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복원과 긴 호흡의 미래 설계 필요
중국 전승절 이후 우리의 할일 …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가치 증진 노력 병행해야
지난 9월 3일에 있었던 중국 ‘전승절’ 행사는 냉전 해체 이후, 미국 중심의 단극질서가 약화되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 북한 이란 등 소위 ‘반미’진영의 국가들이 세계 질서의 다극화 혹은 다자질서를 추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중국을 가운데 두고 ‘좌 북한, 우 러시아’가 나란히 서는 장면은 현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두고 소위 말하는 ‘반미 진영’의 대표적인 국가들이 나란히 하는 모습이었다. 중국이야 미국과의 갈등을 벌이고 있는 직접적인 당사자이고, 러시아는 러-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미국 및 유럽과의 갈등을 겪고 있으니 서로가 미국에 맞서 연대의 힘을 과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북한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러시아와의 군사동맹 강화, 그 동안 소원했던 중국과의 협력을 새롭게 구축하는 것을 넘어 ‘반미’ 진영과의 연대를 통해 세계무대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중국 러시아 북한은 세계인들 앞에 미국에 대항하는 반미 연대의 중심 국가로 비치게 되었다.
현 세계질서의 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적어도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한 국가들은 패권 질서의 거부와 함께 다극화된 세계질서로의 지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질서의 변화를 선도하는 국가로서 중국이 그 정점에 위치하고 있음을 이번의 전승절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몸값 올라간 북한의 태도 주목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북한의 ‘몸값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점이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 동맹이 형성·강화되고 북한의 존재감이 과시된 상태에서 이제는 중국과도 반미 연대 혹은 다극화 체제 추구의 핵심 국가로서 그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미 북한은 2023년 말부터 남북의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일체의 대화와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이재명정부가 취임 이후에 취한 빠라 살포 및 대북 방송의 중단 등에도 불구하고 김여정의 입을 통해 돌아온 것은 한국과는 상대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이 흡수통일의 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그리고 미국과의 동맹 등을 문제 삼으면서 ‘종속국 한국’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었다.
더욱이 현 정부가 지난 8.15 광복절 기념사에서 전임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고 체제 존중, 흡수통일 포기, 그리고 기존 합의의 복원과 선제적 단계적인 조치를 선언하였음에도 북한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의 대통령의 발언 즉, ‘가난하지만 사나운 이웃’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조선중앙통신’논평을 통해 위선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격렬하게 반응했다. 특히, 을지프리덤 훈련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이 여전하며, 한국에 대해서는 앞으로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도 위에서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적대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에도 최고지도자간의 신뢰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국가대 국가의 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임을 단언했다.
지금까지의 북한 반응을 보면 단기간에 남북이 접점을 찾고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사실 북한의 입장에서 지금 당장 남북의 대화나 미국과의 대화 모두 절실한 것이 아니다. 2019년의 ‘하노이 실패’를 뒤로하면서 북한이 내린 결론은 한국은 적대국이며 미국은 어쩔 수 없는 제국주의라는 것이었다.
이에 덧붙여 이미 세계질서를 ‘신랭전’으로 규정하고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의 강화, 중국과의 협력의 재개 및 강화 등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북한에게 한국 및 미국과의 대화는 시급하거나 절실히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렛대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무너진 외교관계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무너진 외교관계를 제대로 복원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및 여타 국가들과의 외교적 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특히 이번의 전승절에서 나타난 북·중·러에 대항하는 한·미·일의 협력 체제를 대립시키는 것은 결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중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우리의 경제 및 동북아질서의 구축, 한반도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할 중요한 행위자다. 또한 중국은 다극화의 세계를 추구하지만 그렇다고 냉전적인 진영대립이 깊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어 보인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은 북한 및 한국과의 관계 강화를 모두 중요시 여기도 있다.
따라서 우리로서도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관계의 구축은 앞으로 남북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서도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외교적인 지평을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조급한 대화 서두르기보다 준비 필요
다음으로, 긴 호흡으로 남북관계를 평화와 공존, 번영의 길로 만들어 나가는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조급하게 대화를 서두르기 보다는 오히려 앞으로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어쩌면 남북관계의 향방보다 더 중요한 내부 정치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병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결국 현재의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과 통일 관련 조항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으고 수정해 나가는 정치적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현재 북한이 비난하는 핵심 근거의 하나는 ‘영토조항’이며, 이를 근거로 민주 정부든 보수 정부든 ‘흡수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변치 않다고 주장한다.
객관적 현실을 돌아보면 영토조항을 비롯한 헌법의 통일관련 조항들은 수정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이 우리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국민적 합의의 과정이 되게끔 해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집단적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통일과 관련된 국민들의 관심은 상당히 낮아져 있다. 특히, 세대별로 나타나는 통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심한 우려를 낳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의 외교를 복원하고, 남북관계의 제도적 기반을 새롭게 정비해나가는 것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힘은 국민적 지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를 떠나 민주적 가치의 향상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와 공존에 대한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는 상당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남남갈등의 혼란과 갈등을 빚어낼 것이며, 아무런 내실을 기하지 못한 채로 표류하게 될 수도 있다. 정부와 시민사회 그리고 각계의 지혜를 모아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와 평화의 증진, 그러한 사회적 가치관의 확고한 확립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10월 평양 당 창건 80주년 행사 주목해야
중국 전승절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쯤인 다가오는 10월에는 평양에서 당 창건 80주년을 맞이하는 대규모 행사가 치러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게 될 것이다. 베이징에서 무대를 옮겨 평양이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또 10월을 넘기게 되면 북한은 예고한 대로 당 제9차 대회를 개최하게 될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자신들의 일정 때문에도 남북관계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로서도 조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남북관계의 미래를 차분하게 설계하고, 그를 위한 우리 내부의 역량을 증진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무너진 외교를 복원해 내는 것에 우선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