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산안법은 모든 현장의 기준, 대형사업장은 다르게 접근해야
최근 기록적인 폭우에 산사태로 많은 사상자와 주택 도로 같은 생활 기반시설의 피해가 발생됐다. 일기예보에는 세계 각국의 실시간 정보와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가 동원된다.
하지만 태양 지구와 달의 활동, 해류와 온도, 바람, 기온 등 여러 자연요소들의 상호작용인 일기를 특정 위치는 물론, 시간 강우량 수준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석축 제방 등 피해방지 시설과 대피경보로 폭우 피해를 줄일 수는 있어도 지난 19일 경남 산청지역 폭우 자체를 방지할 방법은 없다. 기상 조절은 아직 인간능력 밖의 일이다.
산업현장의 사고에도 이런 측면이 있다. 대형 현장은 많은 생산 설비와 지식·능력·이해가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크고 작은 집단의 다양한 상호작용으로 이뤄진다.
사고는 그 상호·연쇄작용의 결과여서 특정 사고를 사전에 방지할 방법은 없다.
안전조치의 역설
이것이 1984년 찰스 페로(Charles Perrow, 예일대 교수)가 ‘정상 사고’(Nomal Accidents)에서 밝힌 사고의 속성이다.
이 통찰은 세계적인 안전 연구자들로 하여금 시스템의 잠재적 취약성을 주목하게 만들었고 안전확보를 위한 많은 시스템적 접근법이 제시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제1조에 밝힌 바와 같이 재해, 즉 사고의 결과적 피해 예방이 제정 목적인 법규로 이를 위한 구체적 조치 의무들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작업계획서 작성, 위험성 평가와 같은 사고방지를 고려한 조항들이 일부 포함돼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하는 선언적 조항이다.
그러나 대형 사업장의 경우는 비록 형식은 다르지만 이미 산안법 제정 취지 이상의 사고예방을 위한 조치들이 이미 내재돼 있어 그 조항들은 옥상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찰스 페로는 안전조치의 역설 즉, 안전확보를 위해 추가되는 안전장치나 통제가 오히려 시스템의 복잡성을 증가시키고 예상치 못한 새로운 유형의 오류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을 경고한다.
건설기계 관련 연 50명 이상의 사고사망자 대부분이 법규에 따라 배치한 유도자 신호수, 작업 중 위험발견을 위해 배치한 감시인의 사망재해라는 것은 찰스 페로가 말한 역설의 증거다.
산안법은 모든 현장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기준이다. 대형 사업장의 안전수준은 이미 그 효용 한계 이상에 진입해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재해 감축에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ISO 45001(안전보건경영시스템)과 같은 절차적 프로그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운용하기에 따라 안전확보에 유용한 면이 있겠으나, 인증 기업 거의가 모셔만 놓고 있는 인증에 불과하다.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 문화 규범을 바탕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인지라 국내 산업현장 내재화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잠재위험 발굴, ‘귀신 찾기’와 같은 말
사고 방지를 위한 시스템적 접근은 ‘정상 사고와 그 사고의 잠재 위험’의 이해에서 출발한다.
잠재 위험의 의미는 특정 사고 전에 그 발생 위험을 점검과 같은 수단으로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간에 거론되는 ‘잠재위험 발굴’은 잠재 위험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거의 ‘귀신 찾기’와 같은 말이다.
또 ‘정상 사고’는 사고의 위험이 잠재적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구성과 과정의 복잡도, 결합상태의 생산에서는 사전에 특정 안전조치로 사고를 방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사고방지를 위한 시스템적 접근은 시스템 요소 간의 상호작용을 살펴 부정적 영향 요인을 억제하고 긍정적 영향을 강화시켜 생산 시스템 전체를 안전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정부도 시스템적 접근 필요
기업은 태생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비용을 수반하게 되는 안전은 아직 기업이 자율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 상황에서 제도와 정부의 정책·규제는 생산현장 안전의 최상위 영향 요인이다.
공무원이 생산 현장의 바닥까지 헤아리기를 요구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가 안전조치의 역설이 돼 재해 증가 요인이 되지 않으려면 1930년대 고전인 하인리히 이론부터 현대의 시스템적 안전론에 관한 큰 틀의 이해는 필수적이지 싶다.
고재철
법무법인 화우 고문
전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