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국가 에너지 정책, 문제는 타이밍이다.

2025-08-13 13:00:05 게재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일상이 되었다. 올 여름도 예외가 아니다. 전국이 기록적인 불볕더위에 시달리는 가운데 전력수요는 연일 100GW를 넘나들고 있고, 전력 당국은 비상대응체계를 가동 중이다.

이 와중에 태양광이 전력공급의 숨은 주역으로 떠올랐다. 7월 하순 기준으로 태양광은 하루 최대 전력수요의 약 20%를 담당하며 여유있는 공급 예비력 유지에 기여했다. 태양광은 이미 발전 설비용량 기준으로 연간 약 16%, 발전량 기준으로는 8~9%를 차지한다.

문제는 올 여름이 아닌 내년 봄이다. 일반적으로 봄철에는 전력수요가 30~40% 줄어드는 반면 태양광 발전량은 여전히 풍부한 일사량으로 인해 여름철과 유사하게 유지된다. 전체 전력수요가 줄어든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태양광 때문에 원자력을 포함한 다른 경직성 전원의 비중은 조정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전력계통 운영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전체 전력망의 안정성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산업체 전력수요가 감소하는 주말이나 연휴에는 태양광의 출력을 강제로 낮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의 수익감소와 더 나아가 재생에너지 산업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풍부한 제주도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러한 출력제어 문제를 겪고 있으며, 실시간 전력거래시장 도입 등으로 일부 개선이 있었지만 아직도 미흡한 수준이다. 육지에서도 이를 대비하기 위한 태양광 발전의 예측정확도 향상,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 그리고 전력망의 안정적 운영에 필요한 그리드포밍 인버터 등의 기술도입이 시급하다. 태양광 비중 확대가 현실이 된 이상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술의 효과는 타이밍에 있다.

기술 효과도 산업정책도 타이밍이 핵심

2024년 현재 우리나라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반도체산업은 지금이 국제 경쟁력 확보의 골든타임이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반도체 대표 기업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경기도 용인지역에 총 480조원 규모의 대규모 반도체 생산단지를 조성 중이다. 이에 따른 용인지역에 필요한 신규 전력수요는 10GW 이상으로, 수도권 전체 수요 약 40GW의 25%에 달한다.

한국전력과 정부는 올 5월 이 지역 전력공급 계획이 포함된 제11차 송·변전 설비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의 완료시점이 2038년인 반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공장들은 각각 2027년, 2031년 완공이 목표이다. 기업들은 급한대로 자체적으로 LNG발전소를 건설해서 시급한 전력공급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지만 글로벌 경쟁사들의 사업환경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알려진 대로 타이완의 TSMC는 풍력 기반의 재생에너지로 반도체 생산공장을 이미 가동 중이다. 심지어 국내 산업체들이 미국 현지에서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공장들도 미래지향적인 전력공급을 기반으로 조성되고 있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계획 초기단계부터 전력공급 계획을 적시에 마련하지 못한 결과다.

특히 이 계획수립이 우리나라가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에 진심이었던 2020년 전후에 시작된 것이어서 더욱 아쉽다. 계획 초기부터 국가가 수도권에 집중된 전력수요를 고려한 입지 선정과 재생에너지 공급 수월성을 위해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더욱이 최근 들어 인공지능 열풍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시장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국가 산업정책도 타이밍이 핵심이다.

단기·중기·장기과제 구분한 로드맵 마련을

이재명정부 들어 RE100 산업단지 조성, 차세대 전력망 구축 등 굵직한 에너지 정책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적정성과 그 실행방안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논란이 이어졌던 과거와 비교하면 진일보했다. 기후변화 시대에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사업 환경에서의 생존 기반을 마련하고 온실가스 저감 핵심수단인 전기화를 뒷받침할 차세대 전력망 구축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책에는 언제나 우려와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차세대 전력망 구축에 필요한 난제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정책당국은 이를 풀어나감에 있어 단기·중기·장기 과제를 명확히 구분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로드맵과 안정적인 재원마련 방안을 조속히 제시해야 한다.

10년 가까이 이어진 국가 에너지 정책의 혼선은 여전히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이번에도 자칫 이러한 논의가 정치적 공방에 또다시 매몰될지 걱정이 앞선다. 국가정책 또한 타이밍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손정락 카이스트 초빙교수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