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의 유럽 톺아보기
독일·EU의 트럼프에 대한 3딜 전략·전술
독일·유럽연합(EU)에서 안보는 미국, 에너지는 러시아, 수출은 중국에 의존해 잘 살던 경제안보패러다임은 끝났다. 트럼프의 관세폭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진핑의 값싼 덤핑으로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해체되고 ‘트럼프라운드’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독일·EU는 트럼프 2기의 대 유럽정책에 어떻게 대처하고 평가하고 있을까?” 유럽 고급지들인 스위스의 노이에 취리히 신문(NZZ),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신문(FAZ), 유럽지성인 요셉 조페 교수 등 전문가 의견 등을 분석했다. 트럼프와 EU의 관계는 ‘3딜(deal)’로 정리됐다. 트럼프의 징벌적 관세뿐만 아니라 방위비 및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역할(전쟁비용) 등에서다.
먼저 트럼프와 EU는 관세 15%로 합의했다.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 대한 GDP 5%의 국방비 증액 요구를 독일·EU가 수용했다. 두가지 현안은 트럼프 뜻대로 관찰되었다. 하지만 우-러 전쟁은 기대와 달리 엇박자다. 그는 대선 기간에 “대통령에 취임하면 하루 만에 우-러 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언이 공수표가 되었다.
원인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에 있다. 미국·유럽의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가 버티고 있다. 러시아의 값싼 가스와 석유를 중국•인도 등이 수입하면서 러시아 뒷배 역할을 하고 북한군까지 참전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유럽 순방에서 “우-러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그렇게 되면 미국이 중국 문제에 올인할 수 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관세·국방비·우-러전쟁 3딜로 관계개선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대통령으로 두번째 당선되었을 때만 해도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과 EU 관계가 파탄날 것으로 전망했다. 첫 임기 동안 그는 EU를 적대적으로 비난했고 NATO회의에서 공격적으로 행동했다. 그의 눈에 EU는 “미국을 희생시키면서 좋은 삶을 살아간 약탈자“였다.
트럼프는 재집권 초기 러시아 푸틴을 우호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했다. 푸틴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보다 오히려 이를 지향하면서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를 주시했다. 유럽과 미국 간 군사적·경제적·정치적 이혼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특히 트럼프는 “푸틴이 실제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탈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푸틴에 대한 전략을 유턴했다. 초기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백악관에 초청해 무시했던 것과는 달리 레오 교황 즉위식에 만나 다시 지원을 약속했다. 트럼프와 유럽의 관계가 원만해지자 불리한 쪽은 러시아다. 3딜, 즉 관세와 국방비, 우-러전쟁 자금 등 현안이 정리되면서 미국과 유럽 관계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의장, 독일 메르츠 총리 등 유럽 리더들이 트럼프와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 3딜 성사가 새 사업 기반을 형성한 것이다.
국방비 지출은 NATO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GDP 5%로 증액하되 3.5%는 국방비로 직접 지출하고 나머지 1.5%는 국방 관련 인프라에 투자한다. 독일이 이끄는 유럽이 러시아의 추가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스스로 재무장에 나섰다. 푸틴에 실망한 트럼프는 유럽•우크라이나인의 대담한 행동에 감동받은 듯 우크라이나를 더 강하게 지원하기 시작했다.
관세 역시 미국이 EU 상품에 15% 부과해 비대칭이지만 ‘폭탄’은 피했다. 독일•EU는 훨씬 더 많은 미국산 에너지, 액화천연가스(LNG)와 무기 구매를 약속했다. 국방비·관세가 유럽과 미국을 하나로 묶고, 푸틴 대통령을 회담에 나오도록 만든 것이다.
8월 15일 알래스카에서 미·러 정상회담이 잡혀있다. 트럼프가 ‘타코(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늘 겁을 먹고 물러선다)’ 증세를 보일지 더 깊은 전략이 있는지는 회담 결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 EU가 반대하는 영토 양보로 푸틴을 만나기 때문에 ‘피스메이커’ 역할이 실패할 수 있다.
새 지정학 시대 돌입한 미국-유럽
요셉 조페 언론인 등 전문가들은 “미국과 유럽이 새 지정학 시대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냉전시대에도 유럽과 미국은 삐걱거린 적이 있다. 핵무장한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재평가 받는 이유다. 하지만 현재 미국과 EU 양쪽 모두 더 나빠지지 않길 바라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야망을 미국과 유럽이 연합해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에게 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등도 중요하다.
러시아와 중국은 서방을 향해 “분할하고 통치”하는 방식을 휘두른다. 로마제국이 식민지를 다스릴 때 사용한 것이다. 중국은 EU에게 “미국에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하고 중국과 더 긴밀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제안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호소 역시 비슷하게 “유럽은 미국과 거리를 두고, 러시아와의 파트너로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외친다.
3딜이 성사되었다고 미국과 EU 간 관계가 항상 조화롭게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EU와 미국 양측은 지정학의 ‘심연’을 살펴보았다. 상대방이 없다면 상황은 어떻게 될까? 더 부유하고 안전할까, 아니면 더 가난하고 더 불안할까?
트럼프에게 유럽과의 관계는 전술적 가치가 있다. 유럽은 전략적 자치권을 탐구했지만 ‘미국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직 대안이 없다. 3딜은 지정학에서 추구될 공동 전략을 위한 전제조건, 즉 동유럽에서 러시아를, 중동에서 이란을, 궁극적으로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다. 미국 전략은 ‘피벗 투 차이나(pivot to China, 중국으로 중심축 이동)’로 향한다. 미국과 유럽이 내부적 차이를 극복하고 3딜을 성사시킨 것은 지정학 때문이다.
독일•유럽은 15% 미국 관세에 “유럽 제품이 미국 제품보다 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정리했다. 초격차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 점유율을 잃는다. 또 EU에서 해외 투자가 매력적이게 만드는 전략도 나온다. 트럼프라운드로 바뀐 무역패러다임에서 ‘경쟁력과 인공지능(AI)’이 핵심이다.
또 지정학적 역할, 푸틴의 침공에 무기력하게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처럼 푸틴과의 브로맨스 같은 경박함이나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처럼 과오를 범하지 말라는 경고다. 징집을 중단한 메르켈 총리,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헬멧 몇개만 보낸 숄츠 총리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라는 경고다. 독일·EU는 대가를 치르고 있고 새로운 노력, 자강에 돌입했다. 유럽 3강 수장인 프랑스의 마크롱, 영국의 카이머, 독일의 메르츠가 단결하는 이유다.
트럼프를 ‘위대한 피스메이커’로 띄우기
트럼프와 EU의 3딜을 비교할 때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과 관세만 합의했다. 8월 25일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다룰 두가지 현안, 방위비와 지정학(안보)이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와 협상에서 설득하지 말고, 보여주라”고 말한다. 유럽 수장이 스코틀랜드의 트럼프 골프리조트에 방문해 관대함을 바랐지만 가혹한 딜을 피할 수 없었다.
전략적으로 방위비와 한반도평화를 함께 다루면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를 ‘위대한 피스메이커(GPM)’ 모자로 띄워주어야 한다. 트럼프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평화를 성사시켰듯,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면 3자가 공동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수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하는 코뮈니케를 발표하면 어떨까. 남북관계개선은 비정치적인 ‘남북산림협력’으로 시작하면 성공할 수 있고, 산림청은 이에 준비돼 있다.
또 일본과 연대를 강화할 시기다. 박정희의 국교수교, 김대중의 대중문화개방에 버금가는 담대한 한일관계를 이 대통령이 형성할 때다.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 가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북일관계 개선도 필수적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