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잠자는 특허를 ‘돈 버는 상품’으로
필자가 자주 가던 골목 안쪽에 작은 식당이 있었다. 음식 맛은 매우 훌륭했지만 주변의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들에 밀려 늘 손님이 없었다. 만약 필자가 그 식당 주인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다른 가게들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SNS에서 회자되는 프랜차이즈의 감각적 인테리어, 사람이 많은 서점의 편안한 향기, 잘 나가는 옷가게의 친절함 등, 식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양한 영감을 얻었다면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스타트업들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훌륭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내부기술 개발에만 몰두하다가 정작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다른 업종의 가게에서 영감을 얻듯 다른 산업분야의 기술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상용화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다른 분야의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기술·제품·서비스를 향상시키는 접근법이 바로 ‘이종분야 특허분석’(OPIS)이다. 특허 데이터는 인류가 축적한 여러 분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대한 아이디어의 집합체다. 이 거대한 지식의 보고를 활용하면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나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전기차 폐배터리 분해기술을 개발하던 한 기업은 배터리 내 잔여 냉각수로 인한 화재위험에 봉착했다. 이들은 배터리기술 분야가 아닌 ‘자기부상열차’의 이송기술과 ‘대형 중량물 운반 장치’의 기울임기술을 벤치마킹하여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그 결과 CES 혁신상을 연이어 수상하고 수십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X-ray를 이용한 공기정화기를 개발한 다른 기업도 해로운 X-ray의 외부방출은 완벽히 막으면서도 공기는 통과시켜야 하는 기술적 문제에 부딪혔다. 이에 ‘반도체 공정’의 공기순환기술과 ‘LED 산업’의 빛 반사기술을 벤치마킹해 안전하면서도 공기순환이 원활한 공기정화기를 상용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성공적인 기술사업화의 열쇠가 반드시 내부개발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여러 분야에 대한 창의적인 융합이 잠자는 특허를 혁신적인 ‘제품’으로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특허청과 같은 기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방대한 특허 데이터를 정리 및 분석하고 기업에 맞춤형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은 개별 기업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와 관련된 내년도 특허청 사업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반갑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전기차 로보틱스 등 첨단산업 분야의 기업들이 수억건의 특허 데이터에 녹아있는 ‘기술노하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기술경영을 하는 것이 이제 필수가 되었다. 이처럼 타 분야의 성공 DNA를 흡수하고 체화하는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의 수많은 ‘기술 맛집’들이 비로소 글로벌 명가로 발돋움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안성훈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