출 사고 시에 드론 영상촬영을 활용해 피해영향범위를 예측했을 때 소요기간은 2주 정도에 불과했다.
이외에도 변색 페인트 기반 누출 탐지 기술도 개발 중이다. 파이프와 파이프를 연결하는 이음새 부분을 덮는 플랜지 커버에 산과 염기 누출을 감지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플랜지 이음새에서 화학물질이 새면 색이 변하거나 경보를 울리는 식이다. 산염기 누출 감지용 플랜지 커버가 실제 적용이 가능한지 평가 중이다.
안전원에서 하는 교육 부분에도 신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경형 웨어러블 기기인 ‘스마트글라스’에 인공지능 가상현실(VR)을 접목한 이동형 VR 교육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기존 훈련센터를 찾아와야 했던 방식과 달리, 현장 어디서든 화학물질 누출 상황을 가상으로 체험하고 응급조치를 익힐 수 있다.
안전원에는 증강현실(AR)·VR 훈련센터가 있다. 원료 공급부터 화학 제품 생산까지 전 공정을 실제 설비 모형 그대로 재현해 교육생들이 설비의 작동 원리와 화학물질 누출 시 응급조치 절차를 배울 수 있도록 했고 교육생 반응도 좋다. 교육 효과가 좋은 만큼 보다 많은 이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체험형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앞서 얘기한 거버넌스 측면에서 지역 주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은 어떻게 운영 중인가.
지역별로 화학 안전 시민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지역 화학사고 대비 체계 구축 필요성과 화학안전 인식제고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2025년에는 전남과 전북 2개 권역에서 시범운영을 했다.
시민학교를 수료했다고 끝이 아니다. 참여자 간 후속 네트워크 활동으로 ‘화학 안전 관련 온라인 모임’이 운영됐다. ‘전북권 지역화학 사고 대비 지역협의체’ 구성원으로 참여해 지역화학안전 사고 예방을 위한 실제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전북권 지역화학 사고 대비 협의체는 전주 군산 익산 정읍 완주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 지역협의체로 △각 지역의 화학물질 관리 및 안전현황 △사고발생 시 사후개선 등을 논의한다. 이러한 관심이 지역 화학안전 거버넌스 참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화학안전 문화를 확산하겠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텐덤셀 = 서로 다른 물질의 태양전지 층을 두개 혹은 그 이상으로 쌓아서 각 층이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하게 만든 구조다. 위층은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가 단파장(가시광)을, 아래층은 실리콘(Silicon)이 장파장(근적외선)을 흡수한다.
■플랫폼 화학물질 = 석유화학 시대에서는 원유에서 뽑은 나프타를 쪼개서 만든 에틸렌과 프로필렌으로 플라스틱·섬유·화학제품을 만든다. 화학산업 플랫폼이자 출발점이 나프타인 셈이다. 반면 수소경제로 전환되면 출발점이 바뀐다. 수소를 암모니아나 메탄올로 변환해 연료나 화학제품 원료로도 사용한다. 암모니아나 메탄올이 새로운 출발점(플랫폼)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