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정치 몰이해가 낳은 ‘시진핑 실각설’
군·원로·공청단계에서도 이상징후 안보여 … 낡은 파벌정치 프레임에 의존한 시각
최근 한국의 주요 언론들이 시진핑 실각설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2027년 가을로 예정된 공산당 21차 당대회가 다가오면서 중국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정이 반영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각설과 관련한 보도에는 중국의 정치문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낡은 파벌정치 프레임에 과도하게 의존한다. 견강부회식 해석도 적지 않다. 중국 정치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군은 당에 절대 복종한다는 원칙
실각설의 가장 유력한 근거는 군부에서 시진핑과 가까운 인사가 연이어 낙마하고 조사를 받는 상황이다. 인민해방군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중앙군사위원회 6인 위원 중 1인인 먀오화가 작년 12월 실각했다. 군사위원회 부주석 2인 중 1인인 허웨이둥은 3월 이후 공식무대에서 사라졌다. 현직 공산당 정치국원인 허웨이둥이 실각할 경우 정치적 파급은 더 클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시진핑이 푸젠성 책임자로 있을 때 인연을 맺은 관계다.
실각설은 이러한 상황을 군에 대한 시진핑의 통제력 약화로 해석하고, 군부 내 최고위직을 유지하고 있는 장유샤 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시진핑에 대한 정치적 도전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위의 사태는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강화되어 온 반부패투쟁의 연장선 위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반부패투쟁이 성역 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군부를 친시진핑과 반시진핑으로 구분하는 것도 근거가 취약하다. 장유샤도 숙청된 인사들에 못지않은 친시진핑 인사다. 장유샤와 시진핑의 인연은 두 사람의 부친이 서북 지역 당과 군의 주요 책임자로 있었던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때문에 장유샤는 당시 나이가 72세이었음에도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20여년 동안 암묵적으로 관철되었던 ‘칠상팔하’ 기준(5년 주기의 당대회에서 67세까지는 신임 정치국원으로 선출될 수 있지만 68세 이상은 퇴진)을 깨고 정치국원과 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연임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점은 군은 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공산당의 원칙이다. 이를 고려하면 군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린뱌오가 군을 권력기반으로 삼아 후계자의 지위를 확보하고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고 불귀의 객이 되었다.
개혁개방 시기 덩샤오핑이 당의 총서기가 아니라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맡고 중국의 최고지도자로서 역할을 했던 것은 군부의 정치적 개입이 아니었다. 당시 일선 지도부의 군에 대한 영향력이 취약했기 때문에 군에 대한 당의 지도를 관철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에서 군을 장악하지 못하는 최고지도자는 약한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군이 나서 권력에 도전하거나 권력을 장악하는 상황은 발생할 수 없다.
영향력 약해진 공청단계가 반발한다고?
원로나 공청단계 같은 파벌의 견제도 시진핑 실각이나 영향력 약화의 원인으로 언급된다. 지난 4월 리간제 조직부장과 스타이펑 통전부장이 자리를 맞바꾸었다. 조직부는 본래 공산당의 핵심기구이고, 21차 당대회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 그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정치적 의미가 큰 인사변동이다.
그러나 리간제를 친시진핑계로, 스타이펑을 공청단계로 분류해 이 인사변동의 정치적 의미를 해석하는 것 역시 근거가 약하다. 리간제는 칭화대를 나왔다는 것 외에는 시진핑과 관련이 없다. 관계로 진출해서는 환경부 산하 핵안전 관련 부서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다.
스타이펑이 전 총리 리커창과 베이징대에서 같이 수학한 인연이 있으나 공청단계로 분류할 만한 경력은 없다. 오히려 2007~2010년 사이에 중앙당교 부교장으로 있으며 교장으로 임명된 시진핑의 지도하에 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이 인사 변동은 비교적 젊은 리간제를 당무 경험이 일천함에도 차세대 지도부 육성 차원에서 조직부장이라는 요직에 발탁했다가 지금은 그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현재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나 공청단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장쩌민 전 총서기가 퇴직 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를 들 수 있다. 그 때문에 후진타오는 총서기를 맡는 동안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할 수 없었다. 총리로 본래 인사권이 없었던 원자바오의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2007년 17차 당대회에서 공청단계인 리커창을 누르고 시진핑이 후계자로 선택된 이후 공청단계의 영향력은 계속 줄어들었다. 20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원 중 공청단계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당시 정치국원에서 탈락했지만 전국정협 부주석으로 비교적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후춘화는 다시 공산당 최고지도부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시진핑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그의 승인 하에 진행될 일이다.
시진핑 이후의 문제가 오히려 현안으로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시진핑 권력은 현재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정상외교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시진핑 사상과 정책에 대한 선전 수위도 변화가 없다. 사실 중국의 권력갈등은 파벌 갈등이 아니라 노선갈등에서 비롯된다. 파벌도 어떤 노선을 대표할 때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행위주체가 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중국의 경제성장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관세전쟁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술 분야에서도 약진중이다. 시진핑이 발탁한 딩쉐샹과 허리펑이 과학기술 분야와 대미 무역협상을 이끌고 있다. 정책적 균열이 보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치에 대해 근거가 취약한 추측이 확산되는 데는 그런 이야기를 퍼트리는 주체들의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기도 하지만 중국 정치의 불투명성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친강 외교부장이 임명된 지 6개월 만에 실각했는데 실각 사유에 대해서 지금까지 설명이 없다.
중국이 스스로 정치에서 불투명성을 해소하기 이전에는 중국 권력층 동향에 대한 억측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72세인 시진핑의 나이도 중국 정치의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시진핑 이후에 대한 준비는 미래가 아니라 작금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인사 관련 문제들을 보면 시진핑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친강 허웨이둥 리간제 등은 외교 군 당무 등 공산당의 국가운영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의 차기 구도 구축을 위해 발탁된 인사들이다.
그런데 이제 왕이 장유샤, 그리고 시진핑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차이치가 21차 당대회를 마지막으로 퇴진할 때 이들을 대신할 사람들이 사라진 셈이다.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이 시급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새로운 인사를 발탁하더라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럴 경우 중국 엘리트정치에서 불안 요인이 증가할 것이다.
이것이 정책적 실패와 연결될 때 중국 정치의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제 중국 정치에서 권력집중의 긍정적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커지는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징조로도 볼 수 있다.
주요 외신은 ‘차이나쇼크 2.0’에 더 관심
이러한 추세를 잘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근거가 약한 각종 추측에 과도하게 휘둘리면 중국의 변화에 대한 객관적 평가나 올바른 대중정책 수립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중국 사정에 더 밝은 미국 일본 등의 주류 언론에서는 지금까지 실각설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대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은 첨단산업의 발전에 기초한 ‘차이나 쇼크 2.0(China shock 2.0)’을 더 중요한 의제로 다루고 있다. 중국의 변화를 더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 비평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