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손자병법
디폴트옵션, 저축성 시대 종말·투자성 시대 본격화
퇴직연금의 역사는 전쟁의 부산물이었다. 부상나 공로자에 대한 보상으로 시작됐다. 이후 체계를 다듬어 금융기관에 위탁운용하는 사회복지적 금융서비스로 정착했다.
그러나 연금은 더 이상 ‘사회복지’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은행·보험·증권사 간 ‘쩐의 전쟁’이 벌어지는 거대한 투자 전장이다.
은행권은 대출을 무기로 고객잠금을 실현해 총적립금의 52%를 차지하며 최강자로 군림 중이다. 증권사 중심의 금투업계는 퇴직연금은 장기투자이며 수익률이 핵심이라는 기치를 걸고 반전의 기회를 엿보다가 ‘수익률’을 내걸고 퇴직연금제도에 사전기금운용제도(디폴트옵션)라는 전술을 앞세워 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반면 보험업권은 디폴트옵션은 투자자에게 위험을 전가한다며 수세적 방어에 머물다 점유율이 줄고 있다.
지난해엔 증권사가 최고 점유율 상승을 기록하며 보험권을 밀어냈다.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실현한 셈이다.
금융사업자 ‘쩐의 전쟁’, 전황 살펴야
이러한 격변의 와중에서 30인 이하 근로자들의 노후행복을 위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근거해 고군분투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운용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제도’가 있다. 실질적으로 낮은 수수료와 저비용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칫 퇴직연금 가입 소외지역이라할 수 있는 취약계층 노후생활보장의 보루역할을 자처하며 열심을 다하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도 금융사업자들의 쩐의 전장에서 예외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퇴직연금의 공적기능인 사회보장역할과 금융상품으로서 가입자들을 위한 수익률 혈투에서 규모와 전문인력 등에서 열세다. 새로운 전략으로 근로자 100인 이내로 대상자를 늘려줄 것과 근로자 이외의 노무제공자 가입도 검토를 요청하며 전선을 확대하기 위해 국회등에 호소하고 있다. 향후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디폴트옵션 제도의 개막은 ‘저축성 시대의 종말’과 ‘투자성 시대의 본격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우리나라 퇴직연금 적립금의 디폴트옵션 자금 40조원 중 35조원 이상이 초저위험 원리금보장 상품에 머물고 있다. 평균수익률은 고작 3.3%다. 반면 중위험 투자형 상품은 11.8%. 무려 3.5배의 격차가 벌어진다.
디폴트옵션 시대에는 개별적 세부적으로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하며 파고들어 실체에 접근해야 당당한 주인노릇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광복의 8월에 다시 노후행복과 먼 연금금융상품 암흑기로 진입해 금융사에 끌려다니기 쉬운 구조다.
연금이 자본주의 꽃이며 사회주의적 획일성 거대금융 괴물에 짓눌릴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퇴직금만은 원금보존해야 한다”는 미래 두려움을 잘못된 선택으로 강요당하는 공포마케팅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동차 사고가 날까 염려해 걸어서 출퇴근하는 격이다.
금융기관의 원리금보장형 유혹에 빠져 물가상승분만큼 자기자산 감소를 당연시하며 스마트폰으로 주식거래는 공격적으로 하는 이중적 직장인 자세에서도 벗어나야한다.
AI 활용해 ‘나만의 연금병법’을 장착해야
미국은 올 하반기부터 9조달러(우리 예산 2배, 국내 퇴직연금의 3배)에 달하는 대표적 연금 401K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투자를 허용하는 대통령령을 발동했다. 그 가운데 6.3조달러가 주식시장에 들어가 기업자금을 원활히 만들고 주가상승→가입자 수익증가→노후행복성장의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연금백만장자’가 탄생하는 이유다.
조선시대 이율곡의 “10만 양병설”이 오늘날에는 “연금백만장자 100만명 배출” 목표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퇴직연금으로 임금인상 부족분을 상쇄시킬 수 있는 ‘나만의 연금병법’이 있어야 한다. 결국 해법은 가입자인 근로자와 노동조합의 각성뿐이다.
지금은 급속하게 발전하는 AI를 ‘나의 연금병법 참모’로 삼아 미래 나만의 연금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백전불태의 병법을 구사해야한다.
46개 금융사업자, 370여개 상품 중에서 수익률·수수료를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시대다.
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는 퇴직연금 전용세제 도입 등을 통해 투자성 운용방식을 확대해야 한다. 노조는 조합원의 미래소득, 후불적 임금인상을 위해 퇴직연금 전용세제 신설을 앞장서 요구해야 한다.
손자병법은 말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은행·보험·증권사 간 ‘쩐의 전쟁’의 흐름을 꿰뚫고, 나만의 병법을 갖추면 나의 퇴직연금은 노후를 지켜주는 위대한 ‘연금병기’가 된다.
이영하
연금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