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에너지 시장의 도전과 경쟁
한일 양국,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강점 결합하고 지속가능한 협력 모색해야
최근 들어 지구 온난화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그리고 데이터센터의 급속한 확장으로 아시아 지역의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에어컨 냉방으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가 최소 700TWh(테라와트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가 480TWh에 달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 둘을 합친 약 1200TWh 증가분은 현재 한국의 연간 총 전력 소비량의 2배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다. 이렇게 전력 수요는 급증하는데 원자력 발전에 대한 불확실성,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공급 안정성에 대한 우려, 화력발전 축소 등 문제점과 과제는 수두룩하다.
서로 다른 각국의 전략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원전을 활용해 석탄화력발전을 축소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력부문 에너지원 자급률을 현재의 30%대에서 50%대로 끌어올리는 에너지 안보 정책이 목표다. 일본은 신·재생에너지, 한국은 원전 비중이 더 높은 것을 제외하면 한일 두 나라의 전력 에너지를 둘러싼 환경과 정책이 유사하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2025년 35GW에서 해상풍력 20GW를 포함해 2030년에 78GW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와 석탄화력을 중심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이중 전략을 펼친다. 2024년 말 기준 중국의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은 1889GW에 달해 세계 재생에너지 설비의 약 36%를 차지했다. 태양광 887GW, 풍력 521GW, 수력 436GW 모두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압도적 설비 규모와 태양광·풍력만으로도 지난해 1800GWh에 달하는 발전량으로 중국은 재생에너지 공급력 면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강국이다.
하지만 석탄화력도 총발전량의 절반 정도로 가동해 에너지 안보를 유지하는 전략을 편다. 원자력 발전량 비중은 낮은 편이지만, 원전 57기의 설비 용량(약 60GW)은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대만: 2024년 총발전량에서 수입 화석연료(석탄·LNG) 비중이 83%에 달할 정도로 화력발전 의존도가 매우 높다. 탈원전 정책으로 2025년 5월 마지막 원자로가 폐쇄되어 ‘원전 제로’를 달성했으나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20%로 높이고 LNG발전 비율을 50%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AI 및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국가 경제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원전 재가동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8월 23일 예정)가 주목받고 있다. 여론은 재가동 찬성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인도: 2024년 전력 생산의 74%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는 23%, 원자력은 3%다. 석탄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 2030년까지 전체 전력의 50% 이상을 비화석 연료로 사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약 8GW인 원전 용량을 2032년까지 약 22GW로, 장기적으로 2047년까지 최소 100GW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개발 및 설치에도 집중하고 있으며, 2033년까지 최소 5기 이상의 인도산 SMR을 상용화할 계획이다.
●동남아시아(ASEAN): 전력 수요가 연평균 7% 안팎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비율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경제 성장에 따른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석탄화력발전도 여전히 확대하는 추세다. 베트남은 2030년 재생에너지 비율을 28~36% 수준으로 높이고 석탄 화력발전 비중을 그 이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시아 재생에너지 시장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약 9~12%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총전력 수요 증가율보다 훨씬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RE100 목표를 설정해 재생에너지 구매계약(PPA)을 체결하고 있는 시장 환경도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 요인이다.
AI 시대 아시아 에너지의 대전환
그런데 에너지 전환은 여러 도전을 수반한다. 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은 아시아 전력 시장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전력 생산이 날씨나 시간에 따라 들쭉날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 저장장치(ESS)와 같은 기술이 필수적이다. 이에 ESS와 통합 제어 설비 구축에 드는 높은 초기 투자비와 운영비 부담이 크다. 해상풍력 개발은 어민들의 어업권 지역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주민 협의와 보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원전은 안정적인 기저부하 전력이지만 방사성 폐기물 처리, 사고 위험, 지역 수용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러한 도전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모두 신·재생에너지, 원전 기술(소형 모듈 원전 포함), 축전지, 스마트 그리드 등에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연료전지와 이차전지 기술 축적에서 앞서며 ‘수소사회’ 개념을 주도해 왔다. 한국은 제주도 스마트 그리드 실증단지 프로젝트 같은 세계적인 선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 지역의 에너지 시장은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적 경쟁과도 밀접하게 얽혀 있다.
중국의 ‘녹색 일대일로’
중국은 일대일로(BRI)를 ‘녹색 개발’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4년에는 BRI를 통해 동남아시아에 18억달러 이상을 청정에너지 금융에 지원했다. 메콩강 유역 대형 수력발전소, 베트남·태국·필리핀의 대규모 태양광 단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풍력 발전단지와 송전망 확충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복합 에너지’ 전략
미국은 LNG 수출을 확대해 아시아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기술 협력을 병행하는 ‘이중 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인도와는 ‘전략적 청정에너지 파트너십(SCEP)’을 통해 수소, 해상풍력 기술을 지원하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통해 아시아 각국과 태양광·풍력 프로젝트에 대한 60억달러 규모의 투자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한일 에너지 협력의 바게닝 파워
한국과 일본은 수입 에너지 해상 운송로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공통의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는 대만의 해상풍력 해저 케이블 프로젝트를 두고 한국과 일본 기업이 경쟁하는 등 서로의 기술력을 배경으로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LNG 및 수소 저장·공급 인프라를 공동 개발하고, 신·재생에너지 기술교류를 통해 미중의 기술패권 경쟁 구도에서 상호보완하는 구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일본의 연료전지 및 에너지 저장 기술과 한국의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연계하는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한일 전력망 연결(동북아 슈퍼 그리드 구상)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일 양국은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고 지속 가능한 협력을 모색할 때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 종속되지 않고 한일 양국의 협력 축을 만들어야 바게닝 파워(교섭력)가 커질 것이다.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
전 테이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