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AI 시대, 중장년 고용의 길을 다시 묻다
인공지능(AI)의 급격한 진화는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지형을 바꾸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이 변화가 곧바로 삶의 문제, 나아가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문제로 연결된다. 기민하게 기술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젊은 세대와 달리, 50~60대 중장년층과 고령층은 변화의 압박을 더욱 직접적으로 체감한다.
단순·반복 업무는 AI와 로봇에 의해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중장년의 일자리는 새로운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그렇다면 빠르게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속에서 중장년에게 남겨진 해법은 무엇일까?
AI 시대, 중장년층 대체대상 아닌 공존세대
먼저 중장년층은 단순히 대체대상이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토대로 AI와 협력할 수 있는 공존세대라는 점이 중요하다. 30~40년에 걸쳐 축적된 현장경험 관리능력 인간관계 기술은 AI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상담·교육·사회서비스·전문 자문 분야에서는 오히려 AI가 중장년 업무를 보조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중장년은 AI가 전달할 수 없는 ‘사람의 정서와 신뢰’를 담당할 수 있다. 즉 기술과 경험이 결합되는 순간 새로운 경쟁력이 탄생하는 것이다.
둘째, 재교육 체계 혁신이 절실하다. 많은 중장년층이 ‘이제 와서 공부가 가능할까?’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배움 자체가 곧 일자리 생존의 열쇠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대학이 힘을 모아 무료 AI·디지털 학습과정, 실습중심의 경력전환 프로그램, 현업 전문가 매칭형 멘토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한 이론교육이 아니라 실제 직무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하며 온라인·오프라인의 병행, 맞춤형 교육과정을 통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중장년이 직무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생활비 지원이나 고용연계 지원금이 보장된다면 학습동기 역시 강력해질 것이다.
셋째, 신직무 발굴이 핵심이다. 이미 많은 기업과 단체가 데이터 라벨링, 온라인 콘텐츠 관리, 고객상담 품질관리, 디지털 사회공헌 활동 등 새로운 업무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기술을 단순히 따라잡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경험을 AI 도구와 연결할 수 있는 창의적 사고일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 분야에서는 AI를 활용한 맞춤형 학습 코디네이터가, 보건·돌봄 영역에서는 AI 헬스케어 기기와 연계된 생활 관리자가,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는 온라인 기반의 커뮤니티 매니저와 디지털 봉사자가 새로운 일자리로 떠오를 수 있다. 중장년은 젊은 세대가 가지기 어려운 관계의 깊이와 사회적 신뢰를 강점으로 한 인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세대교체 중심의 채용전략을 택한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조직의 안정성과 경쟁력을 해치게 된다. 세대 간 협업구조를 조직 내부에 심고 지식전수 프로그램, 팀 기반 세대융합 프로젝트, 역멘토링 제도 등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젊은 직원은 최신 기술과 트렌드에 강점을 갖고 중장년은 현장 운영 노하우와 위기관리 능력을 제공한다. 두 세대가 협력할 때 기업은 더 복합적이고 안정적인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술과 경험이 공존하는 일터 만들어야
정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고용정책의 전면적 혁신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포용성을 높이는 제도가 뒤따라야 한다. 기존에 정규직을 지향하던 고용구조에서 벗어나 재택·단기형·시간제·프로젝트형 일자리를 적극 지원해야 하며 나이에 따른 차별 없는 채용문화가 자리 잡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평생학습을 위한 보조금 지원, 중장년 경력설계를 돕는 상담 네트워크, 은퇴 후 재취업 연계 플랫폼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 단순히 고용유지가 목표가 아니라 중장년층이 생애 여러 단계에서 새로운 경력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AI 시대의 거대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물결이다. 그러나 그것이 위기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변화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성장 동력과 사회적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과 경험이 공존하는 일터를 만드는 일이다. 중장년층이 가진 강점을 사회가 다시 정의하고 ‘누구든 언제든 다시 배우고 또 다시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는다면 AI 시대는 위기가 아니라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다.
유상건
유정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