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27 백령도 흰나래길
서해 최북단 섬, 대표 음식은 냉면
서울보다 평양이 가까운 섬,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대표 음식은 해산물 요리가 아니라 메밀 냉면이다.
섬의 대표 요리가 해산물이 아니라 냉면이라면 육지 사람들은 의아하겠지만 사실이다. 냉면뿐만 아니라 메밀 칼국수도 백령도 대표 음식이다.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들이 다들 어업에 종사하며 사는 줄 알지만 농사가 주업인 섬이 더 많다. 옛날 섬으로 이주해간 사람들은 육지에서는 자기 땅 한 평 마련할 길이 없어 오로지 자기 땅을 얻기 위해 섬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섬사람들의 땅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지금은 냉면이 여름 음식의 대명사로 통하고 사철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됐지만 과거 백령도에서 냉면은 겨울 음식이었다. 겨울 냉면이 더 맛있어서가 아니었다. 냉면은 만들어 먹는데 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농번기에는 일손이 부족해 냉면을 먹고 싶어도 만들 시간이 없었다. 농한기인 겨울이라야 시간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냉면을 만들어 먹는 것은 큰 행사였다.
메밀은 보리 타작이 끝나는 초여름에 심어 가을에 추수했다. 겨울이면 동네 사람들과 일가친척들이 다 모여서 냉면 만들기에 돌입했다. 일손이 많이 드는지라 한 가족의 힘만으로는 해먹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해 해질녘은 돼야 먹을 수 있었다.
먼저 여자들이 메밀을 멧돌에 간다. 그 다음 체에 처서 고운 가루만 모은다. 그 메밀가루로 반죽을 한 다음 면을 뽑는 것은 남자들 몫이었다. 면은 나무틀로 뽑았는데 보통 장정 4명 이상은 있어야 뽑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틀을 고정 시키고 두 사람은 국수틀에 매달려 눌러가며 국수를 뽑았다.
그렇게 뽑아낸 면은 장작불로 삶은 뒤 찬물에 씻어낸 다음 동치미 국물이나 김장김치 국물에 말아서 상에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종일 함께 만들어야 한 그릇의 냉면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쉽게 먹지만 옛날 백령도에서 냉면은 겨울이 되야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귀하디 귀한 공동체 음식이었던 것이다.
백령도에는 순도 높은 메밀 냉면을 즉석에서 뽑아주는 식당들도 여러 곳이 있다. 비빔 냉면의 경우 양념장을 넣지 않고 들기름만을 살짝 뿌려서 먹어도 일품이다.
메밀 칼국수나 짠지떡도 메밀로 만든 향토 음식이다. 메밀 칼국수 면은 식감이 부드럽고 소화도 잘된다. 백령도에서는 메밀 냉면, 칼국수, 짠지떡에 꼭 들기름을 넣는다. 메밀이 찬 성분이라 들기름을 넣어야 소화가 잘되기 때문이다. 짠지떡은 메밀 반죽으로 만두처럼 빚어낸 떡인데, 볶은 신김치를 소로 넣는다. 백령도 메밀 칼국수집에 가면 꼭 함께 맛봐야 할 향토음식이다.
백령도에는 백섬백길 80코스인 흰나래길이 있다. 용기포항에서 출발해 천연기념물인 사곶해변과 콩돌해변을 지나 용트림 바위까지 이어지는 12.7㎞의 트레일에서 백령도의 정수를 엿볼수 있다. 흰나래길을 걷고 난 뒤에 맛보는 백령도 메밀 요리들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